사랑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혼자일 때 누리던 것들을 둘일 때 포기해야 한다면 난 절대 결혼하지 않을 거야’ 라며 손에 쥔 것을 조금도 놓고 싶지 않은 내가 타인을 사랑한다는 건 어떤 크기의 마음일까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때 오래전 읽은 가시고기의 한 구절이 떠 올랐다.
“아빠는 또 말했어요. 사랑은 자신이 갖고 있는 걸 다 줘도 아깝지 않은 거라고요. 목숨까지요. “
다섯 살이 되었을 때 그 아이를 처음 보았다. 고모의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 도착한 곳에서 엄마는 분홍색 환자복을 입고 있었고, 투명한 유리창 너머엔 새근새근 자는 아기가 있었다. 나보다 훨씬 작은 생명체라니. 하는 일이라곤 하루종일 자고 먹고 우는 것 밖에 없는 게으르고 연약한 아이였다.
보솜보솜 하얗게 올라온 솜털이 귀여워 볼에 슬쩍 코를 갖다 대면 우유 냄새처럼 고수운 내가 나던 아기는 내 눈엔 정말 예뻤다. 까맣고 다부진 나와 다르게 뽀얗고 여리여리한 것이 신기해 작은 단풍잎 같은 손을, 말랑한 마시멜로 같던 발을 얼마나 주물렀던지. 직장생활로 부모님이 집을 비우는 시간엔 늘 나와 그 애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지루하고도 긴 시간을 버티기 위해 우리는 놀이터에서 시소를 타고, 만화영화도 보고, 때로는 무서운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봤자 어린아이였던 내가 지어서 하는 무서운 이야기는 ‘어흥! 사실 나는 네 언니가 아니고 호랑이야’ 같은 슬플 정도로 유치 찬란한 수준이었는데, 목소리를 낮게 깔기만 해도 걔는 내 목덜미를 껴안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아. 내게 오롯이 의존하는 사랑스러운 작은 존재.
고개를 뒤로 젖히며, 구슬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면서도 한 손으론 내 옷깃을 꼬옥 잡고 있는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그때부터였을까. 모성애 비스무리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은.
다 줘도 아깝지 않은 마음, 정말로 사랑은 그럴지도 모른다.
갓 태어나 곤히 잠든 한서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사랑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니 배고픈 그녀를 위해 아무리 피곤해도 벌떡 일어나 밥상을 차릴 수 있고, 추위에 약한 내가 선뜻 겉옷을 양보할 수 있고, 그 애가 필요하다면 지금까지 모은 것들까지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설사 어릴 적 장난으로 지어냈던 무서운 이야기들이 실제가 된다고 해도 난 정말 내 뒤로 그 애를 숨길 수 있을 것만 같다.
난 정말 얘를 사랑하는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