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심장은 콩닥콩닥 떨리고 두 볼은 사르르 발그레해진다.
때는 2002년, 내가 6살이 되던 해에 우리 가족은 정들었던 동네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고 나는 새로운 유치원으로 입학했다. 담당 선생님을 기다리던 복도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는데, 새로운 출발에서 오는 설렘을 담기라도 한 걸까. 창문으로 불어오는 기분 좋은 봄바람은 커튼을 살랑살랑 움직이게 했고 따스한 햇살과 커튼 사이 비치는 그림자는 묘하게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자아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Y와 J를 처음 만났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각자 제 엄마 뒤에 몸을 숨긴 채 얼굴만 쏘옥 내민 모습으로 말이다.
알고 보니 우리는 모두 같은 시기에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된 동갑내기였는데, 거기에 유치원 같은 반 친구로 만나게 된 것이다. 매일 하원 후 우리는 셔틀버스를 타고 같은 학원으로 향했고, 학원이 끝난 후엔 집으로 향했고, 각자의 집으로 헤어지는 것이 아닌 서로의 집으로 향했다. 치렁치렁한 원피스를 꺼내 공주 놀이를 하다가, 빈 페트병으로 수액 병을 만들어 병원 놀이를 하고, 그리스 로마신화와 같은 각종 만화책까지 보다 보면 어느덧 해는 저물었고, 자연스럽게 한 가족인 것처럼 저녁 식사까지 함께했다. 그러고도 데리러 온 부모님 앞에서 같이 잘 수 있게 해 달라며 땡깡을 부리다 겨우 헤어지는, 도무지 뗄 레야 뗄 수 없는 지독한 우정의 삼총사였다.
유치원을 졸업하고도 우리의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나란히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우리는 입학식과 졸업식에서 꽃다발을 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사진을 찍었고, 또 같은 중학교로 입학한 우리는 콩나물처럼 빽빽이 들어찬 등하굣길 버스에서 몸을 부대꼈고, 같은 고등학교 배정에 실패하였음에도 같은 학원과 같은 독서실을 다니며 매일 서로의 안부를 직접 확인했다. 꼭 붙어 자란 시간은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 앨범부터 시작해서 스마트폰 사진첩까지 가득했는데, 거기엔 다른 사람들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우리의 지난 역사가 모두 담겨있었다. 쌍꺼풀이 없던 Y는 얼굴의 반만 한 눈망울을 갖게 되었고, 동그란 마늘 같은 낮은 코를 가지고 있던 나는 자연스러운 콧대가 생겼으며, 쌍꺼풀과 콧대가 모두 없던 J는 어느 순간 새로 태어나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도 삼총사의 사이는 여전했다. 학창 시절처럼 매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부르기만 하면 10분 이내로 만날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건 큰 행운이었다. 마주 앉아 밥을 같이 먹어줄 사람이 필요할 때, 대화상대가 필요할 때, 하물며 A4용지 같은 물건이 필요할 때까지 당장 필요한 무언가가 없을 때 그 애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가족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들. 양손과 양발을 동원해야 간신히 헤아릴 수 있는 햇수 동안 변함없이 옆자리를 지켜주는 Y와 J를 생각하면 늘 마음 한 켠은 추운 겨울날 손난로를 쥔 듯 잔잔한 온기로 데워졌다.
그러던 우리 사이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입사하면서부터였다.
그건 무조건 나의 잘못이었다. 매일 새로운 업무를 배우고 익히고, 분기마다 다음 단계의 트레이닝을 받고, 시험을 치르고, 부서 분위기에 적응하며, 교대근무까지 해야 했던 나는 직장 외의 다른 것들을 생각할 겨를이 도무지 없었다. 퇴근 후에는 하루 동안의 업무를 정리하여 암기하기 바빴고, 주말에는 그다음 주의 출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휴식만 취해야 했다.
나 혼자만의 바쁜 일정으로 겨우 날짜를 맞춰 놓았던 약속을 취소하고, 만나자는 연락을 때론 못 본 척하기도 하며 핑계를 대는 날이 많아졌는데 그런 날이 늘어갈수록 친구들의 연락도 점점 드문드문해졌다. 매일 하던 연락을 하루 건너 하루꼴로 하다가 일주일에 한 번, 그러다 한 달에 한 번씩으로 말이다. 연락의 빈도가 줄어들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먼저 연락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괜히 대화가 길어지거나 만남을 약속하게 되어 시간을 뺏기게 되면 어쩌나 하는 섣부른 걱정 때문이었다.
‘차라리 여유가 없었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걸.’
‘너희를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고 표현할걸.’
‘되지도 않는 말장난을 치며 깔깔대던 그때를 그리워한다고 말할걸.’
내 인생에서 받은 행운 중 가장 큰 조각인 Y와 J. 이십 년이 넘도록 붙어 지냈던 우리는 이제 서로의 생일 혹은 새해 정도나 되어야 간단한 인사만 전하는 사이가 되었고, 눈앞의 현실만 생각하며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나는 인제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후회한다. 늦었을 수도 있지만 잃어버린 것이 영영 사라진 것이 아니길 바라며,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나의 소중한 행운 조각들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