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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랑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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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ly Oct 07. 2020

짝사랑

밝은 달아 떠가라! 애타는 그리움 전해 줄 이 너밖에 없으니... 어서

비록 이국 만리 타향에 와 살고 있어서 한국의 절기를 모르고 지내지만 초가을 저녁 하늘에 보름달이 뜰 즈음이면 추석이 가까운 걸 알지. 올해에도 점점 커져가는 달을 보고 추석이 오는 걸 알았는데, 추석날엔 온종일 하늘에 구름만 가득하여 보름달이 얼굴 한 번 내밀지 않더라. 일기 예보엔 다음날도 흐리다 하여 보름달을 못 볼 줄 알았는데, 비 내린 후 돌연 하늘이 열리고 뜨락의 밤나무 가지 사이로 별이 빛 얼른 베란다에 나가 보니, 길 건너 삼층집 지붕 위로 둥근달이 불쑥 솟아오르는 거야. 놓칠 새라 내 얼른 삼각대에 카메라 설치하고 용케 달 사진 몇 장 찍고 나니 어느새 구름이 쳐들어와 달을 잡아가더라.


가을 하늘에 보름달이 훤하게 뜨면 고국에서도 누가 저 달을 보겠지 하는 생각에 멀리 둔 친지와 옛날 애인도 마음에 그려보네. 애인?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미색에 마음 빼앗기는 일이 거의 없지만, 몸 덩어리가 온통 청춘의 향기를 발하던 시절에는 그저 보기만 해도 어쩔 줄 모르게 좋았던 애인들이 있었지. 연애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도 없이 애인들이 있었다고? 그래! 짝사랑도 연애이니까...

대학교 신입생이었을 때 교내 방송국에 들어갔었네. 거기에는 주로 연극영화과와 신문방송학과 학생들이 있었지만, 나 같은 공과대학생도 좀 끼어서 방송장비를 조작하며 교내 방송을 했지. 당시 1학년 남자애들은 초여름에 문무대라는 곳에 입소해서 군사훈련을 받았는데, 1주일쯤 지나니까 위문편지가 왔어. 편지엔 "메리야스 속에서 고운 꿈을 꾸는 그대는 지는 해를 바라보기 위해 마흔일곱 번이나 의자를 고쳐 앉는 어린 왕자 같아요"라고 적혀 있더군. 놀라고 설레고 어리둥절해서, 세상에 어떤 여자가 이렇게 멋진 표현을 쓸 수 있을까? 게다가 어쩌면 나를 이리도 잘 알지? 의심했는데, 방송국 친구들도 각자 내용은 다르지만 편지를 받았대. 그래서 장난 편지인 줄은 알았지만, 사실인양 기분은 좋았어.
훈련 끝난 후에 알고 보니 편지 쓴 건 목소리 고운 '나미연이'였어. 나와는 말을 별로 안 해 본 '-연이'가 여름방학 때 선유도로 MT 가서 옆에서 쌀을 씻으며 앳된 소리로 묻더군.

> 나... 는 새가 무서워. 넌 무섭지 않니?
< 히치코크 영화에 나오는 '새' 같은 거?

... 민박집 우물가에 끼룩끼룩 갈매기 울다...

쌀 씻고 나서 그 귀엽도록 겁 많은 '나미-'와 둘이 마을로 김치를 사러 갔었네. 그 길에 갈매기가 나타나 겁 줬으면, 돌팔매질해서라도 용감하게 '-연이'를 지켜 줄 수 있었을 건데... 젠장!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는 그 흔한 '새'가 한 마리도 없지 뭐야. 혹시 같이 가다가 넘어지기라도 했으면... 이것도 꿈이지! 잘 다져진 모래길에서 다 큰 여자애가 왜 넘어져? 결국 김치를 사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힘쓸 기회는 없었네. 김치도 내가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 '어린 왕자'처럼 '장미꽃 한 송이'를 보호해 줄 힘은 있었다구! 단지 '새'가 안 나타나서 보여 줄 수가 없었을 뿐이지!

... 끼룩끼룩 나 울다...


이야기가 좀 싱거웠나? 어쩌면 자네에게도 가까이 있으면 기뻐서 가슴 설레고 멀리 있으면 그리움 가득! 혼을 빼앗겨도 마음 아프단 말 한마디 못하고, 느껴보고 싶어도 감히 촉수를 댈 수 없는 귀인이기에 잠잠히 태워 바친 짝사랑의 추억이 있을 것 같아. 그치? 아주 진하게 그립고 아팠던... 사랑한다고 말해보지 못한 사랑 이야기!


사랑한다는 말은 참 하기가 힘들어. 오죽하면 황진이 미모에 반해 상사병으로 죽을 때까지 이웃집 청년은 말 한마디 못하다가 상여에 실려 가면서야 겨우 황진이 집 앞에서 상여꾼의 발을 묶게 했을까? 어떤 남자는 직접 사랑한다는 말을 못 해서 달에게 호소했대 - 은빛 찬란한 달을 보며 자신의 애타는 그리움을 그녀에게 가서 전해달라고! 그 탄원은 애절한 노래가 되는데, 그게 바로 이탈리아의 작곡가 빈첸쵸 벨리니( Vincenzo Bellini: 1801-1832) Vaga Luna야.


그 노래를 지난 7월에 한 번 듣고 곡이 좋아서 가사를 인터넷에 검색했더니, Vaga Luna는 국어나 일어 영어로도 모두 '아름다운 달' 혹은 '방랑하는 달'로 번역되어 있는데, 의미가 불분명하여 이탈리아어 가사를 나름대로 다시 해석해서 어울리게 노래 불렀네. 원곡 해석은 뒤에 보고 귀부터 좀 빌려 주게.


이어폰 준비됐으면 아래 이미지 클릭해서 유튜브 동영상에서 튀어나오는 소리 남몰래 들을 수 있네.

YOUTUBE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gdBqElSJKUY

Vaga Luna Che Inargenti/Vincenzo Bellini - 3분 6초



 - 이탈리아어 가사와 해석 -


벨리니가 작곡한 'Vaga Luna Che Inargenti'의 가사는 원래 이탈리아어인데, 듣기 좋은 노래라 나도 한 번 불러 보려고 악보를 찾고 가사를 해석하는 중에 보니, 국어로는 '방랑하는 은빛 달이여' '방황하는 은빛 달이여' 또는 '아름다운 은빛 달이여'로 번역되어 있어. 노래 제목이 모두 달에 관한 것이지만, '방랑하는 달'과 '아름다운 달'이란 전혀 다른 의미의 제목에 눈길이 끌려, 가사의 첫 소절을 다른 언어로는 주로 어떻게 번역했나도 좀 살펴보았지.


영어로는 'Beautiful moon, dappling with silver: 아름다운 달, 은빛 물들이는...', 프랑스어로는 'Belle lune, qui inargentes: 은빛을 내는 예쁜 달...', 독일어로는 'Lieblicher Mond, der mit seinem Licht diese Küsten und Blumen versilbert: 사랑스러운 달, 그 빛이 이 강변과 꽃들에 은을 입히는...' 스페인어로는 'Hermosa luna, salpicada de plata :  예쁜 달, 은빛을 발하는...', 일본어로는 '優雅な月よ, 汝は銀色に輝かせ: 우아한  달이여, 그대는 은빛을 내어라...' 등 'Vaga'를 '아름다운'으로 주로 번역하는데, 중국어로는'游移的月亮洒下银光: 떠도는 달이 은빛을 뿌리네'로 'Vaga'를 '방랑하는'의 뜻으로 번역하는군.


물론 번역 가사는 번역된 소설처럼 역자가 원어를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하는가에 따르는 것이니까, 꼭 한 가지를 골라서 공인 번역으로 인정할 수 없지만 그중 나은 것이 일반화되지. 이 가사에서 'Luna(달)' 앞의 'Vaga'가 '방랑하는'과 '아름다운'으로 번역자에 따라 달리 해석된 이유는 이 단어가 형용사로는 '아름다운'이란 뜻이 있고, 동사로는 '방랑하다, 떠돌다'란 의미가 있기 때문인데, 국역으로는 '아름다운 달'보다는 '방랑하는 달' 쪽이 우세한 듯하네.


노래를 그냥 잘 부른 것 골라서 따라 부르면 되지 귀찮게 왜 가사의 내용을 파헤치냐고? 아무리 앵무새처럼 모창을 잘해도 내용도 모르고 부르면 노래의 맛이 안 나니까. 노래에는 소리만 있는 게 아니잖아? 적절한 감정이 안 들어 간 노래는 그냥 소리일 뿐이라, 모호한 이탈리아어 가사를 내 나름대로 재해석해 보았네.


어떻게?


가사 전체의 시적 구조를 분석해서...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 우선 한 번 보게.


Vaga Luna Che Inargenti - 은빛 비추는 달아 떠가라
                                                                              작곡: Vincenzo Bellini(1801-1832)

Vaga luna che inargenti queste rive e questi fiori, ed inspiri, ed inspiri agli elementi, il linguaggio, il linguaggio dell’amor;
달아 떠가라! 이 강변과 꽃들에 은빛 비추고, 온갖 것에 사랑의 말, 사랑의 말을 속삭이는 달아!

Testimonio or sei tu sola, del mio fervido desir, ed a lei, ed a lei che m’innamora, conta i palpiti, i palpiti e i sospir.
지금 여기 너밖에 없어 내 열렬한 갈망으로 증언하니, 그녀를 사모하여 애태우며 탄식하는 게 얼마인지 가서 세어 보여줘.

ed a lei che m’innamora, conta i palpiti e i sospir ed a lei che m’innamora, conta i palpiti e i sospir, e i sospiri, e i sospir.
그녀를 사모하여 애태우며 탄식하는 걸, 애태우며 탄식, 탄식 또 탄식하는 걸...

Dille pur che lontananza, il mio duol non può lenir, che se nutro, se nutro una speranza, ella è sol, si, ella è sol nell’avvenir.
멀리 있어도 내 아픔 덜 수 없고, 행여나, 품을 소원은 오직 그녀, 그래! 훗날의 그녀뿐이라고 말해주고, 

Dille pur che giorno e sera, conto l'ore del dolor, che una speme, una speme lusinghiera, mi conforta, mi conforta nell’amor.
밤낮없이 고통의 시간을 헤아리고 있지만, 희망, 희망이 나를 달래 사랑 속에서 힘을 준다고도 말해줘!

che una speme lusinghiera, mi conforta nell’amor, che una speme lusinghiera, mi conforta nell’amor, nell’amor, nell’amor.
희망이 나를 달래 사랑 속에서 힘을 준다고, 희망이 사랑 속, 사랑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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