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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킥더드림 Oct 06. 2023

한 밤에 놀이터에서 2

아파트 단지 내에 살고 있는 많은 고양이들 중 자주 마주쳐서 낯이 익은 고양이가 소희에게는 둘이 있다. 한 마리는 단지 내 산책로에 자주 나타나고, 다른 한 마리는 집 앞 놀이터 근처에서 자주 보인다. 산책로 고양이는 흰 바탕에 갈색 무늬가 있고 몸집이 큰 편이다. 살집이 있고 체형이 둥근 편이어서 그런지 생김새가 상당히 귀엽고 둔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 고양이는 보통의 길고양이들과는 다르게 사람들과 친근하게 지낸다. 익숙한 사람이 아닌 처음 보는 사람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을 지녔다. 사람에게 먼저 다가오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산책로에서 사람들이 부르면 어디선가 나타나기도 한다. 사람들이 만지려 해도 겁먹거나 도망가지 않는다. 사람들이 등을 쓰다듬으면 바닥에 배를 깔고 나른하면서도 여유로운 표정으로 스킨십을 즐긴다. 동물을 좋아하는 주민들은 이 고양이를 보러 산책로를 찾고는 한다. 고양이를 쓰다듬을 때마다 사람들은 어쩜 이렇게 순하고 착한 고양이가 있을까, 하는 감탄사를 내뱉는다. 시간 날 때면 산책길을 가끔 걷는 소희는 그 고양이를 자주 보았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그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고양이가 귀여워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길고양이를 쓰다듬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실외에 살고 있는데 털에 진드기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저러나 싶다. 


놀이터에서 마주치는 고양이는 산책로에 있는 고양이와는 많이 다르다. 생김새도 그렇고 성격도 달라 보인다. 놀이터 고양이는 여느 고양이와 다름없이 사람을 경계하고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아주 없어 보이는 건 아닌 것 같다. 몸집은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편이고 흰 바탕에 갈색무늬가 있다. 날씬하고 다부진 체격이고 얼굴 생김새는 날카로워 보인다. 외모에서 주는 느낌 때문인지 야옹하는 소리도 앙칼지게 들린다. 산책로 고양이가 둥글고 푸근한 인상이라면 놀이터 고양이는 뾰족하고 날 선 느낌이다. 놀이터 고양이를 처음 본 건 4월의 어느 날, 거의 밤 12시가 됐을 무렵이었다. 소희는 놀이터에 줄넘기를 하러 갔다. 체중 조절을 위해서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줄넘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사람들이 없는 늦은 밤이 좋을 것 같았다. 그날은 막 봄이 시작된 때였고 낮은 따뜻했으나 밤에는 은근히 쌀쌀한 기운이 살갗을 아리었다. 한참 열심히 줄넘기를 뛰고 나니 그 쌀쌀한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몸에 열이 오르면서 이마, 목덜미, 등줄기에 땀이 한껏 흘러내렸다. 줄넘기를 마치고 그네에 앉아서 숨을 몰아 쉬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앞뒤로 살랑살랑 그네를 흔들며 앉아 있으니 건조하고 쌀쌀한 날씨가 금세 땀을 증발시키면서 열을 빼앗아가 시원한 느낌이 들게 했다. 놀이터 옆 잔디밭에는 보통 남자 키 높이 이상의 시멘트로 된 구조물이 있다. 지하 기계실로 들어가는 입구인데, 그날 그네에서 쉬고 있을 때 그 구조물 위로 지나가는 고양이를 처음 봤다. 그 당시 어두컴컴한 공간에 단 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소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고양이에게 끌렸다. 시선이 끌렸던 것은 단지 움직이는 생명체에 무의식적으로 반응을 했던 것이었지 별다른 느낌이나 감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지나가는 고양이에 불과했다. 고양이 또한 소희에게 아무런 호기심이 없었다. 늘 지나다니던 길을 지나던 참이었다. 마침 그 때, 그 자리에 소희가 있었을 뿐이었다. 아무도 없을 만한 시간에 있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면서 한번 흘끗 보며 지나갔다. 둘의 첫 만남은 그렇게 서로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이 한 5, 6미터 거리를 두고 스쳐 지나갔다. 
 소희가 밤 늦게 놀이터에 나오는 목적은 줄넘기를 하기 위해서 였지만, 자주 나오다 보니 늦은 밤의 고요한 놀이터, 이 공간 자체가 좋아졌다.  가끔 놀이터 주변에 밤 늦게 귀가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데이트하는 남녀가 잠시 머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혼자였다. 그럴 때면 어둠에 휩싸인 이 공간이 온전히 자신의 것인 것 마냥 생각됐다. 언제부터 꼭 줄넘기가 아니더라도 늦은 밤에 놀이터에 자주 나왔다. 나와서 그냥 걷기도 하고, 누군가와 전화를 하기도 하고, 놀이기구에 매달리기도 하고, 그네를 타기도 했다. 놀이터에 자주 나오다 보니 그 고양이를 자주 마주쳤다. 자주 만났다고 해서 둘 사이에 어떤 소통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반복된 만남은 은연 중에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 날에는 오늘은 왜 나타나지 않는지 궁금했다. 언제부터 고양이는 소희를 보면 걷는 속도를 늦추거나 잠시 주변에 머물렀다 가고는 했다. 그러한 날이 반복되면서 소희는 놀이터 고양이에게 서서히 친근함을 느끼게 됐다. 어느 날부터는 놀이터에 갈 때마다 거의 매번 고양이를 만났다. 아마 고양이가 자신이 오는 소리를 듣고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소희는 생각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고양이도 오늘은 소희가 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 어떠한 직접적인 소통은 없었다. 하루는 소희는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조심스럽게 고양이에게 다가가 보았다. 소희가 다가온 만큼 고양이는 뒷걸음질쳤다. 매번 만날 때마다 그런 식으로 다가갔지만 고양이는 항상 경계를 하며 물러섰다. 소희는 왜 자신이 고양이와 친해지려고 하는지 스스로도 모른 채 그렇게 다가가기를 일주일 내내 시도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아주아주 조금씩 고양이와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에 띄게 가까이 다가갔다는 걸 알았을 때 소희의 마음에 뿌듯함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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