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람이 받은 웃는 이모티콘 4

by 킥더드림

현지와 진호는 말 없이 벤치에 앉아있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말이 없다. 침묵은 꽤 긴 시간 동안 지속된다. 진호가 하늘을 올려다 본다. 진호를 따라 현지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하늘은 여전히 흐리다. 회색 빛 구름이 하늘 전체를 뒤덮고 있다. 그런데 머리 위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에 구멍이 뻥하고 뚫린 것처럼 구름이 없는 자리가 있다. 그 뚫려있는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있고 구멍 난 구름 가장자리를 타고 빛이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이상하기도 하고 신기한 광경이다. 구멍이 뚫린 것 같은 구름 가득한 하늘을 보다가 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기호야, 아니..” 현지가 말을 하다 말고 손사래를 친다. “기호가 아니지 진호라고 불러야 하나? 두 이름 다 부르기가 어색하네. 어머니는 너를 어떤 이름으로 불러?”
진호는 가볍게 한숨을 쉰 후 말한다. “휴~ 엄마는.. 엄마는 어떤 이름으로도 안 불러. 나를 그냥 아들이라고 불러.”
“그렇구나. 어머니가 그렇게 부르는 게 이해가 되네. 많이 어색하지만 지금부터 진호라고 부를게. 너는 기호가 아니라 진호니까.”
“진호야!” 현지가 힘있게 진호의 이름을 불렀다.
진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게 얼마만인가? 현지가 자신을 진호라고 부르는 순간 발바닥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전기가 쭉 타고 올라가는 듯한 전율이 느껴졌다. 심장이 멎는 것 같고 온몸이 마비가 되는 느낌이다. 도저히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진호야!” 대답이 없자 현지가 다시 한 번 불렀다.
진호라는 이름에 마음이 울컥한다. 진호의 눈에서 진한 눈물 한 방울이 나와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진호는 오랜만에 불리는 자신의 진짜 이름이 어색하다.
“응?” 진호가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너, 학교 자퇴하고 수능 다시 보는 거 어때?”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말을 현지가 했다. “자퇴하고 수능을 다시 보라고? 휴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퇴?”
“네 자신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어? 우리 학교를 다니고 있는 너는 네가 아니잖아. 이건 너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고. 휴학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잘 한 번 생각해 봐.”
현지의 말을 듣고 진호는 고민에 빠졌다. 현지가 왜 자퇴를 하고 수능을 다시 보라고 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현실의 삶을 생각하니 선뜻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진호야, 고민 돼?” 현지가 물었다.
진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응. 솔직히 고민되네.”
“진호야, 나 대학에 합격했을 때 우리 아빠가 나한테 어떤 말을 해줬는지 알아?”
“어떤 말을 해주셨는데?”
“아빠가 어떤 이야기를 통해서 성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얘기해줬어. 잘 들어봐. 어떤 19살 젊은이가 가족들하고 크루즈 여행을 하는데 배가 난파되는 사고가 일어났대. 배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이 물에 빠졌고 젊은이 혼자만 생존하게 됐어. 뗏목 같은 걸 혼자 타고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신세가 된 거지.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은 피할 곳이 없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인 거야. 그것도 홀로. 오랜 시간 바다에 표류하다 보니 배가 얼마나 고프겠어. 그러다가 운이 좋게 물고기 한 마리를 잡게 됐어. 그런데 문제는 이 젊은이는 채식주의자였다는 거야. 태어나서 고기를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어. 한참을 고민했지만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물고기를 먹기로 했어. 역겨웠지만 살아야 하니까 참고 억지로 먹었어. 그렇게 젊은이는 처음 고기를 먹게 되었고 표류하면서 어쩔 수 없이 물고기를 계속 잡아 먹었어. 19년동안 채식만 했지만 몇 번 먹다 보니까 먹을 만 하다는 생각이 들게 됐어. 그러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뗏목이 무인도에 도착한 거야. 젊은이는 더 이상 뗏목을 타고 떠다니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어. 그 무인도에는 과일이 풍부했어. 채식주의자로 돌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 과일을 먹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했고 매일 바닷가에 불을 피워서 구조 신호를 보냈어. 그런데 매일 과일만 먹다 보니 바다에 표류하면서 먹었던 물고기가 생각나는 거야. 그래서 젊은이는 바다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았고 이번에는 불에 익혀서 먹어 보았어. 그랬더니 생고기로 먹었을 때보다 훨씬 맛있는 거지. 그 이후로 계속 물고기를 잡아 먹었고 또 우연한 기회에 그 섬에 살고 있던 야생 토끼도 잡아 먹게 됐어. 사냥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종종 토끼도 잡아 먹었어. 그러던 어느 날 젊은이는 지금 살고 있는 섬이 무인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 이 섬 어딘가에 살고 있는 원주민 한 명을 우연히 만나게 된 거야. 서로 놀란 젊은이와 원주민은 그 자리에서 싸움을 벌였고 둘이 치열하게 싸우다가 젊은이가 그 원주민을 죽였어. 그리고 어떤 생각에서 그랬는지 젊은이는 구조 신호를 보내기 위해 피워놓은 불에 그 원주민을 구워서 먹었대. 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아빠가 이 이야기를 들려 줬어.” 현지가 담담하게 말했다.
“굉장히 무시무시한 이야기이다.”
“아빠 말로는 성인이 된다는 건 이런 거래. 채식주의자가 우연한 기회에 육식을 하게 되면서 고기 맛을 알게 되고 세상의 풍파를 맞아가면서 인육을 먹는 인간으로 변하는 거라고 하더라고. 그러면서 아빠는 나쁜 성인이 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어.”
“어른이 된다는 게 그렇게 무시무시한 건가?”
“어른이 아니라 성인. 아빠 말로는 이 세상에 어른은 별로 없대. 어쩌면 어른은 한 명도 없을 수도 있대.”
“그렇구나.” 진호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말했다.
“그리고 아빠가 성인이 되면 세상에 대한 예의를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고 했어.”
“세상에 대한 예의? 세상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자신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모두 드러내거나 전부 실행하려면 안 된대. 그게 예의라고 하더라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위선적으로 살아서도 안 된대. 세상 혼자 고상한 척 하는 위선자가 가장 위험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무슨 말씀 하시려고 하는지 알 거 같다.”
“진호야, 우리 덜 나쁜 사람이 되자. 나는 네가 자퇴를 하고 수능을 다시 보는 것이 옳은 거라고 생각해. 물론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면을 쓰고 이 세상을 살아가기는 하지. 우리도 예외는 아니겠지. 하지만 진짜 자기를 완전히 잃어 버려서는 안되지 않을까? 우리 그렇게 살지는 말자.”
진호는 현지의 말을 곱씹어 본다. “그래,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현지야, 고마워.”
진호의 콧잔등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진호는 하늘을 올려다 본다.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있다.
“11월 초에도 눈이 내리나?” 진호가 말했다.
“그러게. 11월 초에 눈이 내리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데 말이지. 신기하다. 그런데 이상한 게 날씨가 춥지 않고 따뜻한 편인데 눈이 오네.” 현지가 구름 가운데 구멍이 뚫린 파란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나 아까부터 저 구멍 뚫린 거 같은 하늘이 되게 신기했어.”
“맞아. 나도 그런 생각했어. 어떻게 저기만 동그랗게 구름이 없을 수가 있나? 난 저런 하늘 처음 봐.”
이때 구멍 뚫린 구름 사이 파란 하늘에서 하얀 불빛이 반짝거렸다.
“현지야, 봤어? 저기 파란 하늘에서 무언가가 반짝거리는 거.”
“응. 너도 봤어?”.
“응. 저게 뭐지? 나는 아침에 집에서 나오면서도 저 반짝거리는 걸 봤거든. 그때는 잘못 봤다고 생각 했는데 아니었네. 현지야, 별이었을까?”
“설마, 대낮에 별이 보이겠어? 아마 인공위성 아닐까?”
“아! 인공위성일 수도 있겠구나.”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바로 녹아버린다.

그날 현지와 진호는 즉석떡볶이를 먹지 않고 헤어졌다. 진호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에게 학교를 자퇴하고 수능을 다시 보겠다고 말했다. 그날 어머니와 진호는 펑펑 울었다. 일주일 후 진호는 학교를 자퇴했다. 학교를 자퇴하자마자 현지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다. 진호는 가슴이 많이 아팠지만 현지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이별 통보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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