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히니 Nov 18. 2020

지금, 전 직원 급여 내역이 도착했습니다

퇴사자의 변명

 만약, 어떤 회사에서 '전 구성원'에게 '전 구성원'의 급여 내역을 전송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은가? 경우에 따라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서로의 급여 내역에 대한 사전 정보가 거의 없는 경우라면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질문을 다시 해보겠다.


 만약, (다양한 직군, 직무가 섞여서 서로의 급여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가 없으며, 일부 직원들은 정확한 '자신의' 월급도 모르는) 어떤 회사에서 '전 구성원'에게 '전 구성원'의 급여 내역을 전송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은가?


 다양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노조가 협상을 요구할 수도 있고, 열심히 일하던 누군가가 허탈감에 근로 의욕을 잃을 수도 있고, 구성원 간 각종 갈등이 시작될 수 있다. 근데  끔찍한 일이, 폭탄처럼 터지고 말았다.


 어느 주말 아침, 회사에 출근해서 메일을 확인하고 있었다.

  ‘뭐야... 새벽 3시? 과장님 야근하셨네...’


 과장이 보낸 메일은 새벽 3시쯤에 온 메일이었다. 요즘 급여 관련해서 바쁜 일이 많다더니, 저 시간까지 야근을 한 모양이었다. 나도 급여와 관련해서 처리할 일이 있었기에, 별 의심 없이 메일을 클릭했는데...


 그 메일을 클릭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메일의 수신자는 나 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한 두 사람 정도가 아니라... 조직 구성원 전체가 들어가 있었다. 마우스 휠을 계속 내려도 메일의 본문을 볼 수 없을 만큼 수신자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메일 주소와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이거 뭐야... 이 메일을 왜 전체로 보낸 거야? 첨부 파일이 다른 건가? 뭐지 이거?’


 일단 수신자에 회사 사람들 전체가 들어있는 것 같아서 1차로 소름이 돋았고, 제발 첨부파일이 없기를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그 메일에는 첨부파일이 들어 있었고, 그 첨부파일에는 전 직원 급여 내역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이렇게까지 자세한 내용은 나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내가 다녔던 그 직장은, 다양한 직군, 직무, 직급으로 이뤄진 회사였다. 회사의 연봉 테이블은 입사 전형에 따라, 담당 업무에 따라, 입사  직군에 따라 10개 이상으로 쪼개져 있었다. 심지어 같은 입사 전형으로 같은 업무를 하고 있는 같은 직군의 직원도 본인의 협상력에 따라 경력 인정을 받는 정도가 달랐다.

 입사 연도에 따라 연봉 테이블도 달랐다. (단순히 연차에 따라 다른 급여를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입사 시기에 따라 똑같이 10년 차가 되더라도 도달할 수 있는 연봉이 달랐다.)


 비정규직도 업무의 중요도에 따라 급여가 다르게 책정되어 있었고, 이 정보는 모두 비공개였다. 각자 경력 인정받은 내용도 상이했다.

 

 심지어 이 와중에 내부 기준에 따라 매달 급여가 달랐다. 이렇게 연봉 테이블이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보니, 나도 내가 정확히 얼마를 받고 있는지 몰랐다. 그냥 대강 '이 정도' 되려니 생각했다.


 이런 회사에서 전체 구성원을 대상으로 이런 메일을 발송했다는 건, 다 함께 카오스에 빠지자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급여 내역서 파일을 일단 다운로드하고) 서둘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 연결음이 길게 이어졌다. 그의 통화 연결음은 Fly me to the moon 이었는데, 그 전에는 이렇게 감미로운 연결음이 나를 이렇게까지 초조하게 만들 줄 꿈에도 몰랐다.


 '그지... 새벽 3시까지 일한 사람이 이 아침에 전화를 받을 리가 없지. 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

 "아...여보세요?" 

 "과장님! 받으시네요! 주말에 죄송해요. 근데 오늘 새벽에 보내신 메일, 그거 전 직원한테 발송된 거 같아요. 그리고 그 안에 급여 그냥 다 써있던데요..."

 "네? 진짜요? 잠이 확 깨네? 와..."


 그는 즉시 전화를 끊고, 메일을 하나하나 회수하기 시작했다. 같은 메일 아이디로 동시 접속이 가능하다면 나도 함께 메일을 회수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가 몇 분 쯤 지났을까? 메일 회수 과업을 완수했는지, 과장님이 내게 전화를 걸었다.

 "김대리, 진짜 오늘 출근한게 신의 한 수네요. 이거 조금만 더 늦었으면 정말 큰 일 날 뻔 했어요."

 "메일 몇 명이나 확인했어요?"

 "나랑 김대리 빼고 딱 3명 봤더라고요. 근데 다 관련 업무 하는 사람들이라...괜찮을 것 같아요."

 "와...진짜 큰 일 날 뻔 했네요...과장님도 놀라셨죠?" 

 "아니에요. 덕분에 잠이 확 깼어요. 저 어차피 오늘 예물 보러 가기로 해서... 정신 똑바로 차렸어야 했는데 고마워요. 근데 김대리 그 파일 봤어요?"


 사실, 나도 그 파일을 보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과장님의 질문에 뜨끔하긴 했다.

 "아...아니요."

 "김대리가 봐도 상관은 없는데, 김대리 기분 상할 것 같아서...그거 가급적 보지 마요. 나도 그거 보면 짜증나니까."


 우린 그렇게 몇 마디 나누다 전화를 끊었고, 어쨌든 일이 이쯤에서 마무리된 것이 다행스럽긴 했다. 그렇게 한숨을 몰아쉬고, 이제는 아까 다운로드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볼 시간이었다. 과장님은 보지 말라고 했지만, 어떻게 이걸 그냥 넘길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회사에서 산정한 내 급여는 얼마이며, 선배들은 어느 정도의 급여를 받고 있을까?


 나는 그 파일을 통해서 내 급여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고, 같은 연봉 테이블의 1년 선배가 나보다 한 달에 만 원 더 번다는 것과 3년 선배가 나보다 3만 원을 더 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씁쓸했다. 3년이 지나면, 나는 한 달에 3만 원 정도 더 버는 삶을 살고 있겠구나.


 근무 피크인 몇 달 동안, 내 시급이 어느 정도인지도 계산해 보았다. 야근수당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 근무한 시간을 기준으로 계산을 하면 도대체 시급이 어느 정도일지 참 궁금했다.


 계산 결과, 세전 기준으로 내 시급은 7800원 정도였고, 세후 기준으로는 6300원 정도였다. (2020년 기준 최저시급은 8590원이고, 2020년 기준으로 나의 근무경력은 8년 차에 접어들었다.) 문득, 내가 뭘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나 싶었다.


 돈이 다는 아니지만, 회사에서 돈 말고 딱히 주는 것도 없지 않은가?


 그리고, 이제 진짜 판도라의 상자를 열 차례였다. 

 도대체 회사에서 정말 일 하나도 안 하는 직원들은 얼마를 벌고 있을까? 


 내가 파일에서 첫 번째로 확인하려는 이름은 '이옥순'이었다. 그녀는 처음엔 영수증 정리를 담당하던 직원이었는데, 회사가 대규모 투자를 받고 지금보다 더 잘 나가던 시절, 처우 개선 등을 목표로 다른 직군으로 편입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가 입사하기 수년 전쯤에 사라져 버린, 해외 연수 제도의 혜택을 누리고 1년 동안 해외 연수를 받고 온 사람이기도 했다.


 해외 연수는 그다지 효과가 없었는지 그녀는 외국어를 잘하지도 않았고, 컴퓨터 사용에도 서툴러서 수기로 문서를 작성했다. 좋은 분이긴 했지만... 선배들은 가끔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다 같이 힘을 합쳐서 저 사람을 부양하고 있는 거라고...


 그런 그녀의 급여는...나의 3배였다. 3배...


 우리의 급여는 무엇을 기준으로 책정되는 걸까? 물론 내 급여의 3배를 받는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3배의 업무량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급여를 더 받는다는 것은 최소한 일을 조금 더 한다거나, 아니면 조금 더 어려운 일을 한다거나, 아니면 책임에 대해 더 부담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이곳에서의 업무량을 생각해보면, 일부 직원들에게 어려운 업무가 몰려 있고, 업무의 담당자가 1명인 경우가 많아서 각자의 업무 양만큼 책임에 대한 부담을 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연차가 높은 사람이 급여를 더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3배의 급여를 확인하고 현기증이 나서 급여 내역서 파일을 닫아 버렸다. 회사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담당팀에 전화를 하고,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정작 혼란에 빠진 것은 나였다.


 전 직원의 급여 내역,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린 나.


 도대체, 나는 뭐 하고 있는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아, 재미없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