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숨은 얘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vely Dec 30. 2015

전염병

메르스라는 전염병은 이메일로도 퍼질 수 있나요?

작년 봄에는 세월호(世越號)의 침몰(沈沒)로 인해 한국 사회 전반이 커다란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갔었는데, 올봄에는 한국에 다녀온 지 1주일도 못 돼 메르스(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감염자 한 사람이 사망하여, 국내 여론이 온통 심각한 메르스 전염에 집중포화를 쏟아붓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가 지지리도 못 살던 어린 시절에 연례행사처럼 치렀던 홍수와 염병(染病)이 많은 인명을 앗아간 이야기를 다시 듣는 것 같다.


그 시절에는 재난 보도가 국내에서만 맴돌았었는데, 이제는 지구 저편 한국에서 병(病) 폭탄 터지는 소리가 매스컴을 타고 금세 이곳까지 진동하니, 가족과 친지 중에 튕겨 나온 파편에 상처를 입었거나, 방송에 실려 나오는 폭음을 듣고 겁에 질려 떨고 계신 분은 없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아직까지 메르스에 걸려 하늘 가신 분들의 수가 국민 전체의 백만 분의 일도 안 되지만, 혹시라도 감염 확진자(確診者) 번호표를 받고 격리 수용될 것이 걱정되어, 사랑하는 국민들끼리도 서로를 멀리 한다. 앞으로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지만, 그동안에 관광객의 발길이 끊겨 장사를 못 하는 상인들의 마음도 꽤나 아플 것 같고 명동에서 숙박하던 때 웃고 인사하던 분들의 정겨운 얼굴들도 모두 어둡게 떠오른다. 


전염병 얘기로 서설을 늘어놓았으니, 어머니 걱정에 노심초사하다가 봄에 서울 갔던 일의 자초지종은 덮어 두고 근황만으로 인사를 전해야겠다.


우리 내외(內外: 왜 '내'가 마님이 되고 '외'가 내가 되는 거지?)는 한국에 다녀온 후에도 기가 빠져서, 여름 시작 전에 2주일 휴가를 내어 남쪽으로 길을 떠나, 처음 1주일은 이탈리아의 밀라노(Milano)에서 열리고 있는 만국박람회(EXPO 2015)를 참관하고, 인근의 베르가모(Bergamo), 만토바(Mantova), 베로나(Verona) 등 고적 도시들을 둘러보았다.

밀라노 엑스포 2015


베르가모 성당, 만토바 광장, 베로나 원형극장 앞

다음 1주일은 밀라노 북부의 가르다(Lago di Guarda) 호반의 리모네(Limone)에 묵었는데, 호숫가에서 그냥 쉬지 못하고 습관상 마님이 떠밀고 내가 끌어서, 또 배를 타고 로마시대의 유적이 있는 50킬로 남쪽의 시르미오네(Sirmione)에도 가 보고, 케이블카를 타고 호수 건너편 산정(몬테 발도: Monte Baldo)에 올라가 호반 정경도 관망하면서 바쁘게 다녔다.

호반 도시 리모네, 시르미오네 로마 유적, 몬테발도 정상 주변의 고원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호수 북부의 준령(峻嶺)들을 넘어서 오스트리아의 개미허리 왕비 씨씨(Sissi)가 자주 머물렀던 온천지 메라노(Merano)를 둘러보고, 저녁에 스위스 국경 근처 고산지대에 있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씰안드로(Silandro)에 들어왔다.


이제 밤이 깊었는데, 집 떠날 때부터 귀찮게 따라다니던 구름이 안 자고 지붕 위에서 요란하게 물장난을 친다. 비가 오면 한국의 메르스도 한 풀 꺾일 거라던데, 이 참에 지붕 위의 구름 녀석을 구슬려서 한국으로 보내 줄까?


- 2015년 6월 25일, 봄에 온 불청객 메르스님 여름에는 물 벼락 맞고 물러가세요!


어느덧 7월이 왔으니 절기로는 벌써 본격적인 여름에 들어온 거다. 평소에 구름 가득하고 비가 많이 오는 이곳에도 오늘은 모처럼 햇볕이 쨍쨍, 테라스 온도계가 34도를 가리키고 있다.


지난 메일의 첨부 사진에 언급되지 않은 스위스의 실스 마리아는 1887년 니체가 병이 나서 쉬러 갔던 곳인데, 그곳에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의 근간이 되는 영겁회기(윤회)와 초인(무지 자유로운 인간)에 대한 영감을 얻었단다.

씰안드로 교회, 메라노 식물원, 실스마리아 호반 정경

- 2015년 7월 3일, 메르스가 떠날 때도 된 것 같은데... 


그간 메르스와 가뭄으로 곤욕을 치르던 한국에도, 전염병이 진정되고 비도 온다니 마음이 좀 놓입니다.

...

늦게나마 여름 안부인사드리니 잘 봐주시고, 날씨 좋으면 주말 나들이라도 하시면서 건강 유지하시길 바랍니다.


- 2015년 7월 26일, 메르스가 이젠 아주 멀리 가버렸으면 좋겠습니다.


매거진: 다시 쓴 편지 / 숨은 이야기

매거진의 이전글 새생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