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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Jan 27. 2024

빠른 년생

1.

난 98년생이다. 그런데 친구들은 97년생이다. 말하자면 빠른 년생이라는 얘기다. 


연초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나이 하나가 많은 사람들과 학교를 같이 다니게 되었다. 


이유라면 부모님의 욕심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건,


빠른 년생들은 자신이 빠르려고 빠른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부모님의 선택이었을 뿐인데 


우리 빠른 년생들은 우리 나이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한다. 


우리도 피해자야 피해자.. 젠장..



2.

누군가 나에게 나이를 물어보면 그것만큼 대답하기 어려운 게 없다. 


내가 스물다섯이라고 말하면 98년생이면서 왜 스물다섯이라고 거짓말을 하느냐는 말을 듣고


스물넷이라고 말하면 지금까지 스물다섯으로 살아놓고 왜 어린 척을 하냐는 말을 듣는다. 


어떻게 해도 빠른 년생에게 씌워진 얍삽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3.

2021년 기준으로 97년생은 25살이고 98년생은 24살인데 


지금 내가 25살이라고 말하거나 97년생이라고 말하는 건 


명백한 거짓말이라 그럴 수는 없고 


그렇다고 그냥 98년생, 24살이라고 말하기에는 


빠른 년생으로 살아온 내 이력이 사라지는 것 같아 싫다. 


내 친구들은 모두 97년생이고 25살인데 왜 나는 24살이어야 하는 거지?


20년이 넘도록 97년생들과 동갑인 채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97년생들에게 형 누나라 부르는 것도 이상하고 가혹하다.


거짓말도 하기 싫고 빠른 년생으로 살아온 내 이력을 살리기도 해야 하는 나는


“98년생인데 빠른 년생이라 25살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렇게 초장부터 구구절절 추하게 말을 해야 속이 편해진다.



4.

실제로 나는 친구들과 같은 나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그러는 편이 더 열심히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5. 

내가 만약 빠른 년생이 아니고 그냥 97년생이었다면?


아마 빠른 97년생에게 형이나 누나라고 해줬을 것 같다. 


내가 내심 바라는 건 이런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98년생의 입장에서


같은 98년생에게 손윗사람 취급을 할 이유는 사실상 없기 때문에 


일반 98년생을 만나면 말을 놓아 달라고 말하게 된다. 


그렇게 족보가 꼬이게 되는데,


관계가 꼬인다고 해도 불편한 건 딱히 없을뿐더러 


꼬이면 어떤가. 보통은 얼마 보지도 않을 사이다. 



6.

휴학한 뒤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줄게 되어서 


이런 고민에서는 조금 자유롭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 빠른 이라는 개념에 신경 쓰게 될 일이 많아질까? 아니면 적어질까?


“빠른 98년생? 그런 게 어디 있어. 왜 97년생한테 반말해!”


훗날 이런 말을 진지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멀리하면 된다. 


그러고 싶어질 것 같다.


빠른 년생이라는 선천적 소수자의 심리를 이해할 줄 모르는 사람이


여유가 있어 봐야 얼마나 있을 것이고, 대화를 해봐야 얼마나 통할 것이냐, 라는 생각이다.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닌, 빠른 년생이라는 정체성을 


구시대의 안타까운 잔재라고 생각해주시길. 


나를 박쥐 같은 녀석이라 매도하지는 마시고


가여이 여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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