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만났다고 친구가 아니다.

일상 에세이

by Munalogi
%EC%97%B4%EB%93%B1%EA%B0%90_1.jpg?type=w773 영원히 이렇게 알록달록할 줄만 알았지.

그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리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했다. 단지 그것이 서로의 시간에 따라 엎치락뒤치락 했을 뿐. 우리는 그 차이를 인정하고서도 서로의 곁에 있었다. 아니. 있었다고 착각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까지만 해도. 아마도 그 차이라고 부르던 그것은 나와 그녀의 본성을 드러내게 하기에는 그다지 큰 것이 아니었을 뿐.


우리가 처음으로 차이를 느꼈던 것은 스무 살이 갓 넘었을 때였다.


친구는 원하던 대학으로 들어가 번듯한 남자친구들을 보란 듯이 바꿔댔고, 나는 호프집에서 열두 시간을 넘게 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대학물을 먹어 점점 더 빛이 나는 그녀와 그녀의 미래를 보며. 문득 나만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지. 가벼운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친구가 잘 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내가 대학생에게 언제 밥을 사 보겠어.라는 말을 늘 내뱉으며. 나는 그녀와 만날 때마다 비용을 기꺼이 지불했다.


두 번째 차이는 친구가 공무원 준비를 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다들 말렸다고 했다. 혀를 끌끌 차며 자신을 훑어봤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그게 현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당찬 출사표를 내던지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 누구도 믿어주지 못하지만. 나는 믿어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으로. 묵묵히 그녀가 잘 되기만을 빌었다. 늘 만날 때마다 그녀의 합격을 기원하며 밥을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때 즈음부터 그녀는 나를 만날 때 지갑을 들고 오지 않기 시작했다.


세 번째 차이는 친구의 수험 생활이 길어지고, 내가 대학을 늦게 가면서 발생했다.


친구는 그 수많은 남자들에게 모두 차였고. 돈은 떨어졌으며. 수험생 생활에 쓰일 돈을 충당하기 위해 바(Bar)에서 일을 하며 공부를 계속해야 했다. 친구는 늘 충혈된 눈과 쓰라린 속을 참고. 나는 또래보다 10년은 늦어 이미 굳어버린 머리를 부여잡고 서로 공부에 매달렸다. 나는 전액 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고 과외 자리도 끊이지 않았으므로. 오랜 친구에게 사는 밥 한 끼 정도는 아깝지 않았다. 친구는 이제 커피에 케이크도 먹고 싶다며 나를 커피숍으로 자연스럽게 끌고 가기 시작했다.

SE-6e99b550-096c-4f4f-a1b6-bb1b01f052dd.jpg?type=w773 그때라도 갖다 버렸으면. 우린 각자 행복했을까.

무언가 조금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을 그 무렵. 친구의 고시 생활은 이미 십 년을 돌파하고 있었고, 나는 창문도 없는 서울 고시원 구석에서 미친 듯이 회사에 원서를 넣고 있었다. 친구는 곁에 나 밖에 남지 않았다는 한탄에 가까운 통화를 해 올 때가 많았다.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기에 내가 겪은 이야기들을 해주며 다독여주었지만. 친구는 한숨을 섞어 마지막 문장으로 늘 통화를 마무리했다.


너처럼 막 산 애가 어떻게 날 이해하겠어.


그 문장으로 끝나는 전화를 마흔다섯 번쯤 받았을 무렵. 나는 드디어 일자리를 얻었고. 겨우 내가 원하던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네 번째이자 마지막 차이는 결국 우리를 완전히 갈라놓았다.


친구는 결국 고시생활을 청산하고 한 회사에 취직을 해야 했다. 자신이 책만 들여다보며 지내온 시절 동안 현실은 너무도 바뀌어 있었고. 친구는 늘 적응을 하지 못해 힘들어했다. 나이에 비해 경력이 없으니 중요한 일을 맡겨주지 않는다는 통화를 그 무렵부터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게 전화하는 횟수를 늘렸다.



엄마가 재혼을 하셨다.

여동생이 일을 안 한다.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나는 여기에 맞지 않다.

나도 서울로 가고 싶다.

너랑 있고 싶다.

일자리 없니.

너랑 나랑 친구잖아.


그렇게 그녀는 본심을 드러냈다. 내게 병원에 자리가 있으면 소개를 해 달라고 했다. 네가 정말 검증된 사람이라면. 이력서를 내는 것이 맞다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내게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인생 쫑 날 뻔한 애 불쌍해서 놀아줬더니 그 값을 못한다. 너는 내게 나의 시간을 보상해 줘야 한다.


생떼를 쓰며 소리를 질러대는 그녀가 난생처음으로 낯설게 느껴졌다. 순간 정말로 그녀가 나를 위해 그녀의 인생을 바쳤을까. 내가 모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에 나의 어린 시절들을 뒤져보았다. 나는 그녀가 대학생일 때도, 고시생일 때도, 백수일 때도, 그리고 지금도. 그녀와 만날 약속이 잡히면 돈이 없겠지.라는 생각으로 늘 그녀 몫의 밥값까지 내가 계산하곤 했다. 핸드폰 하나 달랑 들고 와 나를 늘 만나던 그녀가 아직도 눈에 선한데. 그녀는 내게 너 때문에 인생을 낭비했다는 말로 들리는 문장들을 내뱉으며 화를 내고 있었다. 전화를 끊는 그 순간까지도 그녀는 최선을 다해 내게 저주에 가까운 말을 퍼부었다.


맞잖아. 대학생이 어떻게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나 전전긍긍하는 애랑 놀겠어. 나 싱가포르로 유학까지 갔다 온 애야. 내가 너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봐준 거라고. 그런데 넌 나한테 그런 것도 하나 못해줘?


SE-cb9239b7-e93a-4c64-931b-f3efda93145b.jpg?type=w773 늦은 진심이었다.

친구라고 믿었다.


함께 한 길고 긴 시간만큼이나. 오랜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나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그 생각이 나와 그녀를 인도한 파국은 얼마나 엉망인 채 우리에게 다가온 것인지. 맞닥뜨리고서야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그녀를 끊어냈다는 사실이 가끔 덜 붙은 뼈가 되어 내 마음을 마구 쑤셔댈 때도 있다.(참고 1) 하지만 알고 지낸 시간의 길이가 친구로의 깊이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그 욱신거림이 그저 익숙함을 잊어가는 과정임을 배우고 있다.


기형처럼 붙어버린 마음의 뼈 덕분에. 한동안 친구라는 존재를 만드는 것에 주저했었다. 저 사람도 나중에 내게 소리를 칠까. 내가 무엇을 해 줘야 하는 사람이 아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옆에 있어 줄 사람은 없을까. 나는 누구와 우정이라는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애초에 아닌 건 아닐지.


갑갑한 생각이 들었지만. 다행히도 좋은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 어떤 조건 없이. 내 스스로를 보듬어주는 사람들 덕에. 나는 내 울퉁불퉁한 마음의 뼈도 나만의 특징으로 스스로 인정해 줄 수 있었다.


이제는 안다.


결혼식에 와 줄 사람이 없을까 봐 내게 맞지 않는 사람을 붙들고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동여매는 것이 얼마나 처참한지. 오랜 기간 옆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친구라는 이름을 받을만한 사람들도 몇몇 존재하지 않다는 것도. 그리고 그럼에도 나를 포용할 사람들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발견해 낼 수 있다는 것도.


갑자기 오늘처럼 그녀가 마음에 스치는 날이면. 나는 이제 화(Anger)나 억울함이 아닌, 그녀를 위한 나만의 문장으로 편지를 쓴다.


얼마나 너 스스로가 미숙했는지 깨닫고 후회하게 될 기회를 인생의 끝자락에라도 반드시 잡기를 바란다고. 그리고 그 후회하는 많은 순간들에 내가 잠시라도 스친다면. 우리는 그때 다시 친구가 되어도 괜찮을 거다.라고.



참고 1

살면서 딱 한 번 뼈가 부러졌는데 빨래 널다가 넘어지는 건조대를 발로 차는 바람에 새끼발가락이 부러졌었음. 두 달을 깁스를 했는데도 다리라 그런지 잘 안 붙었음. 한동안 걸을 때마다 인어공주가 된 것 마냥 욱신거렸다.


[이 글의 TMI]

1. 지금도 안 좋은 소문을 내고 있다고 들었다. 수고하렴.

2. 이 글은 매우 마일드한 사건만 쓴 것임.

3. 수박 먹었다. 헤헤

4. 오늘은 다리가 너무 아파 운동 건너뛰고 요가로 대체.

5. 청소용 걸레 자꾸 옆집 개가 물어감. 하... 내놔라 진짜.


#친구 #우정 #친구없어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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