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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킥더드림 Oct 05. 2023

한 밤에 놀이터에서 1

2020년대 서초동의 한 아파트.
 언젠가부터 아파트 단지에 눈에 띄게 고양이가 늘어났다. 이유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인근에 있는 아파트들이 하나 둘 재건축을 하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건물을 부수고, 나무를 뽑고, 땅을 파내는 공사가 시작되면서 순식간에 그들이 살고 있는 터전은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이다. 어떤 생명체에게는 천국을 약속하는 공사가 다른 생명체에게는 현실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게 지옥을 빠져나와 여기저기로 흩어진 고양이들 중 상당수가 이곳으로 왔을 것이다. 지은 지 30년이 넘어 이제 갓 재건축 사업 진행이 가능한 대상이 된 이 아파트단지에서는 얼마 전부터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 재건축을 준비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그러는 과정 중에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단지 내 재건축을 준비하는 단체가 둘로 쪼개졌고 서로 자신들이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충돌이 발생했다. 거기다 재건축 실행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높은 터라 재건축 여부의 불확실성도 높을뿐더러 우여곡절 끝에 진행이 된다 하더라도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공사가 시작되기 까지는 상당한 세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보자는 명분 이면에는 재건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권, 최대한 집값을 상승시키려는 탐욕, 얼마 남지 않은 노후 생활 동안 큰 변화를 겪고 싶지 않은 바램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렇게 각자의 이익만을 쫓는 이들 간의 이해충돌이 여기 사는 고양이들에게는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럴 수록 재건축이 늦춰지기 때문이다.이 아파트는 고양이가 살기 좋은 환경이다. 오래된 아파트라 고양이들이 뛰어다니기 좋은 넓은 잔디밭이 많고, 신축 아파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추위와 눈비를 피하기에 적당한 지하 주차장도 있기 때문이다. 늘 길고양이와 함께 살았던 아파트 주민들은 개체수가 늘어난 것이 거슬리거나 불편하지 않다. 어쩌면 고양이의 개체수가 늘어난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곳 주민들은 길고양이와 더불어 사는 것이 그저 당연한 일상이다. 하교 길에 초등학생 남자 아이들이 고양이를 향해 작은 돌멩이를 던지며 장난을 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지나가는 어른 중 한 명이 차분한 말투와 교양 있는 태도로 아이들을 따끔하게 질책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바로 하던 장난을 멈추고 가던 길을 간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가던 네댓 살 정도로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는 자동차 밑에 숨은 새끼 고양이를 발견하고 몸을 움츠려 새끼 고양이를 부른다. 잔뜩 겁을 먹은 새끼 고양이는 더 어두운 곳을 찾아 움츠려 든다. 지금 새끼 고양이에게 겁을 주고 있는 것이라며 할아버지는 악의 없는 손녀의 행동을 말리면서 얼른 집으로 가자고 타이른다. 산책을 하던 강아지가 고양이를 발견하고 공격성을 드러낼 때면 견주는 지체 없이 강아지의 행동을 멈추게 한다. 넓은 아파트 단지에 각 구역 별로 고양이 먹이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 고양이 엄마라고 불리는 그들 간 어떠한 합의도 없었지만 희한하게도 밥을 주는 각자의 담당 구역이 자동적으로 정해졌다. 고양이들은 단지 내 자신이 사는 구역 근처의 특정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에 매일 밥을 먹는다. 이렇듯 이 곳은 고양이가 살기에 매우 평화롭게 보이며 나름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도 잘 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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