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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히니 Nov 20. 2020

자살할 줄은 몰랐겠지

퇴사자의 변명

 일할 때 나는 나를 몰아붙이는 타입이다. 내가 맡은 일들은 기한 내에 완벽하게 끝나야 한다. 늘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고, 진행상황을 확인한다. 준비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초조해서 내 개인적인 삶에 신경 쓰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개인적인 약속을 잡지 않고, 식사를 거른다거나, 화장실을 가지 않고 참는다거나 하는 등의 행동을 하며 어떻게든 일을 더 많이, 제대로 끝내려고 한다. 규모가 있는 일을 진행할 때는 퇴근을 하고 나서도 일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반강제적으로 그 일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그러다 보면 잠을 잘 때도 일하는 꿈을 꾼다. 그러다 뭔가 일이 잘못되는 악몽을 꾸면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깬다. 꿈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또다시 체크리스트를 확인하고 출근해서 해야 할 일들을 되뇐다.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에 괴로울 때도, 그냥 참는 편이다. 나도 회사를 다니면서 남부럽지 않게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았지만, 그냥 참는다.


 이렇게 살다 보면 회사와 관련된 모든 것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사람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몸은 축나고 괴롭다. 다행인 건, 어쨌든 맡은 일을 성공적으로 끝내는 편이라는 것이었다. 일에 대해 열의가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조직에서 스스로를 갉아가며 일을 하다 보니, 어느덧 내가 맡은 일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그리고 난 더 초조하고, 더 많은 악몽을 꾸고, 몸과 마음은 점점 더 피폐해졌다.


 나 같은 사람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나눠볼 수 있었다.

 첫 번째, 어느 날 한계에 다다르면,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참고 참다가 어느 날 폭발해서 사람들 앞에서 화를 낸다거나, 울어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일은 1~2년을 주기로 반복되었는데 이때마다 나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계에 도달하기 전에 뭔가 이성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는데 왜 그러지 못할까? 업무가 너무 몰리면 팀장에게 항의해볼 수도 있고, 문제가 있는 직원과 직접 대화를 해볼 수도 있었을텐데...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두 번째, 늘 우울했다. 언제나 지쳐있고 회사에서의 업무, 관계 모든 것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에는, 그냥 회사에 갈 바에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기도 했다. '느리게 달리는 자동차에 치여서 병원에 몇 개월만 입원해 있는 건 어떨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미스테리는, 이렇게 힘들면 퇴사하면 되는데 또 퇴사는 어렵다는 점이었다.


 '이 정도로 미칠 것 같은데 그냥 퇴사할까? 아니야. 그래서 그만두면 어떻게 살 건데? 결국 또 다른 회사에 들어가야 되잖아. 다시 취업할 자신 있어? 근데 더 이상 못 버티겠는데 어떻게 해? 잠깐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는 건 어떨까? 아니야. 말도 안 돼. 그럼 나 내일 또 그 지옥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가?'


 이렇게 계속 비슷한 패턴의 생각을 하면서 우울과 분노 속에서 회사를 다녔다.


 이러다가 내가 정말 건강을 잃게 될까 봐, 혹은 나쁜 선택을 할까 봐 스스로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회사가 힘들어도 자살할 정도라면, 그전에 퇴사해버리면 되는 거지. 설마 내가 회사 때문에 자살을 하겠어? 그냥 이렇게 괴로워하다가 견디면서 살겠지.'하고 생각했다.

 

 그러던 내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같은 회사 직원이 정말 자살하면서부터였다. 그녀는 회사를 다니면서 우울감을 많이 느꼈고, 팀장과 불화를 겪고 있어서 전보 요청을 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반영되지는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자살해 버린 것이다.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 '정말로' 자살을 할 정도로 힘들었다면, 왜 그전에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을까?


 그 일은, 한동안 회사 직원들에게 여러 고민거리를 던져줬지만 며칠이 지나자 처음부터 회사에 그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됐다. 나 또한 바쁜 업무, 날 괴롭게 하는 누군가들 때문에 다시 일에 매몰되었고, 하루하루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내 심장을 다른 누군가가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괴로웠다. 또다시, 느리게 지나가는 차들을 보면서 혹시 내가 다칠 수는 없을까,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시작했고...문득...


 그녀는 본인이 자살할 줄 알았을까? 

 정말 자살까지 하게 될 줄 알았을까?


 아니, 아닐 것 같다. 자살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만약 알았다면 그전에 회사를 그만뒀을텐데...


 가끔 우리는 너무 힘들 때, 우리의 상태가 어떤지 파악하기도 힘들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나만 해도, 회사만 생각하면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쉽게 퇴사를 선택하지는 못했다.

 

 '너, 거기서도 못 견디면 아무데서도 못 견뎌.'

 '밖은 지옥이야.' 

 '끈기가 없네.'

 '네가 그 정도 회사 다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자신 있어?'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요구되는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퇴사라는 선택을 하기 어렵다. 나 또한 그 상황에 질질 끌려다니다가, '차라리 사라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나를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사람이었고, 이 괴로움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 회사에 대한 스트레스는 극심했다. 나 스스로 자살이라는 선택을 할 리 없다고 확신했지만 사람이 극한으로 괴로울 때 지금과 똑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나는 이 괴로움을 끊어 내려고, 나를 위해서 퇴사했다. 아마, 그 사람도 자신이 자살할 줄은 몰랐겠지.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퇴사를 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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