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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youth Oct 15. 2019

10. 내가 식물을 키울 줄이야

어쩌다 보니 타운하우스 101동 2호 식물 고난사(?)

솔직하게 말해서 식물의 식자도 몰랐다. 그렇다고 관심이 있지도 않았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결혼 전 엄마가 키우는 난에서 꽃이 피는 즐거움을 내게 말했을 때 나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고 '엄마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봐'라고 망언을 하는 식알못이었다. 식물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내겐 올드하게 느껴졌다. 그런 내가 지금은 집에 꽃 대신 식물을 여기저기 들여놓기 시작했다.


타운하우스로 이사한 뒤 집을 꾸미고 싶다는 욕구가 최절정에 다다랐을 무렵 회사 근처 문화센터에서 꽃꽂이를 배우기 시작했다. 꽃꽂이에 대한 흥미는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됐다. KTX역에서 우리 시골집으로 가는 길엔 여기저기 화원이 있다. 호기심 많은 남편과 나는 그곳에 들러 꽃 사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일반 꽃 가게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꽃을 다발로 구입할 수 있으니 집안 여기저기 꽂아 놓는 게 기쁨이 됐다. 어차피 처음부터 근사한 포장은 필요하지 않기에 꽃꽂이를 배운다면 조금 더 멋스럽게 집을 장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겨울에 시작한 꽃꽂이 클래스. 칼바람이 몰아치는 추위에도 두 손 가득 꽃을 들고 오는 게 정말이지 기뻤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엔 그럴싸했던 꽃들이 시드는 게, 또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게 여간 마음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볕 잘 드는 남향집 덕에 꽃이 잘 말라 드라이플라워로 집안 이곳저곳을 장식하며 재미를 느끼기도 했지만, 싱싱했던 꽃의 생기를 보는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우울한 날 친구에게 선물 받았던 꽃


그렇게 꽃에서 직접 식물을 키우는 것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차라리 직접 키워 그 싱싱함을 내내 보자고. 요즘 대세 중에 대세인 플랜테리어도 큰 몫을 차지했다. 물도 관심도 잘 주지 않아도 된다는 식물들이 TV와 인터넷 게시글에도 즐비하니 나도 잘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행 따르기를 좋아하니 공중 식물부터 키워야지. 틸란드시아, 이오난사.. 공기 정화에 먼지까지 먹고, 물도 일주일에 한 번 주면 된다고? 정말 쉽네. 그런데 믿기 어렵게도 지금까지 수염 틸란드시아 한 번, 이오난사 두 번을 죽였다. 모두 식물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황에서 우리 집으로 데려왔던 것들이다. 이오난사는 한 번은 과습으로, 또 다른 한 번은 틸란드시아와 함께 물을 너무 주지 않아 메말라 죽었다.


아 그럼 진짜 쉽다는 다육이, 그래 다육이를 키우자. 다육이는 옹기종기 귀엽기까지 한데 저렴하기까지 하다. 참새 방앗간 들르듯 화원에 들러 천 원, 이천 원을 주고 다육이를 사모았다. 처음엔 나쁘지 않았다. 흙이 말랐을 때 물을 준다는 것을 명심하고 또 명심했다. 몇 달을 잘 키웠다. 그런데 내가 또 하나 간과한 게 있었다. 겨울 추위. 언제나 타운하우스는 겨울이 말썽이다.


우리 집은 겨울에 난방을 하지 않으면 1층 거실에선 입김이 날 정도로 춥다. 다육이들은 더운 곳에서 자라는 식물들이라 하니 위치를 옮겨 줘야 할 것 같았다. 마땅한 곳을 찾던 중 2층 테라스가 생각났다. 폴딩도어를 설치하고 났더니 빛을 모아주어 그런지 한낮엔 1층보다 훨씬 그곳이 따뜻했다. 햇빛도 잘 받을 수 있으니 그곳이 딱 일 것 같아 귀요미 다육이들을 테라스로 옮겼다. 그런데 낮이 문제가 아니라 밤이 문제였다. 해가 지고 기온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다육이들은 냉해를 입고 말았다.



고백컨데 웬만해선 죽지 않는다는 스투키도 이때 냉해로 10대 중 8대가 저 세상으로 갔다. 하필 이 스투키는 남편이 예쁘다며 좋아하던 것이라 '왜 죽였냐'는 소리를 한동안 들어야 했다. 다른 거 죽었을 땐 잘 알지도 못하더니...


이런 상황 속에서도 나의 식물 키우기는 여전하다. 저온에서 어렵게 살아남은 스투키 2대와 지금은 1년 넘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틸란드시아가 있다. 다시 한번 키우면 '이젠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남편이 선물해준 틸란이다. 다시 야금야금 사들인 다육이 화분 3개와 작은 식물이 더 키우기 힘들다며 사온 뱅갈 고무나무와 고무나무가 아직은 잘 자라주고 있다.


난리, 난리 이런 난리도 없다. 엄마에게 이런 관심사를 말했더니 '너희 집 정원에 난 잡초나 뽑으라'라고 했다. 언제나 원초적인 진실로 나를 돌아보게 하는 엄마의 말. 너무나 맞는 말인데 이놈의 관심이 좀처럼 거둬지질 않는다. 그렇게 저번 주에도 화원에 들러 페페를 집으로 데려왔다. 이번엔 정말 잘 키우려고 했는데 페페를 정원 데크에 내려놓음과 동시에 쮸삐가 일부분을 뜯어먹어버렸다. 시작이 조금 불안하지만, 이번엔 정말 잘 키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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