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기로 한 사람을 길에서 기다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기다리는 이의 사정으로 도착이 늦어질 때 보통의 사람들은 근처의 벤치를 찾아 앉거나 그 시간이 더 길어지면 카페를 찾기도 하겠지만 보이지 않는 내게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스마트폰과 지팡이를 활용하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 그것이 불가능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낯선 장소에서는 그런 수고를 들이는 대신 적당히 안전한 벽을 찾아 기대고 기다리는 쪽을 택한다.
오늘 만나게 될 이의 도착시간도 생각보다 늦어질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난 내 몸의 감각을 최대한 이용하여 최적의 대기 장소 찾기를 시작했다. 얼마 움직이지 않았을 때 신발에 걸리는 무릎 높이의 턱이 감지되었다. 내 판단으로 그것은 화단이 분명했다. 오늘처럼 짐도 무거운 날에 잠깐 몸을 앉히고 쉬기에 그만큼 좋은 지형지물도 없었다.
크게 고민할 것도 없이 가방을 벗고 지팡이를 접으면서 털썩 걸터앉았는데 예상했던 것과 내게 전해진 감각은 조금 달랐다. 딱딱한 돌울타리는 맞는 것 같은데 엉덩이와 등이 닿은 곳 여기저기에 따끔한 통증이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인지 손으로 살짝 훑어보는 순간 그 감각은 손바닥으로까지 옮겨졌다. 작은 가시들이 화단과 닿은 내 몸 여기저기에 박혀있었다.
내가 앉은 곳은 선인장 화단이었다. 바지에도 셔츠에도 외투에까지 뾰족뾰족한 가시들이 박혀있었지만 빼려고 손을 대면 손으로까지 옮겨지는 바람에 쉽게 손을 대기도 어려웠다. 때마침 도착한 일행의 도움으로 눈에 보이는 몇 개의 가시는 제거할 수 있었지만, 옷을 파고드는 모든 것들까지 깔끔하게 처리할 수는 없었다. 핀셋도 사용하고 박스테이프도 써 보았지만, 길 한 가운데에서 옷을 벗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적당한 조치만 한 채로 일정을 소화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괜찮다고 했지만 앉을 때도 일어설 때도 움직일 때도 쉴 새 없이 따끔따끔했다. 겉옷에 붙어있던 가시는 나의 움직임에 따라 속옷으로 침투하고 어느 틈엔 깊은 피부까지 들어와서 꽂히게 되었다. 유난히 외부 일정도 많은 날이라 가시와의 동행은 하루 반나절을 넘기도록 계속되었다.
다행이라면 손끝 감각으로 꽤 많은 가시가 제거되고 있었다는 것이고 또 다행인 것은 처음보다는 따가운 감각에 내 몸이 무뎌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걱정을 한 가득 늘어놓았지만, 통증의 강도는 실제로 많이 줄어있었다. 샤워하고 나서까지 제거하지 못한 가시는 아내의 세심한 기술로 깔끔하게 제거되었다. 혹시 눈에 보이지 않은 남은 가시가 염증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그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였다.
살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 마음에 상처를 입곤 한다. 예상치도 못한 때에 선인장 가시처럼 다가오는 그것들은 대부분 별것 아닌 것들이지만 마주한 순간에는 그 어떤 가시보다 따갑게 느껴진다. 찔리고 파고들고 욱신거리기까지 하는 상처들은 생각으로 되새겨지면서 마음 깊은 곳을 파고든다.
씻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대부분은 작은 가시처럼 제거되고 원래의 상태를 회복한다. 다른 이의 위로로 해결되기도 하고 그대로 남아있지만 무뎌지기도 한다. 때때로 오랜 시간 염증처럼 남겨질 수 있지만 그런 가능성은 높지 않고 그렇다고하더라도 생명을 위협할 만큼은 아니므로 흐르는 시간이 해결해 준다.
꽤 오랫동안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느꼈던 선인장의 가시는 불과 하루도 되지 않는 시간에 내 몸에서 모두 사라졌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작은 상처들도 그렇다. 따끔거렸지만 괜찮다고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를 힘들게 하는 많은 상처들은 생각보다 쉽게 괜찮아질 수 있다. 자신의 작은 노력으로 없앨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질 수도 있고 작은 도움으로 해결될 수도 있다.
우리는 작은 가시에 휘청일 만큼 약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