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처음 나에게 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우연한 길에 너를 창문 너머로 보고는 일주일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너를 보러 가곤 했다.
조그맣고 솜털 같던 네가 나를 향해 앞발을 내밀었을 때, 나는 너를 데려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당시 학생이었고, 어머니의 허락이 필요했다. 어머니는 동물을 키우는 것에 언제나 부정적이신 분이었다.
나는 딱 한 마디만 했다.
엄마, 나도 웃고 싶어요.
어머니는 그 날로 병원에 가 너를 데려 왔다.
조그맣고 새하얗던 너는 속삭이듯 울었다.
솜뭉치 같은 것이 까만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무릎에 올려달라고 발밑에서 삐약거렸다.
나는 그런 너를 무릎에 올려놓고 너와 함께 졸곤 했다.
밤이면 홀로 깨어 있는 나에게로 다가오는 너를 보며 나는 너에게 위로받았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너에게 어떻게 대해주어야 하는지, 너와 어떠한 시간을 보내주어야 하는지, 네가 무얼 원하는지 그건 내 안중에 없었다.
나에겐 네가 아닌 오로지 나만이 중요했던 시절이었다. 나 하나를 붙잡고 있기에도 벅찼던 시기였다.
너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 무한히 사랑해주고 있다고, 그걸 너도 느낄 거라고 믿었다.
낯선 이에게 과한 경계심을 보이는 너에게, 쉬이 스트레스를 받아 털까지 나지 않는 너에게 나는 그저 고양이는 다 저러려니 치부하고 말았다. 주먹만 하던 네가 이제는 나이가 들었다. 어느새, 어느새 너를 바라보니 너는 이제 노묘로 향하고 있다.
새로운 묘연을 만나 예쁜 아가가 우리 집으로 왔다. 그 아이와는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고 있다.
벌써부터 몸에 좋은 영양제를 검색해 구입하고, 좋은 사료를 먹이기 위해 도움을 구하고, 언제든 나를 필요로 할 때 그 아이의 옆을 지켜줄 수 있게 되었다. 새벽까지 그 아이를 위해 공부하다 잠든다. 너를 팔 년 넘게 키우면서도 나는 고양이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조금씩 배우고, 알아갈수록 너에게 미안해 계속 가슴 한편이 쓰리다.
너를 만났을 때 나는, 그리고 우리는 많이 힘들었다.
너에게 정말이지 무한한 위로를 받으며 나는 이겨냈고, 견뎌냈고, 버텨냈다.
네가 없었다면 나는 그 시간들이 얼마나 끔찍했을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힘든 순간에도 너를 보며 한 번씩 웃었다. 너를 안고 행복을 느꼈다.
이제 막 새 식구가 된 아가를 보고 있자니 너에게 못해준 것만 생각이 난다.
좋은 밥도 못 먹이고, 좋은 음식 챙겨줘 본 적도 없는데, 너는 홀로 이렇게나 자랐다. 아니, 늙어가고 있다. 잔병치레 한 번 없이 건강하게 자라난 네가 얼마나 감사한 존재인지를 나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새로 온 아가는 잠투정이 심하다. 졸리면 배 위에 올라와 재워달라고 울어댄다. 매번 받아줄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가를 품에 안고 쓰다듬으며, 잠드는 걸 볼 때마다 네가 안쓰럽다. 한 번도 그렇게 해 주지 못했다. 무릎에 올려달라고 발밑에 와서 울던 어린 너와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만 했다. 좀 더 자주 너의 투정을 받아주었어야만 했다. 무지는 때론 죄가 되기도 한다.
너의 입장은 생각도 않고 길에서 구조한 고양이를 무턱대고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비 오는 날 죽어가던 아이를 힘겹게 살려놓았기에 보호소로 보내 허망히 죽게 할 수가 없었다. 너는 거부했다. 나는... 나는 그런 너를 나무랐다. 너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았다.
너는 결국 그 아이를 받아주었다. 곁을 내주고 핥아주었다. 그 아이는 너를 많이 의지했다. 너는 늘 결국엔 나에게 져주고 만다. 그 불쌍하던 아이는 결국 내 곁을 떠났다. 그 아이 역시 너 못지않게 경계심이 많았다. 나는 왜 우리 집 고양이들은 이런 것인지 너희에게서 문제점을 찾았다.
새로 만난 아이는 낯가림이 없다. 처음 본 사람에게도 넙죽넙죽 잘도 안긴다. 너에게서, 그리고 떠나버린 그 아이에게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나는 그런 너를 보며 단 한 번도, 내가 믿음을 주지 못해서일 거라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제야 그게 내 탓이었다는 것을 안다.
네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너는 늘 혼자였다. 그 넓은 집을 혼자 지켰다. 그때의 집은 참 넓기도 넓었다. 너를 생각한다면 어쩌면, 그때 너를 데려오면 안됐었다. 온가족이 불안한 시기였고, 너도 덩달아 불안했을 거라는 걸 그땐 몰랐다. 그저 너에게 위로받기 급급했다. 너도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늘 혼자였던 너는 단 한 번도 사고를 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괜찮은 줄 알았다. 한 번도 아프지 않아서, 한 번도 투정을 부리지 않아서 나는 네가 정말 괜찮은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어쩌면, 너는 눈치를 봤을 수도 있겠다. 그때 네가 자꾸만 사고를 치고, 자꾸만 아팠다면, 우리는 너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걸 너는 느꼈을 수도 있겠다.
이제 너와 함께 살지는 않지만, 언제나 내 마음속에 첫째는 너다. 너는 나의 첫 번째 고양이였고, 너는 나의 첫 번째 새로운 가족이었고, 너는 유일하게 단 한 순간도 미운적이 없었던 존재다. 네가 정말 오래오래 건강했으면 좋겠다. 엄마의 곁을, 그리고 내 곁을 오래도록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끝까지 이기적이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다. 네가 떠나는 날을 상상만 해도 눈물이 복받친다. 너에게 너무 미안해 나는 아주 오래 힘들것만 같다.
여전히 속삭이듯 우는 울음소리를 간직한 너를 나는 정말이지 사랑한다. 무한히 애틋하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미안하다.
ps : 일 년 전쯤 블로그에 기재했던 글입니다.
새로 왔다는 애교 많고 사고뭉치였던 우리 쭈쭈는 그사이 고양이 별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제가 살면서 보았던 고양이중 가장 예뻤고, 가장 사랑스러웠지만 세상 최고의 사고뭉치였지요..
이 글을 다시 갈무리해 올리며 또한 번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늙은 고양이인 우리 베리는 여전히 잘 지냅니다. 여전히 속삭여 울지요.
베리가 오래도록 건강하길, 쭈쭈가 어디에선가 여전히 사고를 치며 대장 노릇을 하길, 그리고 언젠간 반드시 볼 수 있길 오늘도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