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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우 Apr 02. 2017

봄이 왔다고 마음까지 따스해지는 것은 아니다.

2017년 3월 30일 목요일

1. 미움은 때때로 조용한 밤손님처럼 찾아와

주체 못 할 파도가 되어 날뛰기도 한다.

봄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꽃이 핀다 해도 마음에서까지 향기가 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봄에도 여전히 미움은 오고, 파도가 되어 날뛰기도 하는 것이다.


살면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누군가도 있고,

잘되는 꼴은 절대 못 보겠어서 매일같이 저주를 퍼붓고 싶은 누군가도 있고,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도 울화가 치미는 누군가도 있다.

미움의 종류도, 정도도 다르지만

나는 꽤 여러 개의 미움을 간직하고 있다.

봄이 와도 사라지지 않는 미움.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깊게 자리하고 있는 미움.


2. 누군가가 이유 없이 싫어진다는 것은

그 누군가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라고.

그 말은 때론 맞기도, 때론 틀리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 이론에 동의하는 편이다.

나도 몰랐던, 어쩌면 알지만 모른 척했던 내 모습을

누군가를 통해 반추해보는 일은

생각보다 굉장히 껄끄럽고, 불쾌하며, 결국엔 미워진다.

누군가가? 결국엔 내가.

그래서 누군가가 이유 없이 미워질 때에는 나를 먼저 돌아보려 노력하는 편인데

그 모습이 나의 모습이라 할 지라도, 이미 미워져 버린 누군가가 다시 좋아지지는 않는다.

미운 사람을 굳이 보며 살지는 말자고 마음먹는 속 좁은 나라서

대체로 무시하고, 잊고 살지만

어쩐지 불쑥 올라온 미움이 봄이 온 줄도 모르고 날뛰고 있으니

역시 봄이 온다고 해서, 마음까지 따스해지는 것은 아닌 거겠지.


3. 그와 함께한 지 1000일이 되던 날,

'기록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카페 마크툽에서

우리는 만족스러운 커피 한 잔과 함께,

올해 첫 꽃을 보았다.

경의선 숲길을 한참 걸어가다 보면,

사람들이 모여드는 연남동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아주 오래된, 낡은 아파트를 하나 지나

조금 더 걷다 보면 나오는, 허물어져가는 기와집이 몇 채 있는 그곳은

담벼락처럼 뒤를 받치고 있는 지하철 방음벽이 담쟁이덩굴로 빼곡히 덮여

제법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곳이다.

그 기와집 사이에 어울리지 않게 들어선 마크툽은

소박하지만 불빛이 반짝이는 루프탑이 있는 카페로

산책길에 눈도장을 찍어놓고는 그와 함께 찾아가 보았다.

역시, 나보다 더 좋아할 줄 알았지!

분위기에 걸맞지 않은 건물로 들어서자, 관리되지 않은 마당 한켠에

어울리지 않는 꽃나무가 활짝 만개해 있었다.

우리는 신나서 꽃구경을 잠시 하고,

제법 추운 밤바람에도 옥상에 올라가 달콤한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건너편 기와집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노파의 목소리는 찢어질 듯 갈라지며 내 귀를 찔렀다.


야 이 가게놈들아,

당장 나와 이 인간 같지도 않은 놈들아.

내가 느희때문에 1년을 고생했어


정확한 내용은 듣지 못했지만, 단단히 화가 나신 그 노파는

아무래도 쌓인 것이 많은 듯했다.

정신이 조금 이상한 노인네일지도, 생각해보았으나

그 절규하는 목소리가 어찌나 괴로워 보이던지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말았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떠들고 만족해하며

자주 오자 맹세하던 그곳이 누군가에게는

치를 떨며 절규할 만큼 끔찍한 곳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소름 돋도록 절절히 느끼고 나니 조금은 겁이 났다.

얼굴도, 이름도 모를 기와집 속 노파의 마음에도

봄 따위는 상관없는 크나큰 미움이 1년 간 자라나고 있었던 거겠지.

그러니 봄이 온다 해도, 따사로운 봄볕은 때론 한파보다 더 서늘하기도 하고,

꽃이 핀다 한들, 그 향긋함이 오히려 더욱 서글퍼지기도 하는 것.

그것이 우리네 알 수 없는 인생, 알 길 없는 마음이겠지.


그 찢어지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당분간 마크툽은 가지 못하겠다.

참 마음에 들었었는데 말이지.


이 때 까지만 해도 우린 참 속없이 행복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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