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대한 천문학적 심리학적 개념
한 친구가 "연로하신 어머님께서 수 십 년 동안 기거(起居)하시던 집을 팔고, 이사 가셔서 홀로 사실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하기에, 작고(作故)하신 우리 어머니의 경우를 참작(參酌)해서 조언(助言)을 했다.
"연세 드신 어머니께 집을 마련해 드리는 일이 여간 큰일이 아닌 것 같네. 어르신들이 사시기에 좋은 집은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를 수도 있는데, 어르신의 의견을 존중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우리가 보기에 좋은 것으로 할 것인지를 잘 따져 봐야 될 일이네.
움직이는 걸 싫어하시는 우리 어머니는 길에 지나가는 사람도 구경하고, 동네 사람들과 쉽게 말도 건네며, 바로 눈앞 화단(花壇)에 핀 꽃도 보시는 즐거움에, 밖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아파트 1층에서 창문 열고 사시는 것을 좋아하셨네. 어르신들은 노인정(老人亭)에 가셔서 서로 밥도 해 드시고, 아들 딸 자랑하고, 며느리 흉보는 일에도 재미를 느끼시는데, 우리 어머니는 노년에도 마음이 맞는 새 친구를 사귀어 많이 어울려 다니셨으니, 경로당(敬老堂)도 꼭 봐야 하네. 또 밥하기 싫으면 쉽게 가서 사 먹을 식당도 가까이 있으면 좋은데, 슈퍼마켓이 집 앞에 없으면 아쉬울 때가 많고, 주변에 주차시설도 있어야 자식들이 모이기 좋네.
학부모들이 자식의 면학(勉學)을 위해서, 학군(學群) 좋은 곳으로 이사 가 듯이 노인 편의시설이 양호한 곳에 터를 잡게!
뒷산(공기 청정) 약수터(물이 공짜)와 집 앞 경로당(놀이방), 경비원(모친께서 담배 좀 사주고 심복으로 부리셨네), 동네 슈퍼마켓(배달도 해 주네), 마을버스(자가용이지), 은행(돈 줄이야) 그리고 서울대학병원이 가까이 있어서 우리 어머니는 분당(盆唐)을 천당(天堂)으로 알고 사셨는데, 건강 때문에 그렇게 좋아하시던 곳을 떠나 인천에 계시는 동안에도 늘 분당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셨네."
친구는 내 말에 수긍(首肯)하면서도 새 집의 위치를 정하는 데는 "자식들이 사는 곳 가운데에 살고 싶다"는 어머님의 소망에 따라 정해야 한다는 답변으로 일축(一蹴)했다. 그런데 친구 어머님의 바램이란 것이 좀 알쏭달쏭해서, 마님이 치과에 가신 동안에 살림살이 걷어 치고 좀 더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았더니, 확률이 50%나 되는 숨은 사실이 드러났다.
아들들이 모두 서울에 살고 있으니, 그 중간은 서울의 어느 곳이라고 얼핏 생각할 수 있지만, 지구는 둥근 삼차원의 물체이기 때문에 아들들이 사는 데의 중간 점은 서울의 대척점(對蹠點: 지구상의 한 지점에서 수직으로 구멍을 파고 내려가 중심을 통과한 후 직진해 올라가서 대기와 만나는 점인데 지상에서 가장 먼 곳임)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서울 (북위 37도 34분/동경 126도 59분)의 대척점은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동으로 약 600킬로미터 떨어진 남태평양의 공해상(空海上)이다. 그렇다면 친구의 어머님은 혹시 이곳에 배 타고 가서 혼자 사실 결심을 하신 것은 아닐까?
가족이나 친구들 간의 거리는 지리적(地理的)인 간격(間隔)으로 보다는 감정(感情)으로 느낄 수 있는 심리적(心理的)인 거리감(距離感)으로 가늠해야 한다. 어머니께서 자식들 중간에 사시고 싶어 하시는 것은 서로 자주 보기 위해서일 것인데, "안 보면 멀어진다"는 말과 같이 아무리 가까이에 살고 있어도, 서로 간에 연락이 없으면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것이다.
- 2015년 7월 9일, 명왕성(冥王星)으로 떠나신 어머니 사진 보면 늘 가까이 계신 것 같다.
*서울 사람 셋이서 머리 위에 뜬 우주정거장 보고, 그게 우리들 가운데 있다고 하면, 말이 되나? 의지할 곳 없는 부모님들이 자식들 가운데라고 말씀하시는 곳이 사실은 대척점보다 먼 '우주정거장'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