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킥더드림 Sep 21. 2024

연모지정 8

2년이 지났다. 두 사람은 각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있다. 연지의 남자친구는 사회적 통념으로 볼 때 좋은 집안, 좋은 학벌,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 정호와 헤어지고 아홉 달 후에 지금의 남자친구와 사귀기 시작했다. 어머니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됐고, 처음 만남 이후 남자가 매우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정호처럼 누구나 봐도 매력적인 외모에 스타일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단정한 느낌에 서글서글한 인상이 나쁘지는 않았다. 연락도 자주하고, 자주 만나고, 근사한 곳도 자주 가고, 그리고 뜻하지 않게, 어떨 때는 과하다 싶은 선물을 주기도 했다. 연지는 어느 정도는 환심을 사기 위한 행동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원래 연애가 그런 것이기도 하고 남자친구가 애쓰는 모습이 좋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새로운 남자친구를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사귄 지 열 달 가까이 되었을 때 양 쪽 집안에서 결혼을 하라는 은근한 압박이 있었고 엉겁결에 결혼 날짜를 잡았다. 사귀고 몇 달이 지나자 그의 적극적인 태도는 반으로 줄었다. 그때 연지는 남자들은 원래 그렇기 때문에 그의 태도를 대수롭지 않아 했다. 결혼 날짜를 정하고 나서 연지를 향한 그의 열정은 거기에서 반으로 또 줄었다. 그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가 되지 않은 이유는 1년 정도 지나자 남자친구를 향한 연지의 마음도 반의 반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사실 남자친구의 마음은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와 달리 반의 반으로 줄지는 않았다. 초반의 태도가 그의 마음을 두배의 두배로 부풀려 보이게 했을 뿐이다. 어느 날 연지는 그의 배경을 싹 지우고 그를 한번 보았다. 그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보였다. 그의 문화적 취향은 시시하고 대화의 주제는 협소해서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이상 즐겁지가 않다. 그는 웃기 힘든 농담을 하기 일쑤인데 이제는 일부러 웃어주고 싶지가 않다. 그는 모범적인 사람이며 그가 추구하는 삶은 사회적 욕망과 일치한다. 그래서 그런지 뻔하고, 밋밋하고, 진부하다. 

언젠가부터 연지는 가끔 정호와 만나던 때를 떠올린다. 그는 어딘가 달랐다. 그와의 관계는 안정적이었지만 그의 행동은 때때로 충동적이었다. 예술에 대해서는 한없이 진지하다가 일상에서는 재치와 유머 감각이 넘쳤다. 한 쪽 입술꼬리가 올라가는 그의 미소는 장난기로 가득했고, 깊고 옅은 그의 갈색 눈에서는 고뇌와 불안이 엿보였다. 불안 없는 안정은 없고, 지루함 없는 흥분은 없으며, 억눌림 없는 해방감은 없다. 평면적인 사람을 만나 보니 그가 얼마나 다면적인 사람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그러다 얼마 전 정호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가는 내내 가슴이 쿵쾅, 쿵쾅 강하게 뛰었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혹시나 전화를 줄까 기다렸지만 전화는 끝내 오지 않았다.

이전 07화 연모지정 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