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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Jan 27. 2024

넌 뭐라도 될 거야.
넌 뭘 해도 잘 될 거야.

 대학교 1학년 시절, 레크레이션이나 술자리, 과실에서 농담이나 따먹고 있을 때와 같이 순수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자리에서 나는 언제나 두각을 드러내곤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지도?) 내가 두각을 드러낼 수 있게 된 건 고등학교 시절 가장 친한 9명의 무례한 친구들의 공이 어느 정도 있는데, 그 친구들에게 재미 본위의 혹독한 유머 무차별 난사를 당했던 경험들이 내 임기응변 능력 향상을 위한 고농축 자양분이 되었던 것이다. 그중에 몇몇 친구들은 도덕성이 꽤나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왜 나한테 저렇게 심한 말을 할까..” 하며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뭐. 다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어째 내 농담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더 잘 통했다. 내 가벼운 언행들이 귀엽게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반대로 동기들에게는 내 가벼운 모습이, 내 농담이 정말 가볍게만 비쳐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내 광대 같은 모습을 보고 나를 깔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질 때면,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엄청나게 미워했다. 그렇다고 해서 뭐,, 그렇다 할 사건도 없는데 “너 왜 나 깔봐?”라고 동기들에게 말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깔보지 않고 귀여워해 주는 선배들이랑 노는 게 동기들과 노는 것보다 더 좋았다. 일종의 방어기제였던 셈이다. 동기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도망만 다녔던 내가, 그렇게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서 생각했던 건 좀 더 동기들과 잘 지내볼 걸 하는 후회였다.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건만, 언제나 결국에는 후회가 남게 된다. 


 그렇게 과의 어떤 동기보다도 많이 선배들과 술을 마시고, 과 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하다 보니, 선배들에게서 “넌 뭘 해도 잘 될 거야.” “넌 뭐라도 될 거야.”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칭찬의 말을 들으면 너스레를 떨며 부끄럽게 들뜬 내 기분을 숨겼다. "아마 그럴 겁니다~ 하하~" 이런 식으로. 물론 올라가는 입꼬리를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나도 내가 잘될 거라는 생각을 하는데, 선배들마저도 내게 그런 말을 해주는 걸 보면, 분명 내게는 성공의 실마리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저런 말을 해주는 건 아닐 테니까. 하지만 대단해 보였던 학교 선배들은 나보다 몇 살 많은 대학생일 뿐이었고, 현실은 뱉어놓은 말로만 되는 게 아니었다. 노력 없는 시간은 아무런 소득 없이 흘러갈 뿐이었다. 그건 정말 당연한 일이었다. 


 “너는 뭐라도 될 거야.”라는 말은 어쩌면 사람들이 내게 걸어준 기대 같은 것이다. 나의 어떤 면을 보고 그런 말을 해줬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도 이제는 다 잊어먹었겠지만, 이제와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그 기대들이 부담스럽다. 그 기대들에 부응하고는 싶은데, 어떻게 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나는 바가 없다. 뭐라도 된다는, 그 막연한 이야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던가. 


 만일 내가 뭐라도 된다면, 그때는 다시 새내기처럼 걱정 없이 즐거워할 수 있을까. 


 그래. 이건 아마 전적으로 돈에 대한 이야기겠지. 


 그래도, 지금 당장은 서글프다 해도, 2016년 신입생 시절에 웃고 떠들며 농담하던 그 시간들이, 언젠가 당신들이 해주었던 기대의 말들이, 내게는 절대 잊지 못할 축복이었음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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