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이 시간에

by 안승준

우리나라 u-20 대표 선수들이 FIFA에서 주관하는 남자축구대회에서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경기 시작 5분 만에 페널티킥도 얻어내 선취골까지 기록했다.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 우승팀이라는 명예도 눈 앞에 보이는 듯했지만 결승까지 올라온 우크라이나는 결코 만만한 팀이 아니었다.

후반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은 때, 상대팀의 3번째 골이 들어가고 점수차가 2점으로 벌어지는 순간 현실적으로 우리 선수들이 우승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수학적으로 말하면 경우의 수 제로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적어도 그 시점에서는 그랬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살아가는 나의 삶은 나의 의지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무엇으로도 상황을 나아지게 만들 수 없는 막다른 상황에 부딪히고는 한다.

어릴 적 전자오락하고 싶을 때도 그랬고 장애 있는 남자 친구 반대하던 부모님 뜻으로 떠나가던 연인을 붙잡고 싶을 때도 그랬다.

한국 가톨릭의 사제가 되고 싶었을 때도 그랬지만 눈 앞에 글씨 한 번 보고 싶을 때도 그랬다.

누구보다 간절했지만 나의 어떤 발버둥도 원하는 것에 가깝게 하는 쪽으로 상황을 변화시켜 주지는 못했다.

딱 한 가지만 해결되면 모든 것이 가능했지만 그 한 가지가 해결되는 것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현시점 불가능이었다.

의학적으로 치료 불가능한 시각장애인의 눈이 간절함 만으로 정상으로 회복되었다는 것은 '심청전'이나 '성경책'에서나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가능성 제로의 상황을 마주한다는 것은 그 경험이 반복되고 그 횟수가 누적되더라도 적응되지 않는 극단의 슬픔이자 아픔이다.

눈물을 흘리는 것도 위로를 받는 것도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적어도 그 시점에서는 그렇다.

미로 찾기에서 벽을 마주한 로봇처럼 앞으로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벽이 부서지거나 로봇이 갑자기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일이 벌어지기 전에는 말이다.

그러나 미로 찾기의 규칙은 한 번 막다른 길에 도달하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운이 좋게 한 번의 벽도 마주 하지 않고 복잡한 미로의 출구를 찾아내는 로봇도 있겠지만 여러 번 벽을 마주하는 로봇들도 시간의 지체가 있을 뿐 결국은 출구를 향한다.

나의 삶도 그랬다.

할 수 없는 것들은 시간이 지나서도 원하던 결과로 바뀌지는 않았지만 조금 다른 모양의 돌아가는 선택지들은 언제나 있었다.

전자오락이 아니어도 즐길 수 있는 것은 있었고 죽을 것처럼 아프던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도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되곤 했다.

사제는 못 되었지만 성당은 열심히 다니고 눈은 볼 수 없지만 다른 방법으로 세상 보는 것들을 알아가고 있다.

어린 국가대표 선수들의 세계 도전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듯 벽을 마주한 나의 미로 찾기는 아직 출구를 향하고 있다.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다 보면 거대한 위기를 마주한 주인공이 좌절하고 있을 때 항상 이런 자막이 뜨곤 한다.

" 다음 이 시간에 계속됩니다. "

그렇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겐 다음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드라마가 종료되기 전까지는 늘 다음 시간을 기약한다.

어떻게든 또 다른 스토리는 만들어지고 작은 확률이지만 때때로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나에게도 예상치 못할 다음 시간은 언제나 존재한다.

미로의 벽이 부서지거나 로봇이 하늘로 솟구치는 것도 전혀 기대치 못할 일은 아닌 것처럼

기적적으로 의학이 발달되면 시력이 회복될 수도 있고 언젠가 떠났던 연인도 짜잔 하고 돌아올지 모른다.

무엇보다 그런 기적이 없더라도 나의 인생 스토리는 아직 끝도 출구도 만나지 않았다.

'다음 시간' 그것은 스무 살 어린 선수들의 또 다른 경기처럼 머지않아 새롭게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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