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2023 Record

2023년 3월 6일 월요일

출근

by 감우


어제 시간 관리에 관한 글을 읽고 가장 뜨끔했던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


더 많은 일을 해내려고 애쓸수록 가장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내가 '내가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불안감을 회피하려 우린 본능적으로, 중요한 일을 우선순위에서 미루곤 한다.


(누가 나 감시하고 있니..?)

그런 의미에서 자기 직전 마지막 일정으로 쓰던 브런치 기록을 퇴근 이후 첫 공식 일정으로 앞당겨보았다.




본격적인 신학기가 시작되었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직원들은 벌써 반팔을 입고 일하기 시작했다. 서점에서 학생들을 상대하다 보면 황당한 일이 많이 벌어진다. 어제는 핸드폰 화면을 보여 주며 "이 책들 다 주세요."라고 말한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화면 안에는 제목으로 보이는 것과 호수, 이름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그 화면은 누가 봐도 강의명과 강의실, 교수 이름이 정리된 시트였다고! 그래서 "이게 책 제목인 게 확실해요?"라고 물었는데 "네!"라고 즉답을 하며 워낙 당당한 태도를 보이길래 검색을 해 보았다. 결론은 역시나, 그런 이름의 책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걸로. 보여 주신 페이지는 책 제목이 아니라 강의명인 것 같다고 말했더니 구석으로 가서 핸드폰을 잠시 만지작대다 그 길로 돌아 서점을 나갔다.

그 친구가 공부는 잘할는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학부모들은 서점에 더욱 큰 기대를 하는 듯하다. 대뜸 다가와 "제 아들이 경제학과 3학년이에요."라고 말한다. 다음 말을 기다리지만 침묵이 이어진다. (3학년인데 저보고 어쩌라고요...)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학년별 준비물을 키트처럼 만들어 팔던 추억을 떠올리며 서점을 방문하는 모양이지만, 서점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냐고요. 대체 대학교 3학년씩이나 돼서는 왜 엄마한테 본인의 교재를 사 오라고 시키는 것인지, 그걸 되묻고 싶어 진다. 그 어머니가 찾던 대수학 책은 서점에 재고가 없어서, 주문을 해 드릴 테니 돌아가서 아드님께 정확한 교재명과 판수를 확인 후 연락을 주시라고 안내했다. 어머니 왈 "어차피 걔도 몰라요, 그냥 아무거나 주문해 주세요."

그 아드님이 공부는 잘할는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얼마 전 인바디 측정을 했는데 서점 일을 시작하고부터 운동이란 건 전혀 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체지방은 줄고 근육은 늘어난 결과를 확인했다. 서점이 이렇게 엄청난 곳이었다니..!


남편은 자칭 통풍병이 다시 도져 회사 근처 류마티스 내과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통풍 확진을 내리기엔 애매한 구석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통풍이라면 반드시 결석이 동반되기 마련인데 결석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그러게 내가 뭐랬어! 회사 가기 싫은 병이라니까! 귀신같이 월요일 아침에 통증이 심해진 걸 보라지!)라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다. 남편은 검사 결과를 들으러 일주일 뒤에 다시 병원에 갈 예정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인생은 편집의 연속이다. [2023 Record] 매거진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 사실을 더욱 체감하고 있다. 일기나 기록으로 하루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일기나 기록은 내가 겪은 무수한 경험들을 펼쳐놓은 다음, 그중에 한두 가지를 골라 미래의 나에게로 전달하는 작업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쓸수록 어려운 느낌이다. 글이 점점 길어지는 것이 신경 쓰인다. 짧지만 핵심이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기록은 더더욱 그래야만 할 텐데 말이다.


드라마 '더 모닝 쇼'를 다 보았다. 시즌2에서 코로나에 대한 묘사를 꽤 현실적으로 보여주는데, 그걸 보고 있으니 우리가 지나온 팬데믹의 시간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첫 재택근무의 달콤함도 이젠 꽤나 아득하게 느껴진다. 언제 그런 일이 있기나 했었냐는 듯이.


오늘 <서점 일기>를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699811739.922720.JPG 딱히 올릴 사진이 없어 급하게 선반 한 귀퉁이를 찍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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