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 에세이
이 글은 제가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 Chromatography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나 지금 뭐 하냐.
자조적인 목소리가 내 마음에서 흘러나와 다시 내 귀로 들어와 마음을 울릴 때. 나는 토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자리에 꼼짝없이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컴퓨터 위에 올려져 있는 내 두 손 바깥의 책상에는 이미 생명력을 잃은 햄버거 포장지와 구겨진 감자튀김 봉지, 두 잔째 겹쳐져 쌓여있는 일회용 커피컵, 그 외 견과류 봉투 등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화장실 가는 5분이 아까워 여태 다리를 덜덜 떨어가며 생리현상까지 참고 있었던 것도 그제서야 지각할 수 있었다.
이게 맞는 건가.
아랫배가 아플 때까지 참았던 욕구를 화장실에 앉아 비워내면서. 나는 그제서야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8시간을 앉아있었던 덕분에 다리는 무거워졌고 눈은 뻑뻑했으며 입은 텁텁했다. 당장 화장실에서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는 그 길에 나는 분명히 굳어있던 몸 때문에 휘청거릴 것이 분명했다.
책상에 앉아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지 말았어야 했다. 내 시선에 가득 들어온 빛나는 조명과 한강 다리가 보이는 바람에. 내가 그리도 좋아하는 여름밤의 시작을 알리는 여름 노을 시그니처가 내 눈에 들어오는 바람에. 나는 욱하는 마음과 서러운 마음이 겹쳐 울렁이는 마음을 가방에 쑤셔 넣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일터를 떠나야 했으니까.
일터는 점점 멀어지는데 어쩐지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발걸음을 붙잡거나 나를 따라오는 그 어떤 것도 없었지만 마치 나는 쫓기거나 미행이라도 당하는 사람처럼.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아야 했다.
나는 물에 담갔다 짜 내주지 않아 흠뻑 젖어버린 수건이 된 것만 같았다. 내 몸에 필요 이상으로 묻은 불쾌함을 뚝뚝 흘리며 집으로 돌아가 침대로 몸을 날렸다. 내 주위에는 그 우울함이 방울방울 맺혀 고이기 시작했고, 내 침대는 조금씩 이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적셔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가라앉았다.
이 무거움에는 바닥이 없음을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바닥까지 내려가야 한참이고 시간이 지난 뒤에야 다시 올라올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이 상태로 시간을 보낼 경우 일어난 모든 대참사들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맺혀 고이던 우울함은 내 생각의 속도에 발맞춰 더 빨리 내 주위에 웅덩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미 우울로 가득하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천천히 그 냉기와 습기에 물들어 그 안에 갇혀 절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내 마음에는 껍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랬다. 껍질은 내 마음과도 같았다.
거칠고 투박했으며 그 어떤 것도 튕겨낼 만큼 보송한 잔털로 뒤덮여 있었다. 푹하고 찌르면 여지없이 무너져내리는 연약함까지도.
세상에 대한 무서움과 두려움을 파도타기하듯 즐기는 짜릿함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도. 눈이 절로 찡그려질 정도의 생기와 대담함도 숨긴 채 나는 한동안 껍질 안에서 머물기로 했다.
우울을 연료 삼아 새콤달콤한 생기로 바꿀 수 있는 힘이 내게 다시 주어질 때까지. 만지기도 싫은 이 까끌까끌함을 담은 껍질을 스스로 칼을 들어 힘주어 갈라낼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이번만큼은 껍질의 편을 들어주기로 했다.
나는 보잘것없는 솜털을 가득 세운 키위가 되어. 우울의 웅덩이 안에서 나는 조용히 잠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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