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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히니 Jul 05. 2021

그들은 1도 신경 쓰지 않는다. 설사 내가 쓰러지더라도

퇴사자의 변명

 일요일 저녁, 집으로 퇴근하는 길이었다. 이 문장에서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내가 월요일도 화요일도 금요일도 아닌 일요일에 퇴근하는 중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대단하게 이루고 싶은 바가 있어서 일요일까지 출근해서 근무했던 건 아니었고, 그저 어쩔 수 없어서 주말에도 출근을 하며 일하고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업무량 덕에 아무리 일을 해도 일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못 나간 지가 꽤 된 것 같았다.

 “너 이번에도 못 나와? 이번엔 재희 생일이잖아.”

 “아...나 이번 주에도 주말에 출근해야 돼.”

 “도대체 왜 그렇게 일이 많은 거야?”     


 도대체 왜 그렇게 일이 많냐고? 글쎄. 내가 무능한 걸까? 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유독 일처리가 느린 걸까? 아니면 우리 회사가 미친 듯이 성장 중이라 일이 많은 건가?


 아니. 모두 아니었다.

 

 왜 이렇게 해야 할 일이 많은지에 대한 이유를 따지기란 조금 어려웠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따지는 것처럼, 그 시작에 대한 답을 구하기는 좀...애매했다. 내가 일이 많은 것이 팀원들 때문인지 아니면 팀장님 때문인지 정확히 집어내기가 애매한 탓에...     


 당시 우리 팀장님은 일을 못하는 팀원이 있으면 그 팀원을 업무에서 배제하고 방치했다.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팀원은 조금 더 신속하게 배제당했고, 일할 의지가 있어도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는 몇 차례 기회를 줬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 그 기회를 잡지 못했고, 기회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업무에서 배제되었다.     


 일할 의지가 없는 사람,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까지 이끌며 일을 하는 것이 조금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는지, 그냥 팀원들 중에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을 다그치고 몰아붙이며 업무를 추진했다.



 내가 일을 못 하는 팀원들 때문에 더 힘든 건지 그런 팀원들을 버리는 팀장님 때문에 더 힘든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신 차려보니 팀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2~3명에 불과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중 한 명이었다.)     


 불합리한 상황에 반기를 들고 싶기도 했지만, 소심하게 반기를 들었을 때마다 더 심하게 짓밟혔으므로 어느 순간부터는 반기를 들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쳇바퀴 속에서 하루 종일 뛰어다니는 삶을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쳤다. 몸은 가끔 말을 듣지 않았고, 몸이 아프자 의욕마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일요일 저녁, 퇴근하는 길. 그 사건이 발생하고 만 것이다. 평소에도 업무를 감당하는 것이 힘들었는데, 하필 그 주 금요일부터 심한 생리통을 앓고 있었다.


 참고로, 난 생리통이 원래 심한 편이다. 한 번 생리를 하면 그중 하루 이틀 정도는 굉장히 심한 통증에 고생을 하고, 나머지 날들도 그렇게 컨디션이 좋지는 않다.     

 그렇다고 생리하는 기간에만 컨디션이 안 좋은 것도 아니다. 생리하기 전에는 심리적으로 우울해져서 무기력감에 고생한다. 지인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생리로 인한 타격을 더 많이 받는 편인 것 같긴 했다.      


 이런 시기에는 정시 출근, 정시 퇴근하면서 몸을 사려야 했으나,

 “김대리, 이거 월요일 오전에 출근하자마자 바로 확인할 수 있게 좀 해줘.”

 라고 팀장님이 금요일 6시가 넘어서 말했다. 그 말인즉슨, 주말에라도 작업하라는 소리였고, 팀장님이 부탁한 그 일은 사내 시스템에 접속해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출근하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금요일은 너무 몸이 좋지 않아서 더 근무할 상황이 아니었고, 토요일과 일요일에 출근해서 팀장님이 원하는 바를 완벽하게 끝내 놓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지하철을 탈 때까지는 그래도 약간 홀가분한 느낌이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비로소 끝냈다는 안도감. 근데 그런 마음과 다르게 몸은 점점 괴로웠다. 갑자기 위경련인 듯 배가 꼬인 것처럼 아프고 식은땀이 났다. 참을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몇 분이 지나자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몇 분만 지나면 집과 가까운 역에서 내릴 수 있으니 참아보자고 생각했지만, 점점 정신은 혼미해져 갔다. 결국 난 지하철에서 실신하듯 주저앉았고, 몇몇 고마운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며 날 부축했다.     


 그 고마운 사람들은 날 부축해서, 역사 직원에게 데려다주었고, 그 이후로는 실신해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간중간 나는 기억으로 추측해보면, 정신을 잃어서 누군가 119에 신고를 해준 것 같고 그 사이에 ‘저녁 때문에 그런데 집에 언제 도착하냐.’고 전화한 부모님이 내 실신 소식을 듣고 응급실에 급히 온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엄마가 옆에서 날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었고, 난 링거를 맞고 있었다.

 “엄마?”

 괜찮아?”

 “어. 어떻게 왔어?”

 “언제 들어오나 하고 전화해보니까 응급실 간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괜찮아? 아니 이 지경이 되도록...에휴 정말. 그냥 회사 때려치워.”


 마음 같아선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내가 조금 기운을 차린 것처럼 보이자, 엄마는 나에게 좀 이상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현수야, 근데 너 회사에 있다가 온 거 맞지?”

 “어. 왜?”

 “사실, 그 이민 팀장? 그 사람이 너희 회사 팀장 맞지?”

 “어. 근데 왜?”

 “너 여기서 링거 맞고 있을 때 전화 왔었어.”

 “받았어?”

 “급한 일일지도 모르고...그래서 받았지 뭐.”     


  말을 끝으로 엄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의 한숨 소리 때문에, 혹시나 엄마가 우리 딸한테  그만 시키라고 팀장님한테 화낸  아닐까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근데 상황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엄마는, 팀장님과 통화하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줬다.


 “네, 여보세요.”

 “어...혹시 김현수씨 핸드폰 아닌가요?”

 “아, 네 맞습니다. 팀장님. 저 현수 엄마입니다. 안녕하세요?”

 “아...예...어머니...김현수 대리랑 통화 어려운가요?”

 “아...현수가 사실 지금 퇴근하다가 지하철에서 쓰러져서...응급실에 와 있습니다...”     


 여기서 그냥 팀장님은 내 걱정이나 하고 전화를 끊으면 될 노릇이었다. 하지만...     

 “네? 퇴근하다가 쓰러졌다고요?”

 “예...오늘 일한다고 회사갔었는데...”

 “네? 저는 출근하라고 시킨 적이 없는데...”     


 걱정은 둘째치고 출근하라고 시킨 적이 없다는 말부터 하는 팀장님한테 정이 떨어졌다는 엄마는, 화가 났지만 평정을 되찾았다. 그래도 어쨌든 딸의 팀장이니까.     


 “아...그런가요..?”

 “네. 저는 출근하라고 한 적이 없는데...회사에서 퇴근하다가 쓰러진 거 맞나요? 김대리가 개인적인 약속이 있어서 놀러 갔다가 그런 게 아닌가 싶은데요.”

 

 하지만, 팀장님은 약간 선을 넘어버렸다. 걱정이나 하고 끊으라고!!!     


 “아...예...근데 제가 알기론 일 때문에 출근한다고 했고 어제도 오늘도 회사 갔다 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예. 어머니. 근데 제 생각에는 김대리 일한 게 아니라 다른 개인 용무가 있었을 것 같고요. 설사 회사 갔다고 하더라도 제가 일을 시키거나 출근하라고 했다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닙니다. 도대체 왜 주말에 출근을 했지…”

 아....예...”     


 결국 통화 처음부터 끝까지 팀장님은 나에 대한 걱정은 한 마디도 없이 본인에게 혹시나 해가 되지 않을까 염려했다고 한다.     


 딸이 일하다가 쓰러진 것도 마음 아픈데, 팀장이라는 사람이 전화해서 저런 소리를 해서 그런지 엄마는 뭔가 우울해 보였다.     


 “에휴...엄마가 돈이 많았으면 네가 이런 고생 안 하는 건데.”

 

 엄마는 저 말과 함께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이런 말까지 들으니 내가 뭘 위해 달려왔는지 한없이 허무했다. 옆에 있는 팀원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팀장이 나를 포함한 몇 명만 갈구면서 일을 시켜도 바보처럼 견디고 또 견뎠는데, 그러다 쓰러진 사람에게 결국 저런 말 밖에 할 말이 없는 걸까?     


 난 그날 링거를 맞고 퇴원했고, 다음 날 아침엔 또 지옥철에 몸을 맡기고 불과 몇 시간 전에 퇴근한 그 회사로 다시 출근했다.


 나를 보자마자, 팀장님은 내게 말했다.

 “김대리, 어제 진짜 회사 왔던 거 맞아? 회사 왔더라도, 부모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내가 입장이 뭐가 되겠어. 그리고 남들이 들으면 내가 뭐 주말에도 꼭 출근하라고 하는 줄 알겠어. 앞으론 좀 조심해줘. 근데 몸은 괜찮은 거지?”     


 역시. 회사는 나를 1도 신경 쓰지 않는다. 설사 내가 일하다 쓰러져 실려가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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