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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마아빠 Aug 22. 2021

이건 미리 알려줘야 하지 않나요?

임신 제10주

흔히들 ‘국제결혼’ 하면 음식이나 언어, 혹은 가치관에서 문화차이가 나타날 것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영어권 나라에서 유년기의 절반을 보낸 내 경우, 영국인 아내와 살면서 음식이나 언어에서 두드러지는 문화차이를 경험한 적은 없다. 진짜 문화차이는 주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고개를 내밀곤 한다.


임신 10 차인 이번 주가  번째 내원이었다. 처음 병원을 찾은 날부터 지금까지, 아내는 투병을,  살림과 돈벌이를,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버텨 왔다. 지난   반을 돌이켜봤을 , 아내의 토사물 그릇을 씻고 엄청난 양의 설거지를  기억이 7 정도를 차지하는  같다. 그래도 요즘은 아내가 미세하게나마 기력을 회복하고 있어, 같이 임신 관련 책도 찾아보고 인터넷도 뒤적거릴  있게 되었다. 아내 상태도 나아지고 있겠다, 산부인과 짬도 조금 찼겠다, 마냥 혼란스럽기만 했던 임신이 이제 조금 감이 오나 싶었다. 그러다  번째 내원에서 사달이 났다.


그날 초음파 검사에서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없었다. 그저 배아가 지난번보다 1cm가량 커졌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사경을 헤매는 엄마와는 다르게 별 탈 없이 잘 자라고 있다는 위로의 말을 듣는 정도였다. 이날 아내의 심기를 거스른 요인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첫째는 이번에 받은 초음파 검사가 보험 적용이 안 된다는 사실을 의사가 우리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이었고, 둘째는 진료 내내 지난번 했던 피검사 결과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던 의사는 내가 “피검사 결과는 어땠어요?”라고 묻자 그제야 “아, 갑상선 검사 결과에 이상이 있어 다시 해보면 좋겠네요.”라고 말한 것이었다. 비급여 초음파 검사 35000원과 갑상선 재검사 30000원, 총 65000원을 수납하고 집에 돌아온 후 아내가 말을 꺼냈다.
“나 너무 화가 나.”
“왜?”
“아니, 보험 적용 안 되는 검사를 할 거면 미리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음…그런가?”
“정보를 주고 마지막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게 맞지, 왜 돈은 돈대로 내면서 필요도 없는 검사를 해야 하냐고. 그리고 피검사 결과 얘기는 우리가 물어보기 전에 했어야지. ‘지난번 검사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 갑상선 항체 수치가 조금 낮게 나왔는데, 그건 이런 뜻이다. 그러니 다시 검사해보는 걸 추천한다. 비용은 이 정도 나온다.’ 이렇게 얘기를 해주면서 해야지, 필요 없는 검사나 시키고, 물어봐야 알려주고. 이건 아니지.”

알고 보니 한국은 출산 전 초음파 검사 중 7번만 보험 적용이 되고 나머지는 환자 부담이었다. 우리가 이번에 했던 초음파 검사는 보험 적용이 안 되는 검사였던 것이다. 아내가 캐나다와 영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캐나다는 임신 40주를 통틀어 초음파 검사를 달랑 2번 하고, 영국은 총 4번 한단다. 반면 우리가 다니는 병원은 보험이 되는 초음파 검사만 7번이고, 사실상 그 이상을 권하고 있었다.


난 아내가 집에 와서 부당함을 토로하기 전까지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병원에선 의사가 최고권위자이고, 전문가도 아닌 내가 의사가 내린 처방에 왈가왈부한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다. 단지 내 불만사항은 산부인과에 보험 적용이 안 되는 항목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무슨 여드름 짜는 것도 아니고 출산에 필요한 검사가 보험이 안 된다는 게 굉장히 후지게 느껴졌다.


한편 아내의 불만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아내 왈, 의사는 처방을 내리고 환자는 "네네"하다 끝나는 게 아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와 도움이 필요한 자가 동일 선상에서 대화를 통해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환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라는 얘기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었다. 여타 나라와 비교해봐도 보험 적용이 되는 7번의 검사만으로도 이미 충분하고도 남는 수준인 것은 확실했다. 또한 보험 적용 횟수가 7회라는 얘기는 나라가 판단했을 때 해당 검사를 최소 7번은 받아야 환자의 안위를 보장할 수 있고, 그 이상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는 뜻이다. 만약 그 이상의 검사가 꼭 필요했다면 나라에서 그것을 보험 적용 항목으로 지정했을 테니까 말이다. 따라서 혹자가 돈을 내고 7회 이상의 검사를 받겠다면 그건 개인의 자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미리 사실정보를 알려주고 당사자의 의중대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상대적으로 무지한 환자를 무작정 한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닌, 충분한 설명과 이해를 토대로 환자 본인이 결정하게 하는 것 말이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이 만나 같이 살다 보면 뜻밖의 지점에서 문화차이를 경험하게 된다. 쌍방향 소통과 환자의 결정권을 존중하는 영미권 의료체제에 익숙한 아내.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에 익숙한 . 함께 같은 병원을 드나들 일이 없어 몰랐는데, 아이가 생겨 비로소 경험하게  문화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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