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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새봄은 최근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린다. 잠을 제대로 못 자 비몽사몽이다. 너무 피곤해서 오늘은 차를 두고 전철을 타고 출근한다. 출근 시간대 전철 안은 옴짝달싹할 수도 없을 만큼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전철 안에서 사람들 사이에 끼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그런지 직접 운전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피곤하다. 전철역 밖으로 나와보니 옷 여기저기가 구깃구깃해졌다. 옷이 펴지도록 손으로 툭툭 치면서 빠른 걸음으로 회사로 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한 사람들의 줄이 엄청나게 길다. 50층 건물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여섯 개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마다 벌어지는 풍경이다. 투덜거리는 표정을 지으며 긴 줄 맨 뒤에 가서 섰다. 새봄은 M전자 디스플레이 사업부 해외영업팀에 다닌다. 원래는 헝가리와 폴란드 법인 담당이지만, 오늘부터 현업에서 빠져 6개월 동안 신제품 해외시장조사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새로운 컨셉의 제품을 론칭하기 위해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리서치를 하는 매우 큰 프로젝트이다. 새봄은 유럽지역 시장조사 담당으로 이번 프로젝트에 투입됐다. 오후 2시에 이번 프로젝트를 수주한 컨설팅 회사 사람들과 킥오프 미팅이 있다. 사실 새봄은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현업에서 나와 6개월 정도의 단기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것이 자신의 커리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경영진은 일하는 자세가 항상 성실하고 도전적이며 어떤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남다른 창의력을 발휘하여 해결하는 새봄이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적임자 중 한 명이라고 판단했다. 새봄은 이번 프로젝트 멤버 중 한 명으로 결정 됐을 때 사업부 조진성 상무를 찾아가 자신을 제외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자신은 참여하고 싶지 않다고 강하게 어필했다. 하지만 조진성 상무는 이번 프로젝트에 새봄이 반드시 참여해야만 한다고 했다. 그래도 새봄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자신을 빼줄 것을 다시 한번 부탁했다. 그러자 조진성 상무는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새봄이 평소 원했던 프랑스 법인 담당자로 발령을 내겠다고 하면서 프로젝트 참여를 설득했다. 뿐만 아니라 2년 정도 후에는 프랑스 법인 주재원으로 나갈 수 있도록 밀어주겠다고도 제안했다. 프랑스 법인 주재원이라는 말이 솔깃하다. 새봄은 프랑스 법인 주재원으로 파견 나가는 것을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2년 6개월 후면 현 프랑스 법인 주재원이 본사로 돌아온다. 새봄은 가능하면 그 다음 주재원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하지만 지금 프랑스 법인을 담당하고 있는 김민수 선임이 다음 주재원으로 가장 유력하다. 조상무는 직원들은 모르는 사실이라면서 이번 신제품이 기업의 향후 50년을 책임질 상품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프로젝트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고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 투입 인원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보상이 따를 것이라고 했다. 조상무는 이번 프로젝트 참여가 프랑스 법인 주재원으로 갈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조상무는 김민수 선임은 여러 가지 이유를 만들어서 다른 법인 주재원으로 보내면 된다고 했다. 새봄은 프랑스 법인 주재원으로 나가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김민수 선임을 제치고 자신이 갈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게 필요했다. 조상무 말대로 이번이 기다리던 기회일 수 있다. 그렇다면 놓쳐서는 안 된다. 더 이상 프로젝트에서 자신을 빼달라고 요청할 이유가 없다. 그 자리에서 마음을 바꿔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대회의실. 현업에서 빠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직원은 새봄 말고 네 명이 더 있다. 대회의실은 프로젝트가 끝나는 동안 임시 사무실로 사용된다. 새봄은 자신의 책상에 앉아서 컨설팅 회사 사람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컨설턴트들과 부딪쳐 가며 6개월동안 일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막막하다.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채 이상적인 얘기만 할 게 뻔하다. 아마 그들은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임을 자부하며 자기들만의 방법론과 툴이라는 걸 내세워 화려하고 전문적으로 보이는 멋진 언어로 포장해 시장과 동떨어진 알맹이 없는 결과를 이끌어내려 할 거다. 제대로 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시장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을 가만히 놔두면 안 된다. 처음부터 강하게 몰아붙여야만 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반드시 잘 돼야 한다. 새봄은 그들과 맞서 프로젝트 결과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프로젝트에 투입된 인력의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함께 일할 컨설팅 회사 사람들이 도착했다. 여덟 명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런데 새봄은 그 중 한 명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대학 때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던 주하이다. 주하를 보자 등에서 식은땀이 나고, 손이 바들바들 떨리면서 정신이 멍해졌다. 주하도 새봄을 보고 크게 놀란 눈치다. 회의하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하고 어지럽다. 입이 바짝 말라 입천장이 갈라질 것 같고 심장은 몸 밖으로 튀어 나올 것마냥 심하게 뛴다. 새봄은 회의 내용이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오로지 이 회의실에 주하와 함께 앉아있다는 사실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새봄, 주하, 가을, 동미는 대학교 같은 과 가장 친한 친구였다. 쿨 포테이토. 네 사람 모임의 이름이다. 쿨 포테이토라는 이름을 어떻게 정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네 사람의 첫 여행인 강원도에서 감자를 먹으면서 정했던 것 같다. 감자를 너무 맛있게 먹고 있는 상황에서 쿨하고 멋진 친구로 평생 함께하자는 의미로 아무렇게나 갖다 붙였던 것 같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대학 내내 주하, 가을, 동미는 가장 친한 친구였고 새봄은 이런 좋은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늘 자랑스러웠다. 그러다 졸업하기 직전 이 세 친구 모두와 연락이 끊겼다. 이 셋은 새봄을 만나주지도 연락을 받지도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이유도 모른 채 친구들과 완전히 관계가 단절됐다. 새봄은 자신이 따돌림 당한다는 생각에 너무너무 괴로웠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어째서 자신을 따돌리는지 알 수 없었다. 따돌림 당하는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이유만 알아도 괴로움이 조금 덜 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도 그 아픔은 여전히 먼 기억 속에 남아 새봄의 마음 한 켠을 짓누르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마음 속 어딘가에 눌려있던 고통과 상처가 주하를 보는 순간 격렬하게 밖으로 튀어나왔다. 회의하는 동안 내내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회의를 마치고 회사 근처 카페에 새봄과 주하가 마주 앉아있다. 새봄은 회의실에서 나와 지금 있는 카페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서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두 사람은 이 어색함이 오히려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새봄은 어째서 자신과 연락을 끊었는지 가장 먼저 묻고 싶지만 차마 그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주하가 억지로 웃으면서 먼저 입을 연다.
“정말 오랜만이네. M전자에 직원이 몇만명은 될 텐데 너랑 같이 일을 하게 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너랑 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
“그러게.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지. 나는 네가 A&C 컨설팅에 다니는 줄도 몰랐어. 오래 전에 정현 선배한테 너 W전자에 입사했다는 소식은 들었거든.” 새봄이 말했다.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다. 그러나 이 침묵이 여전히 불편하지 않다.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담긴 머그잔만 만지작거리던 주하가 말한다. “맞아. 첫 직장이 W전자였어. 대학 졸업하고 1년 넘게 아르바이트만 하다가 어떻게 운이 좋아서 W전자에 취직했어.”
“그러다 어떻게 A&C 컨설팅으로 이직한 거야? 들어가기 엄청 어렵다고 하던데.” 새봄은 어떠한 감정도 섞여있지 않은 어조로 물었다. 사실 새봄은 주하가 어떻게 A&C 컨설팅에 다니게 됐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다. 자신과의 관계를 왜 단절했는지 묻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하다.
“W전자 다니다가 신입 시절에 지금과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했었어. 물론 A&C 컨설팅이 참여한 프로젝트였지. 프로젝트가 끝나고 2년 정도 지나고 당시에 같이 일했던 컨설턴트가 A&C 컨설팅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나보고 컨설턴트 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을 했어. 그래서 고민하다가 이직하게 된 거야. 조직 문화가 경직된 대기업보다는 외국계가 나한테 더 맞을 거 같아서 옮기기로 결정했어. 요즘은 대기업도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더라고.”
“아, 그렇게 옮기게 된 거구나. 프로젝트 하면서 그 분이 널 엄청 잘 봤었나 보다. 그리고 네 말대로 대기업도 분위기가 예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졌어. 나이나 직급에 상관없이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도 충분히 주어져. 나는 열심해서 2년 정도 후에 프랑스 법인 주재원으로 나가고 그 다음에는 미국 법인으로 나갈 계획이야. 뜻대로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 정말? 내가 알기로 미국이나 프랑스 법인 주재원은 워낙 인기가 많아서 경쟁이 치열하다고 들었는데. 줄도 잘 서야 하고 말이지. 너, 회사에서 잘 나가나 보다? 안 봐도 너는 워낙 열심히 할 테니까, 분명 능력도 뛰어날 테고. 계획대로 잘 될 거야.”
“그래? 좋게 얘기해줘서 고마워.”
“고맙긴 뭘..”
두 사람은 한 동안 또 말이 없다. 이번에는 새봄이 조심스럽게 먼저 말을 건넨다.
“주하야, 나 물어볼 게 있는데..”
새봄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주하가 묻는다. “혹시 내가 너랑 왜 연락을 끊었는지가 묻고 싶은 거야?”
예상치 못하게 주하가 먼저 그 얘기를 꺼내 새봄은 당황했다. “으으응. 맞아. 항상 그게 너무 궁금했어. 도대체 왜 그런 거야?”
“그렇구나. 이유를 모르는구나. 이유를 모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진짜 모르고 있었네. 음.. 어쩌면 정말 별 거 아닌 일일 수도 있고, 내가 너무 옹졸해 그랬을 수도 있어. 하지만 당시에 나에게는 너무 큰 상처였어. 우리, 학교 졸업할 즈음에 너 M전자에 취직해서 축하해준다고 쿨 포테이토 멤버 네 명 다 같이 모였던 거 기억하지?”
“그럼, 당연히 기억하지.”
“그 때 네가 나한테 엄청 심한 말을 했었어.”
“내가? 그럴 리가..” 새봄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너 그랬어. 나 보고 취업 준비는 안 하고 그렇게 매일 술만 먹어서 어떻게 취직하겠냐고 그러고. 도대체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나를 보면 취직을 할 생각이 있는지조차 모르겠다고 그랬어. 나같이 게을러터진 사람이 어떻게 취직을 하겠냐며 정신 차리고 살라고 나를 몰아붙였어. 취업할 생각이 있다면 생각 없이 술만 먹지 말고 영어, 중국어 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따고, 면접 잘 보는 법도 따로 공부해야 한다는 둥 하면서 나를 매우 한심한 인간으로 취급했어. 워딩이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지금 내가 말한 것보다도 훨씬 더 듣기 불편하게 나한테 말했어.”
“내가 그렇게 심하게 말 했다고? 나는 그렇게 말한 기억이 없어. 내가 취업에 대해서 조언을 조금 해준 거 같기는 한데.. 내가 그런 말을 했단 말이지?”
“기억 못하는 구나. 너, 분명히 그랬어. 하필 그날이 면접 본 회사에서 떨어졌다는 통보를 받은 날이어서 네 말이 더 큰 상처가 됐어. 지금 돌이켜 보면 며칠 지나고 서로 대화하면서 기분 풀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당시 내 기분은 다시는 너를 보고 싶지 않았어. 취업을 먼저 했다는 이유로 거만하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계속하는 너의 모습을 보고, 그날 오늘부터 새봄이는 더 이상 내 친구가 아니라고 마음 속으로 선언했어.”
“그래서 나를 안 보려 한 거였구나. 나는 기억이 없는 거 보면 당시에 내가 많이 취했었나 보다.” 새봄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아니. 너 취하지 않았어. 나는 분명히 기억해. 그 이후에 취했지. 나한테 그런 말할 때는 취하지 않았어.”
“그… 그래? 내가 취하지도 않았는데 그런 말을 했다고?” 새봄은 기억이 전혀 없다 보니 마땅한 변명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이다 싶다. “주하야, 미안해. 내가 사과할게.”
“그래 알았어. 뭐.. 다 지나간 일이잖아. 그 정도 일로 너랑 절교까지 했으니 나도 잘 한 건 없어.”
“아니야. 네가 상처를 많이 받았었네. 미안해.” 새봄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럼 내가 너한테 한 말 때문에 가을이랑 동미도 나랑 연락을 끊은 거야? 내 행동에 실망해서?”
“너 그날 가을이랑도 다퉜어.”
“내가 가을이랑도?”
“응. 뭐 때문에 그랬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정말 유치한 걸로 다퉜어. 뭐 때문에 그랬더라.” 주하가 곰곰이 생각한다. “오래 돼서 기억이 전혀 안 나네. 어쨌든 정말 별 거 아닌 걸로 둘이 싸웠고 네가 가을이한테 엄청 뭐라고 했어. 그리고 동미가 너를 왜 안 만나려고 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새봄은 기억을 더듬어 본다. “음.. 그날 내가 가을이랑 다퉜었나? 왜 기억에 없지. 그날 오히려 동미하고 조금 의견이 맞지 않은 게 있었던 거 같기는 한데.. 나도 기억이 잘 안나네. 그나저나 주하야, 가을이랑 동미는 잘 지내?”
“가을이는 자주 만나고 동미는 프랑스 파리로 유학 갔어. 거기서 프랑스 남자랑 결혼했다는 소식까지만 들었고 그 이후로 연락이 끊겼어. 가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아주 잘 지내고 있어.”
“동미는 프랑스로 유학 갔구나. 연락이 안 된다니 아쉽다. 가을이는 어떤 일 하는데?”
“영화 제작, 배급도 하고 멀티플렉스 극장도 갖고 있는 H엔터테인먼트에 다녀. 가을이는 거기서 마케팅팀에서 일해.”
“아, H엔터테이먼트 다니는 구나. 가을이 영화 엄청 좋아했었잖아. 잘 됐네.”
“회사만 다니는 게 아니라 영화평론가이기도 해.”
“정말? 가을이가 영화평론가야? 우아, 대단하다. 회사 다니는 것만 해도 많이 바쁠 텐데. 그런데 나도 영화 평을 가끔 읽는데 가을이 이름은 못 본 거 같은데.”
“본명 말고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어. 필명이 지인랑이야.”
“아! 지인랑? 나 지인랑 평론가 아는데, 내가 좋아하는 평론가야. 지인랑 평론가가 가을이구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내가 좋아하는 평론가가 가을이였다니. 진짜 너무 신기하다.” 새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어간다. “주하야, 혹시 가을이 연락처 알려줄 수 있어? 가을이가 나를 만나려고 할까?”
“음.. 다 지난 일이니까 만나려고 하지 않을까? 그래도 가을이한테 물어는 봐야 하니까, 내가 물어보고 괜찮다고 하면 연락처 바로 알려줄게.”
“그래, 고마워.”
“그리고 사실 나 가끔 네 생각 했었어. 대학 내내 좋은 친구로 잘 지냈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연락을 뚝 끊을 필요가 있었나 싶었어.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그날 기억이 떠오르면서 다시 막 화가 나고 그랬어. 그때 충격이 크긴 컸었나 봐.”
“그랬었구나. 그래도 가끔 내 생각을 했다니.. 고마워. 그런데 주하야, 우리 넷 모임 이름이 쿨 포테이토였잖아. 그 이름을 어떻게 지었는지 기억나?”
“우리 강원도에 놀러 갔을 때 낮에 삶아 먹고 남은 감자를 밤에 술 마실 때도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잖아. 가을인지, 동미인지가 감자가 차갑게 식어도 너무 맛있다고 하면서 ‘이거 완전 쿨 포테이토네’ 술에 취해서 그랬어. 그리고 누군지 잘 모르겠는데 쿨 포테이토라는 어감이 예쁘다며 우리 모임 이름으로 정하자고 했던 거 같은데. 내 기억이 맞는다면 말이야.”
“그랬었나? 강원도에 가서 나도 감자 맛있게 먹은 거는 기억나는데, 우리가 차갑게 식은 감자도 먹었었나?”
“그랬던 거 같아.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아.”
새봄이 시계를 본다. “얘기하다 보니까 벌써 이렇게 됐네. 주하야, 이제 사무실로 돌아가자. 아무리 생각해도 같이 일하게 된 거 너무 신기하다. 그리고 예전에 너한테 심하게 한 거 다시 한번 사과할게. 진짜 미안해.”
“그래 알았어. 그리고.. 아니다 얼른 들어가자. 너무 오래 나와 있었다.” 주하는 사실 그날 자신은 새봄이의 취업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없었다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우리 쿨 포테이토 멤버.. 가을이랑 동미도 보고 싶다.” 새봄은 주하가 들리지 않게 아주 작게 혼잣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