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 시집
나무는 담장 밖에 홀로 서있다
햇살은 빌라보다 키가 작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
나무는 초록을 낳았다
때 이른 해산
청귤도 아니요
청사과도 아닐지니
유산이 없는 초록은
행색이 남루하다
속은 벌레에게 파 먹히고
껍질은 땅바닥에 징수당했다
양지바른 공원에선
태양빛에 영글어
차도 되고 청도 되고
약재도 된다는데
그러나
서러워 말아라
너의 향은 어미의 것
볕 한 뙈기 없는 처량에 서서
벌레가 기어가는 고통을 감내하며
물려주지 않았느냐
내어주지 않았느냐
자꾸만 맡고 싶은 가을의 향취를
빼앗을 수 없는 숭고한 기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