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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ly Dec 27. 2015

닭병원

대학병원에서 어머니를 간병하며 얻은 교훈: 정신건강관리의 중요성

연초에 어머니를 뵈러 출발하기 전날 밤에 뇌졸중과 과다한 위장출혈로 어머니께서 사경(死境)에 임박하여 입원하셨다 하여 한국에 가면 곧 장례식(葬禮式)이 있을 것 같아서 마음 졸이며 예정된 비행기를 탔네.


병원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집중감시실에 계셨는데, 다음 날엔 조용하지 않고 다른 환자들에게 불편을 준다는 이유로 2인실로 밀려나셨어. 며칠 지나 상태 호전되어 일반 병실로 옮기니까, 가족이든 누구든 환자 곁에서 하루 24시간 돌봐 주는 간병인(看病人)이 상주(常住) 해야 한다네. 임기응변, 귀국 후 셋째 날부터 1주일 동안 혼자 기저귀 갈고 배설물 무게 달고 마신 음료수 부피 재고 환자가 먹은 음식의 양도 측정하여 시간과 함께 일지에도 기록했다네. 간호보조원 일은 해 본 적이 없는데... 하지만 다른 보호자도 다 하는 일이라 모르는 것은 묻고 제대로 못 본 것은 창의력을 발휘해서 시행했지.


혼자 하기 제일 어려웠던 일은 냄새나는 기저귀를 가는 것이었어. 갓난아기도 아니고 축 늘어져 있는 어른의 무게가 60킬로라고 해도 엉덩이를 들고 변이 시트에 묻지 않도록 몸을 돌려 새 기저귀로 갈아 채우는 건 진땀 나는 일이야. 거기에 만지기 꺼림칙하게 변에 젖은 기저귀는 병실 밖 복도 가운데에 있는 다용도실에 가서 남들이 다 쓰는 저울 위에 올려서 무게를 재고 나서 버렸네. 병원의 위생 시설이 얼마나 잘 돼 있는지는 몰라도, 모든 환자의 축축한 기저귀들이 올려졌던 저울에 붙은 세균이 보호자의 손을 통해 환자는 물론 모든 방문자에게 퍼질 것 같아. 보호자에게는 얇은 비닐장갑이라는 개인 보호 장비가 있기는 하지만, 그 미끌미끌한 걸 착용하기 전에 일을 치른 적도 많으니까.


청결한 간호복도 안 입은 신참 간호자(간호원도 간병사도 아닌 보호자)가 수칙도 모르면서, 수 백만의 박테리아를 손에 쥐고 환자를 만지는데, 어떻게 환자를 보호할 수 있을까? 아무리 정예의 간호사가 위생적으로 환자를 돌본다 해도 환자를 많이 만지는 보호자가 청결하지 않으면 별로 소용없는 일 같아.


우리 사는 유럽의 병원에서는 가족이 극히 제한된 면회 시간 이외에는 환자 곁에 얼씬도 못 하는데, 한국에서는 의료 기술이 발전하고 잘 사는 나라가 됐는데도, 병원에서 환자의 면회와 보호자의 간병은 삼십 년 전 같아. 달라진 건 환자 침대 옆에 높이 20센티 정도의 낮고 좁은 보호자용 침상이 하나 있다는 것뿐이니까. 간병 중에 재어보니, 플라스틱 레자가 씌워진 침상은 너비 60센티에 길이 160센티미터! 체구가 작은 내가 구부리고 누워도 꽉 차는 면적인지라, 거기에 그냥 맨바닥에 놓기 싫어서 옷과 가방을 침상 한쪽에 놓았더니 누울 자리가 없더라.


새벽에 마지못해 그 좁은 침상에 구부리고 누웠더니, 침대 밑에는 소독하고 버린 기구들과 가래침 닦은 휴지, 음식물 포장지 등 환자를 위해 쓴 의료 쓰레기가 가득 차 있어. 옆 침대의 쓰레기는 커튼 뒤에서 내 머리와 맞닿는데, 비위가 약한 나에게는 후각으로는 모르겠지만 소독약 냄새가 풍겨 나오는 것이 환영처럼 보이더라. 온종일 자리도 못 뜨면서 1주일간 병상을 지키려니 쌓인 피로 때문에 맥이 다 빠지더라. 여기가 정말 외국인도 단체로 와서 건강진단을 받는다는 자랑스러운 '쏘울닭병원'이야?


병수발 1주일 후에는 다행히 같은 병실에서 다른 환자를 봐주던 간병인이 동의해서 어머니를 돌봐 드리게 했지. 한 달이 지난 지금 어머니께서는 병세가 호전되어 부천의 시립요양병원으로 옮기셔서, 재활치료를 받으시며 기력을 되찾으시고 식사도 잘하시네만, 치매(癡呆)가 급속히 진행되어 아침에 있었던 일들을 저녁에도 기억하지 못하신다네.


평소에 건강이라 하면  나는 체력만을 생각했었는데, 노환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지켜보고 있었더니, 체력에 못지않게 정신건강이 또한 얼마나 중요한 지도 깊이 느끼게 되었네.


가족과 사회생활에 빠져 바쁘게 살면서 자신을 돌볼 겨를도 없이 지내다 보면, 체력이 떨어지는 것은 그나마 쉽게 보이는 것이라 휴식과 운동으로 만회할 수가 있지만, 정신에 감염된 온갖 병들은 당장 눈에 띄지 않아서, 그것들이 노화와 더불어 우울증이나 치매 같은 정신성 질환으로 나타난 후에야 겨우 알 수 있어. 그때는 너무 늦어서 진보된 의술로도 치유할 방법이 없지.


늙어서도 건전한 정신력을 유지해 나가려면 젊을 때부터 우리의 정신에도 육체가 요구하는 정도의 휴식을 주고 면역시킬 필요가 있어.


몸이 피곤하면 뇌를 쉬게 해서 피로를 푸는 게 아니라 몸을 쉬게 해서 피로를 풀어야 하지. 즉 신체의 휴식이 정신의 휴식으로 해결될 수 없어. 하지만, 우리는 대개 정신적 휴식을 신체적 휴식의 일부로만 취급하여, 스트레스가 쌓이면 몸을 쉬게 하는 게 고작이지.


몸과 마찬가지로 정신의 피로는 정신의 휴식으로 풀어야 하고 정신 또한 신체와 같은 단련을 필요로 하니, 이제부터는 정신건강을 위해 우리의 일과 속에 구도자처럼 수행하는 시간도 끼워 두세.


어느새 집으로 돌아온 지 꼭 한 달이 되었는데, 어머니에게 나온 환자 밥을 나눠 먹으며 배 고프게 살던 나에게 어느 날 성찬으로 환대해 준 친구들에게 답례 인사도 못했으니 미안하기 그지없어. 고맙네!


– 2013년 2월 23일, 대학병원에 들어가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깨우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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