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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심

질투는 내 목표

by 사라랄라 철사라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나는 남들이 가진 것에 대해서는 질투를 하지 않는다. 다만 관계에 대한 질투심은 상당한 것 같다.


내가 처음 '질투'라는 것을 느꼈을 때는 7살 무렵 엄마와 오빠 사이에서였다. 그땐 그 감정이 그땐 질투인지 몰랐다. 엄마와 오빠는 굉장히 다정해 보였고, 나를 더 질투 나게 할 생각이었는지 더욱 다정하게 즐거운 척을 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놀렸다. 놀린 게 분명하다. 전 후 관계는 지금 전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굉장히 약이 올랐고, 질투심이 생긴 건 생생하게 아직도 생각이 난다.

오빠랑 싸우면 "어디 감히 오빠한테!", 오빠가 잘못했어도 "오빠한테 대들면 안 돼!"......

이때부터였을까? 나의 '질투심'이라는 게 자라난 사건이..


초등학교 때는 처음 관계에 대한 질투를 느꼈다. 같이 놀던 친구들이 나를 빼고 귓속말을 했을 때, 굉장히 궁금하기도 했고 질투도 났다. 무슨 이야기 일까?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가?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이라 친구들한테 가서 나름 그때의 용기를 총 동원해 물었다. '무슨 이야기야? 나도 알려줘.' 돌아오는 대답은 나의 세상을 무너지게 했다. '아 왜 이렇게 오지랖이야' 그 후로 관계에 대한 트라우마도 생겼고, 사랑과 관계에 대한 질투심이 더 커져 갔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처음 해본 연애에서도 다른 이성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질투심. 괜한 투정 부리기. 이때만 해도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들여다 보고 말로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항상 툴툴거리거나 틱틱거리는 것으로 표현을 했던 것 같다. 상대가 나에게 왜 그러냐 물어도 내 감정이 왜 이렇게 요동치는지 모르겠어서 내가 느끼는 질투심을 말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렇게 감정의 골은 깊어져 몇 번의 이별을 하고 나서야 감정표현을 해야 건강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을 알아차렸다.


반대로, 질투를 대놓고 받아 본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평범한 집에서 유복하게 자라왔던 것 같다(지금은 아버지의 사업이 휘청여서 그렇지

못하지만). 그 시절 초등학교 저학년 때 삐삐를 가지고 다녔으며, 이후 나온 휴대전화로, 최신 휴대전화는 다 써봤으며, 하고 싶은 취미활동도, 배우고 싶었던 것들도 다 배워봤었다. 그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운동이라 운동선수의 삶을 선택했고, 인생의 굴곡 없이 자랐다.


고등학교 때, 시내에서 살다가 부모님께서는 이제 너희들도 다 컸으니 엄마 아빠는 외곽에 전원주택을 지어 살겠다고 주택을 짓고, 나는 통학거리가 상당히 멀어졌다. 전원주택에 들어가니 집에서 수영장까지의 거리는 차 타고 4-50분의 거리였다. 매일 아빠가 새벽 5시에 수영장에 내려주면 나는 수영을 하고 택시 타고 학교에 등교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 고3 생일이 지나자마자 다른 친구들은 수능에 매진하고 있을 9월에 나는 운전면허 학원을 등록했다. 그 시절 나의 꿈이었다. 고3 생일 지나자마자 면허를 따는 것. 실제로 생일 지나자마자 면허를 땄고, 아빠는 새벽 5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를 수영장으로 태워 주신 지도 10년. 이제는 힘에 부치신다고 면허도 있으니 알아서 통학하라고 중고차를 사주셨고 그때부터 혼자 운전을 해서 다니기 시작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랑하기 위해 그랬던 건 아닌데, 누군가에겐 자극제가 되었을 것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인천에서 지방으로 전학 온 동기는, 항상 나를 시기질투 했고, 친구들 사이에서 이간질하기 바빴으며, 내가 하는 것은 다 따라 해야 직성이 풀렸나 보다. 그때의 나도 대단했지. 그 친구가 그러든지 말든지 관심이 없었다. 사건이 터진 건 대학생 때였다. 대학생 때도 차를 끌고 다녔던 나는 친구들과 선후배 사이에서 유명했었다. 첫 차를 팔고 두 번째 차를 구매했을 때, 문제의 그 친구가 집에 가서 차를 사달라고 졸랐단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통근 셔틀버스를 타면 된다고 차를 파셨고, 어머니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가셨다. 그 친구의 어머니는 자주 나에게 전화해 한탄을 하셨고, 잘 좀 데리고 놀아달라고, 잘 좀 챙겨달라고 같이 졸업만 무사히 할 수 있게 옆에서 도와달라고 했었었다. 그렇게 그 친구의 차가 생겼다. 나는 털털하고 소탕하고 잘 경청해 주는 성격으로 원만한 대인관계를 갖고 있었는데, 그 마저 질투가 났는지 나를 이간질하여 내 친구들을 나한테서 떨어뜨려 놓으려고 했었다. 그렇게 안되어서 결국엔 그 친구와 나와의 관계가 끝이 났다.

사람 인연을 참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참 씁쓸한 대학 생활의 한 장면이다.


적당한 질투심은 나를 성장하게 하는 발판이 될 수 있지만, 잘못된 모습으로 분출이 되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가뜨리고 나아가 스스로를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던지 망치게 할 수도 있다.

요즘엔 SNS의 발달로 예전보다 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모두가 애쓰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작 나를 스스로 돌보지 못할 때가 있기도 하다. SNS 속 사람들은 갖고 싶었던 차, 가방, 옷, 운동화 등을 사서 자랑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거나 새 집을 장만하거나 화목한 가정을 꾸린 주변인 들을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질투심을 느끼곤 한다.


본디 질투는 내가 원했던 것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을 반영하는 감정이기에, 스스로 비난하기보다는 좌절감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헤아려줘야 한다. 자연스럽게 느낀 감정을 애써 부정하게 되면 부적절한 방식으로 표현이 될 수 있다. 그 친구처럼..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고 질투의 대상을 시기심이 아닌 목표로 삼고 생산적인 목표와 인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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