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육감 무시하지 마라. 로또 빼고 다 맞추니까.

걸리면 끝이다.

by Munalogi


이 글은 제 연애 흑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모든 인물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말투가 거칠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만 화난 것은 아닙니다. 부산 사람은 화내지 않습니다.


%EC%97%B0%EC%95%A0_1.PNG?type=w773 화장품은 고급이지. 하지만 얼굴 어쩔.

나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초화장품에는 진심인 편이다.


얼굴이 장난이기 때문에(참고 1) 기초화장품이라도 장난 아닌 걸 써 줘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지금만큼이나 일에 쏟는 시간이 많았고 남자친구와 만나러 가기 위해 밖에 나가는 시간이 유일하게 날 위해 쓸 수 있는 개인 시간이었다.


세상의 모든 집순이들이 그러하듯이. 한 번 밖에 나갔다 하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버릇이었던 탓에. 나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엔 꼭 로드숍에 들러 떨어진 화장품을 잔뜩 사 오곤 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그런 곳"에 들어가는 게 부끄럽다는 이유로 늘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나를 기다렸다. 그런 남자친구를 더 기다리게 하기 싫은 마음에, 나는 미리 리스트업 해 놓은 화장품을 후다닥 사서 나오곤 했다. 미안함에 괜히 더 활짝 웃으면서.(참고 2)


그렇게 싫어하던 화장품 가게를. 남자친구가 기꺼이 들렀던 적이 딱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해외 출장 때 여사친에게 나 몰래 화장품을 사주기 위해서.

또 한 번은 내게 들키는 바람에 헤어질 뻔했는데도 일 년 후 또다시 그여자에게 화장품을 사주기 위해.


%EC%97%B0%EC%97%90_%EC%B4%89_2.jpg?type=w773 사진출처:에펨코리아 모바일/진짜 쌔함은 과학임.

물론 이해할 수 있다.

나 역시 해외 거주 경험이 있어서 한국 화장품의 위대함을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알고 있는 여자사람 친구가 값도 싸고 품질도 좋은 한국 화장품을 사다 달라고 한 부탁을 거절하기는 어려웠겠지.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친구가 출장을 갔던 장소와 그 여자가 있던 장소는 비행기로도 네 시간 이상을 날아가야 했지만 그 정도도 이해할 수 있다. 같은 나라에 자신이 아는 사람이 온다는 것 자체가 기뻤을 거고, 개인 시간을 쪼개서 간 것일 텐데. 그거야 자신의 선택이니까. (참고 3)


하지만

내게 그 만남 자체를 비밀로 했다는 점.

그 여자와 함께 있는 동안에도 천연덕스럽게 숙소라고 거짓말을 했다는 점.

그 여자에게 시간과 정성을 쏟느라 내 생일은 완벽하게 잊어버렸다는 점.

이 결국 나를 폭발하게 했다.


아. 나중에 알고 보니 여사친이 아니라 나와 사귀기 전 썸을 타던, 그러니까 이 자식의 저울에 올랐던 마지막 2인 중 한 여자였다는 점도.


%EC%97%B0%EC%95%A0_%EC%B4%89_2.png?type=w773 사진출처:네이버 블로그/눈에 뒤덮일 때까지 빌어봐라 내가 봐주는가.

분명히 뭔가 이상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들떠있는 목소리도.

어제 통화를 했던 숙소와는 다른 느낌의 배경 소리들도.

뭔가 수상하다며 농담 반 진담 반을 섞어 말하는 내게 그냥 우리가 너무 오래 못 만나서 네가 예민한 것일 뿐이지, 아무 일 없다고 말하는 그 목소리 자체도.


하지만 작년에도 똑같은 일로 우리는 헤어지기 직전까지 갔었고, 그때 남자친구는 정말 비굴하다 싶을 만큼 매달리며 맹세를 했었기에. 이번에는 내가 정말로 이상한 상상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또. 내 촉은 결국 보기 좋게 들어 맞고야 말았다. 그것도 2년 연속으로.


작년엔 나와 밥을 먹는 도중에 그 문제의 여자가 화상 통화를 걸어와 들켰었다. 나는 화면 가득 채운 그 여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대로 식당을 나왔었다. 이번엔 남자친구였던 생명체의 SNS에 그 여자가 댓글을 남기는 바람에 들통이 난 것이었다. 찰지게 붉은색 하트까지 붙인 댓글 때문에.


%EC%97%B0%EC%95%A0_%EC%B4%89_4.PNG?type=w773 내가 들어도 네 변명은 고양이 소리다냐앙!!

어이없게도 남자친구는 이젠 어쩌라고.라는 반응이었다.

덕분에 우리의 끝은, 아니 나의 생각의 마무리는 단호하고 신속하게 매듭지을 수 있었다.


그놈은 배알이 없거나 아니면 뇌가 없거나 둘 중 하나인 건 확실했다. 그렇게 내게 욕을 먹고도 집 앞까지 찾아와 다시 한번 용서해 달라는 말을 했으니까. 그것도 일주일 씩이나. 매일매일.(참고 4)


어쩌면 여자의 촉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저 의심을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두 번 이상 맞아떨어지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도 180도. 바로 지금처럼.


나는 우리 집 베란다 테이블에 앉아 엉엉 울며 아스팔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저 남자를 보고 있지만. 아마도 촉이 없었다면 내가 저 입장이 되었을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환승 이별까지 당한 상태로.


물론 이 모든 것을 촉이라는 말로 퉁 칠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부디 여자가 촉을 발휘하는 순간까지 가게 내버려 두지는 않기를 바란다. 생각보다 정확한 이 촉은 로또 빼고는 다 맞추는 위력을 지닐 때가 많으니 말이다. 아 물론 서로에게 떳떳한 연애를 하는 것이 우선이겠지.


참고 1

악건성, 피부 얇음, 여드름 거의 안 나지만 나면 곪는 편, 다행히 상처가 깊게 남는 피부는 아님. 피곤하면 얼굴 창백해져서 조퇴하기 좋았음. 이목구비 엉망으로 배치되어 있으니, 더 아파 보여서 조퇴할 때 꿀 잼.


참고 2

미안했던 나는 늘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길에 혼자 로드숍에 들러 화장품을 사곤 했는데 그건 또 엄청 싫어했음. 어쩌라는 거야 대체.


참고 3

실제로 내 친구도 영국의 끝에 있었는데 날 위해 출장길에 시간을 쪼개 내가 있는 지역으로 와줬었음.


참고 4

부모님께도 이 이야기를 당연히 했었고. 아빠는 나보다 더 화가 나셨었다. 집에 찾아와서 울며 매달릴 때 아빠는 베란다로 그놈을 향해 뜨거운 물 한 바가지를 부어버리셨음. 한 번만 더 찾아오면 그땐 자기가 내려갈 거라고 하셨었음(테니스 선수 출신, 다혈질, 내 더러운 성격의 원천, 우리 집 서열 3위.)



[이 글의 TMI]

1. 어째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월요일인가. 왜 휴일은 이리도 짧은 것일까.

2. 2년에 걸친 악몽이기에 중간중간 이야기할 것이 저어어어엉말 많지만 이 정도로 축약하기로.

3. 그 뒤로 약간 PTSD처럼 로드숍은 못 가게 되었음.

4. 목요일엔 [어린이라는 세계] or [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 토요일엔 [레볼루셔너리 로드] or[콘택트] 리뷰가 올라갈 예정.

5. 옆집 개부인 출산 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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