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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히니 Jun 08. 2021

네. 저 블로그 합니다. 그것도 열심히

퇴사자의 변명

 "맛집 좀 많이 알지?"

 "맛집이요? 왜요?"

 "나 결혼기념일이라서. 와이프랑 밥 먹을 건데 어디 갈 만한 데 있어?"


 갈만한 곳들?

 정차장이 예상한 것처럼, 난 분위기 좋은 괜찮은 식당을 꽤 많이 알고 있었다. 당장 머릿속을 스쳐가는 식당들도 몇 개 있었다.


 오마카세 전문점...한식 파인 다이닝 전문점...1인당 예산은... 족히 10만 원 정도 잡아야 하는 곳들이었다. 이렇게 비싼 음식을 먹고 다녔다고 하면, 내 월급이 도대체 얼마인지 궁금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난 저 음식들을 돈 내고 먹지는 않았다.


 회사에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당시  평균 방문자수 5000명 전후를 왔다 갔다 하는 블로그를 운영하던 중이었다.  덕에 그런 좋은 식당들을 협찬받아서 방문했던 것이다.


 "차장님, 여긴 어때요?"

 "대박이네. 이런 덴 얼마나 해?"

 "여기 예산 1인당 10만 원 정도 잡으시면 돼요."

 "뭐? 10만 원? 한 명이? 뭐 금가루를 발랐대?"

 "아...결혼기념일이라고 하셔 가지고... 그럼 1인당 5만 원 정도 하는 오마카세 괜찮은 곳도 있어요."

 "비싼 거 많이 먹으러 다니네. 돈은 잘 모으고 있어?"

 "네?"


 왜 대화가 여기로 튀는 거지? 당신이 맛집 추천해 달라고 해서 맛집 추천하고 있었는데, 왜 내가 돈을 잘 모으고 있냐는 질문이 시작된 거지? 대답할 마음은 없었지만, 어쨌든 난 돈은 잘 모으고 있었다. 파인 다이닝, 오마카세 맛집 모두 정말 최고의 식당들이었지만 나도 내 월급과 주제를 알기 때문에 평소에 내 돈을 내고 방문하는 곳들은 아니었으니까.

 

 "젊은 여자들이 먹는데 그렇게 돈 많이 쓴다고는 하던데. 정말이네. 밥 먹는데 돈 그렇게 쓴 다음에 또 밥 먹느라 찐살 뺀다고 돈 쓰잖아. 안 그래? 생각보다 좀 사치가 있네."

 

 정차장의 오지랖에 맛집 추천해줄 기분이 싹 가셨다. 그리고 내 안에 뭔가가 자꾸 꿈틀거리는 기분이었다. "정차장님, 신경 쓰지 마세요. 돈 안 쓰거든요? 저 블로그 하는 데 그걸로 협찬받는 거거든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꾹 참아야 했다. 회사에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알려준다는 것은...마치 눈을 가리고 트럭을 몰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것과 같았다.


 이쯤에서 대화가 마무리되길 기원했지만 정차장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요즘 젊은 여자들이 결혼 생각 없다, 애 생각 없다 그러는데 다 쓸데없는 데다가 돈을 써서 그런 거라니까...앞으로 그러면 안돼. 내가 얼마 받는지 뻔히 아는데 이렇게 비싼 걸 먹으러 다니고...결혼 안 할 거야?"

 "..."

 "남자들 중에는 이렇게 먹는 거에 돈 쓰는 사람 거의 없을 거다. 이게 진짜 여자랑 다르다니까."

 

 난 정차장이 무슨 말을 해도 가만히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난 어리석은 인간이고, 인간은 언제나처럼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차장님...그만 하세요. 저 이거 다 공짜로 먹는 거니까."


 비싼 음식을 공짜로 먹는다는 내 말에 정차장은 더 흥분한 듯했다.

 "뭐야? 그럼 남자친구가 사주는 거야? 남자친구 돈은 뭐 돈 아니야?"

 "어후...저 블로그 해서 공짜로 먹는 거니까 그런 소리 좀 그만 하세요."

 "뭐? 블로그? 그 유명한 파워 블로거, 뭐 그런 거야?"

 

 정차장은 블로그 링크를 보내달라며 성화였다. 난 내 입으로 블로그 얘기를 꺼낸 것을 미친 듯이 후회했다.


 "그냥 별거 없어요."

 "그냥 어떤 블로그인지 궁금해서 그래. 어?"


 그의 도발에 무릎을 꿇고 블로그 얘기를 꺼냈지만, 도저히 링크를 보낼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그냥 내 핸드폰으로 내 블로그를 잠깐 보여주고 말았다. 그가 내 블로그를 유심히 보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뭐 별달리 문제가 생기겠는가?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회사에 내 블로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정차장의 검색 능력이 생각보다 좋았는지, 잠깐 보여준 블로그의 내용을 검색해서 내 블로그를 알아내고 만 것이다.


 결국 난, 회사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아주 개인적인 내용의 글들을 비공개 처리하였고, 애초에 정차장에게 맛집 추천 같은 것은 해주지 말았어야 한다고 후회했다. 아예 새로운 블로그를 시작할까 고민도 했지만, 이렇게 키워놓은 블로그를 버려두고 새로운 블로그를 키운다는 것은 막막한 일이었다.


 회사에 블로그가 알려진다는 것은. 그냥 그렇게 조금 불편한 일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것 조차 오산이었다는 것을 얼마 뒤 알게 되었다.


 지나가다 마주치는 선배들이 종종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진짜 내가 후배 아끼는 마음으로 해주는 말인데, 그 블로그 그냥 안 하면 안 돼?"


 블로그가 알려진 것 자체도 신경 쓰이는데, 갑자기 블로그를 하지 말면 안 되냐니?


 "네? 블로그요?"

 "어. 블로그. 블로그 한다며."

 "네...블로그 하는데 그게 왜요?"

 "내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요즘 그거 가지고 말이 많아."


 회사라는 곳이 말이 많은 곳이긴 했지만, 그리고 그게 걱정되어서 블로그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맞지만, 실제로 이런 얘기를 들으니까 피가 식는 듯한 차가운 기분이었다.


 "제 블로그가 왜요?"

 "사람들이, 김대리 일 많다고 하더니 일 별로 없는 거 아니냐고. 저렇게 블로그 할 정신이 있는 거면 아직 살만한 거 아니냐고. 그런다니까? 힘들다고 하더니 힘들지도 않은 것 같다고."

"블로그 한다고 그런 얘기를 한다고요? 누가요?"


 머리를 방망이로 세게 맞은 것 같았다. 저런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다니는 사람이 누군지라도 알고 싶었다.

 "누가 그래요?"

 "그걸 내가 누구라고 어떻게 얘기하겠어. 그냥 조심하라고 얘기해준 거야. 너무 신경 쓰지는 말고."


 신경 쓰지 말라고?

 이런 얘길 듣고 어떻게 신경을 안 쓴단 말인가? 미친 듯이 신경 쓰이는데!


 그 선배를 시작으로 그 뒤로 몇 명이 비슷한 얘기를 했다. 블로그 하는 것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으니 조심하라면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욕하는지 전달해주고, 누가 그런 얘기를 하고 다니는지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런 얘기를 듣고 나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 중에서 누가 내 블로그를 싫어할까? 이 중에서 누가 내 욕을 하고 다닌 걸까? 누가 나를 싫어할까?...

 행동하는 것이 불편하고 블로그에 글 올리는 것이 불편해졌다.


 내가 블로그를 하는 게 그렇게 잘못이었을까?


    , 업무 중 다친 , 제대로 거동을   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일을 그만할 수는 없었고 집에 가면 녹초가 되어   있는 일이 없었다. 주말에 외출도 하기 어려웠다.

 

 망가진 몸. 다쳐도 쉴 수 없었던 회사. 4시간 이상의 통근시간. 그 모든 것들이 우울해서 시작한 것이 블로그였다. 회사 외에는 외출은 엄두도 낼 수 없었던 내게, 블로그는 내 소식과 생각을 정리해서 알려줄 수 있는 소통 창구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블로그가 크기 시작했고, 블로그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주말에 시간을 쪼개가며 운영했던 블로그.(평일에는 야근 때문에 블로그에 신경  시간이 없었음)  블로그가 그렇게  먹을거리란 말인가?


 그래. 나 블로그 한다. 그것도 열심히. 근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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