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는 현지를 처음 만났을 때와 사귀기 시작했을 때를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든다. 현지와 사귄 이후로 삶에 우울한 일보다는 즐거운 일이 훨씬 더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지 못한 비밀 때문에 언제나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고 불편했다. 현지가 모르면 그만이겠지만, 그런다고 불안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기호는 여전히 지하철 끝 벽면에 기대어 서있다. 앞으로 세 정거장 후면 내린다. 지하철 안을 천천히 둘러본다. 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나름대로 자신만의 우울함과 즐거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하철은 좌우로 부드럽게 흔들리면서 선로 위를 달리고 있다. 흔들리는 지하철의 리듬에 맞춰 사람들의 몸도 조금씩 흔들린다. 사람들은 흔들리는 지하철에 몸을 맡겨두면서도 한편으로는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기호도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애쓴다. 지하철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렇게 속이면서 현지를 계속 만날 수는 없다. 오늘은 반드시 말해야 한다.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 기호는 반드시 말하겠다고 다짐을 하며 지하철에서 내렸다.
기호가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수업이 막 시작했다. 수업에 집중이 되지 않고 교수님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지금 강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머릿속은 온통 현지에게 어떻게 얘기를 꺼낼지에 대한 생각뿐이다. 시간이 금새 지나 수업이 끝났다. 기호는 강의실에서 나와 현지를 만나러 간다. 만나기로 한 사회과학대 건물 근처에 도착했다. 기호는 초조하게 현지를 기다린다.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약속 시간이 조금 지났다. 수업이 늦게 끝나나 보다. 그때 저 멀리 건물 입구에서 나오는 현지가 보인다. 현지가 활짝 웃으며 기호를 향해 빠르게 걸어온다.기호와 현지가 사회과학대 건물 근처 벤치에 손을 잡고 앉아 있다.
“안 추워?” 기호가 물었다.
“응. 전혀 안 추워. 오늘 날씨 따뜻하다.” 현지가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기호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러게 11월치고 많이 따뜻하네. 아침에도 쌀쌀하지 않고 시원한 정도더라고. 오후가 되니까 오히려 따뜻하기까지 하네.”
“기호야, 오늘 입은 항공 점퍼 멋있다. 처음 보는데 새로 샀나 봐.”
“작년에 산 옷인데 올해는 처음 입는 거야. 정말 괜찮아?”
“응. 예쁘고 너한테 잘 어울려. 오늘 너의 패션 컨셉은 어떤 속박에서 벗어나 하늘을 높이 날고 싶은 욕망인 거 같아. 하하.”
“하하. 고마워.” 기호는 현지의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우리 점심은 뭐 먹을까?” 현지가 기호의 자켓을 만지면서 말했다.
“나는 뭐든지 상관 없어. 현지 너 먹고 싶은 걸로 먹자.”
“그럼 우리 즉석 떡볶이 먹으러 갈까? 나 오늘 매운 거 먹고 싶어. 괜찮지?” 현지가 웃으면서 물었다.
“좋지. 오랜만에 나도 즉석 떡볶이 먹고 싶다.”
사실 기호는 점심 생각이 별로 없다. 현지가 먹고 싶다고 하니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자신도 먹고 싶다고 했다.
“야야, 뭐야? 오랜만은 아니지. 우리 지난 주에도 즉석떡볶이 먹었잖아.”
“그.. 그랬나?” 기호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은 먹고 싶다면서 표정이나 말투는 전혀 먹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은데? 먹기 싫으면 다른 거 먹어도 돼.”
“아.. 아니야. 나도 즉석떡볶이 먹고 싶어.”
“기호야, 나한테 무조건 맞춰 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잖아. 나, 그런 거 싫어. 같이 있을 때 함께 즐거워야지. 안 그래?”
“응. 그렇지. 너한테 무조건 맞춰 주고 그러지 않아.” 기호가 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현지는 기호의 말투나 표정을 보고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기호야, 혹시 무슨 일 있어?”
“무슨 일? 왜.. 왜 물어보는데.. 무슨 일 있어 보여?”
“응. 표정이나 말투가 평소랑 완전히 다른데. 너 말할 때 넋이 나가 있는 거 같아. 나랑 얘기하면서 딴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그렇게 보이는 구나. 현지야, 사실, 나 너한테 할 말이 있어.”
현지는 진지해 보이는 기호의 모습에 조금 놀라며 묻는다.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응.” 기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 그렇게까지 평소랑 다른 거야? 너 무지하게 심각해 보인다. 심각한 일이야?”
이번에도 기호는 고개를 끄덕인다. “응. 심각한 일이야.”
“그래? 그럼 얼른 얘기해 봐.”
“사실 나..” 기호가 말을 하다가 말았다.
“사실 너 뭐?” 현지가 차분한 말투로 물었다.
“………”
기호는 말을 하려다 말고 고개와 허리를 숙이고 바닥을 바라본다. 현지는 그런 기호의 모습을 말 없이 바라만 보고 있다. 기호는 10분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닥만 보고 있다. 현지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기다린다. 한참 바닥을 보던 기호는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현지도 기호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구름이 많이 끼어 있는 하늘 위로 참새 한 마리가 날아간다. 기호와 현지의 시선이 동시에 참새를 따라 움직인다. 두 사람은 날아가는 참새를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봤다.
현지가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날씨가 엄청 흐리네.”
“그러게 말이야. 학교 올 때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었는데. 완전히 흐려졌네.”
“…………..”
또 다시 두 사람 사이에 긴 침묵이 흐르고 있다.
“저기, 현지야.”
“응.”
“사실 나..” 이번에도 기호가 말을 하려다 말았다.
소리 없는 온화한 웃음을 보이며 현지가 말한다. “기호야, 말하기 힘들면 굳이 오늘 말 안 해도 돼. 언제든 마음 편할 때 얘기해 줘.”
현지의 웃는 얼굴과 배려가 담긴 말이 기호의 긴장을 누그러뜨려준다.
“아니야. 지금 말할래. 현지야, 원래 내 이름은 기호가 아니야.”
“원래 이름이 기호가 아니라고?” 현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기호를 빤히 쳐다본다. “다른 이름이었는데 기호로 개명한 거야?”
“아.. 아니 개명한 건 아니고.”
“그럼 뭐야? 개명한 것도 아닌데 기호가 네 원래 이름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게 말이지. 기호라는 이름은 원래 우리 형 이름이야.”
현지는 기호의 말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가 안돼. 형 이름을 쓰고 있다는 거야? 하늘로 먼저 갔다는 쌍둥이 형 말하는 거 맞지?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네.”
“맞아. 엄마랑 나를 두고 교통사고로 아버지와 함께 먼저 떠난 일란성 쌍둥이 형. 내 이름은 기호가 아니라 진호야.”
“원래 이름이 진호라고? 김진호?”
“응. 김진호가 내 이름이고, 김기호는 우리 형 이름이야.”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얘기해 줄 수 있어?”
진호는 크게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을 본 다음 날이었어. 아버지와 기호가 외출을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어. 사고 지점이 지금 사는 아파트에서 한 블록 정도 떨어진 곳이야. 사고가 크게 나서 아버지와 기호는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바로 실려 갔어. 아버지는 병원에 도착하고 얼마 후 돌아가셨고 기호는 중환자실에서 3일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끝내 하늘 나라로 갔어. 그때 엄마와 함께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많이 힘들었겠다.” 현지가 진호를 위로하듯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럼. 그때 정말 많이 힘들었지. 그런데 응급실에서 나는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어. 음.. 이상한 생각보다는 나쁜 생각이 맞을 거 같아.”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데?”
“병원에는 내가 먼저 도착했고 엄마는 나중에 왔어. 응급실에서 나 혼자 아버지 임종을 지켜봤고, 의사는 안타깝지만 기호도 너무 심하게 다쳐서 가망이 없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더라고. 그 얘기를 듣고 시간이 좀 지나서 그런 생각이 번쩍 들었어. 기호가 하늘 나라에 가게 되면 내가 기호의 점수로 대학을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기호가 나보다 공부를 더 잘했었거든. 내 실력보다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하면 안 되는 생각이었는데.. 그리고 입원 수속을 기호 이름이 아닌 내 이름으로 했어.”
현지는 진호의 말에 너무너무 놀랐다. 진호가 한 말을 듣고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믿고 싶지도 않았다. 현지는 잡고 있던 진호의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놓았다.
“너, 거짓말 아니지? 이런 걸로 장난칠리도 없을 거고.”
진호는 많이 당황하는 현지의 표정을 보면서 말한다. “놀랐지? 많이 놀랐을 거 같은데.. 거짓말 아니고 사실이야.”
“당연히 놀라지. 어떻게 안 놀랄 수가 있어. 너.. 진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 너 진짜 나쁘다.”
진호가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나도 알아. 나쁘다는 거.”
“형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슬픔은 느껴지지 않고 그런 생각만 떠오른 거야?”
“그런 건 아니야. 의사한테 가망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어. 정말 너무너무 슬펐어.”
“하면 안 되는 생각을 했다 치자. 생각만으로도 너무너무 나쁜데, 생각에만 그친 게 아니라 진짜 실행에 옮겼다는 거잖아. 그 상황에서 입원 수속을 네가 직접 형 이름이 아닌 네 이름으로 했다는 거잖아.”
“…….” 진호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어머니도 네 말에 동의하셨던 거야?”
“당연히 엄마는.. 처음에는 반대했지. 그런데 내가 그렇게 하자고 계속 밀어붙이니까 엄마도 결국에 동의했어. 그때 엄마는 워낙 경황이 없어서 아마 판단력이 완전히 흐려지고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야. 왜 아니었겠어.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기호도 가망이 없다는 얘기를 의사로부터 들었으니까.”
“정말? 어머니께서도?” 현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돼서 결국 내 이름으로 장례식을 했고 사망 신고도 내 이름으로 했어.”
“그게 가능해?”
“가능했어. 우리는 일란성 쌍둥이니까.”
“말도 안돼. 진짜 세상이 생각보다 많이 허술하네. 장례식장에 온 사람들이 눈치채지 않았어? 아무리 쌍둥이더라도 친척들은 알아 봤을 거 아냐?”
“그게 말이지. 부모님 모두 외동이어서 친척도 많지 않고 가깝게 지내는 친척도 별로 없어. 거기다가 갑작스러운 일들이 벌어지면서 당시에 내 몰골이 말이 아니었거든. 그래서 그런지 내가 기호가 아니라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 하더라고.”
“그리고 나서 형의 수능성적으로 우리 학교에 입학한 거야?”
“응.” 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너보다 공부를 훨씬 잘 했어?”
“훨씬 잘 한 거까지는 아니고, 조금 더 잘했어. 내 성적보다 바로 위에 있는 좋은 대학 갈 정도였어.”
“그럼 엄청나게 차이가 난 것도 아니네. 그런데도 굳이 그렇게까지 한 거야?”
“나도 내가 왜 이렇게까지 했는지 잘 모르겠어.”
“나 너무 놀래서 지금 심장이 막 뛰어.” 현지는 얼굴이 조금 상기된 채로 손을 가슴에 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현지의 말투는 차분하다.
“현지야, 나한테 많이 실망했지?” 진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실망한 정도가 아니야. 그 이후로 형의 신분으로 살아오고 있는데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사실 많이 후회하고 있어. 죄책감에 엄청나게 시달렸고 심한 우울증으로 자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어. 지난 3년간 내 자신이 완전히 사라진 거 같았어. 기호한테도 많이 미안하고 내가 한 선택을 후회하고 있어.”
“그럼 지금은 우울증과 죄책감이 사라진 거야?”
“사라진 건 아니고 치료받고 예전보다 많이 나아진 상태야. 어쨌든 내 삶은 계속되는 거고 살아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까. 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이 많이 도움이 되더라고. 약을 먹으면 일정 시간 후에 우울증이 가라앉고 기분이 많이 나아졌어. 기분이 나아진 내 자신이 너무 신기했어. 사람의 몸이라는 게, 마음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약 하나에 기분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이상하더라고. 사람은 화학적인 존재에 불구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리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끊임없이 내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했어.”
“어떻게 합리화했는데?”
진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일란성 쌍둥이니까 하나의 세포가 둘로 분열 돼서 기호와 내가 된 거잖아. 완전하게 동일한 DNA를 가지고 태어났으니 우리는 하나나 마찬가지라고 내 자신을 설득하고 속였어.”
“너 정말! 진짜 말도 안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 이상하게 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현지가 말을 하다 멈추고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간다. “정말 말이 안 나온다. 아무리 하나의 세포였고 동일한 DNA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세포가 분열하는 순간 둘은 다른 개체가 된 거지. 그리고 엄마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 개별의 인간이 되어 세상의 빛을 본 거고, 출생 신고를 함과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완전하게 다른 인물이 된 거라고. 진짜 너무 소름 돋는다.” 지금까지 차분하고 건조하게 이야기하던 현지가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현지야, 나한테 많이 실망했지?”
“실망했다고 아까 말했잖아. 왜 또 물어보는 거야? 실망한 정도가 아니라고. 너 같으면 안 그러겠어?”
“맞아 나 같아도 그럴 거 같아.” 진호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나한테 왕따를 당해서 중고등학교 때 친구가 없었다고 했잖아. 그것도 거짓말 같은데. 맞지? 네 자신이 아닌 형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어릴 적 친구들은 만날 수가 없는 거겠네.”
“………..” 진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나한테 이 사실을 말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뭐야?”
“그냥… 그냥 너를 속이고 싶지 않았어. 너한테만큼은 솔직해지고 싶었어.”
“나한테 솔직해지고 싶었다고? 정말 이해가 안 된다. 네 스스로를 속여가면서 살고 있는데 나한테는 솔직해지고 싶었다고? 과연 이게 진짜 솔직한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한테 솔직한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 의미 없어.”
“…………” 진호는 현지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