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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Jul 24. 2023

손목을 다치면 쉽게 낫지 않는다

 어느 날 오른쪽 손목을 크게 다쳤다. 뼈가 부러진 건 아니었지만 오른쪽 손목으로 무거운 물건을 밀거나 당기거나 들지를 못하게 되었다. 엑스레이를 찍어봐도 별 이상은 발견되지 않아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소염진통제를 먹고 있다. (물론 약은 자의적으로 먹었다 말았다 했다) 이 짓거리도 거진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카레집 알바에서 밥을 푸느라 손목을 많이 썼고, 헬스장에서 벤치 프레스를 하면서 손목이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돈 아끼겠다고 pt도 받지 않은 채, 잘못된 자세로 벤치 프레스를 했던 탓이리라. 손목에도 근육을 키워야 한다면서 손목 보호대를 끼지 않는 게 좋다는 헬스장 트레이너의 훈수가 아마 이 부상에 어느 정도는 지분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점점 손목 상태가 악화되던 어느 날, 거리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다가 조금 튀어나온 보도블럭에 걸려 엄청나게 세게 넘어졌는데, 그때 바닥을 짚으면서 손목이 헤까닥 나가버렸다. 바닥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쓰러져 있는 동안에 정말 “ㅈ됐구나” 싶었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생각을 했다. 


 보드 타고 넘어진 게 2020년 여름쯤이었으니까.. 지금은 2021년 4월 24일. 봄이 와도 손목은 나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왜냐고? 손목이 낫는다 싶으면 그때부터 병원도 가지 않고 자연스럽게 손목이 낫기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다. 젠장. 이렇게 손목 통증이 오래갈 줄은 몰랐다. 완전히 나을 때까지 약을 먹으면서 물리치료를 받았어야 하는 건데. 병원을 꾸준히 가는 게 그렇게 귀찮았다. 갈 때마다 내야 하는 5,000원 조금 넘는 자잘한 병원비가 아깝기도 했다. 손목·발목은 한번 다치면 평생 안고 가야 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흘리듯 들어본 적이 있는데, 막상 내가 그 상황이 되니 그제서야 손목이 정말 귀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오른손잡이가 오른 손목을 다치면 불편한 일들이 많다. 예를 들어 바닥에서 일어날 때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지 못한다거나, 카레집 알바를 할 때 오른손으로 그릇들을 많이 들지 못하게 된다거나, 기타를 치다가 오른쪽 손목이 조금씩 아파온다든가, 심지어 벌레를 잡으려고 벽을 ‘탁’ 치는 순간에도 손목이 뻐근해지는 걸 느낀다. 손목을 다치게 되면, 평소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불편함을 발견하게 된다. 일상이 일상이 아니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난 조만간에 낫기야 나을 손목이지만, 나을 여지가 없게 된 사람들의 기분은 과연 어떨까 하는 생각.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을 일이다. 그에 비하면 손목을 잠시 다친 건 아무 일도 아닌 것이다. 


 언제나 무언가를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게 된다. 정말 소중한 건 언제나 내 주위에 공기처럼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이라든가 친구, 에어팟, 집밥, 김치 뭐 이런 존재들. 이들이 내 삶에 있어 꼭 필요하고, 감사한 존재라는 걸 평소에도 의식하고 지내기란 쉽지 않다. 알더라도 잊어버리고 살게 된다. 무뎌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중한 무언가를 하나씩 놓치곤 했다.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금방 다시 잊어먹고 살겠지만. 손목을 다친 불행을 계기로, 잠깐이라도 익숙한 것들을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손목 조심하세요. 정말로.


(손목 때문에 결국 알바는 금방 그만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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