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불가가 되는 법.
쿠팡이 또! 쿠팡 와우 회원료를 올린단다. 2천 원대에서 시작했던 회원료가 무려 7천 원대까지 뛰어 버렸는데, 나는 결국 또 연장 동의를 누르고 말았다. 동의를 구하는 체크박스에 체크를 하며 생각했다. 사업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비슷한 사례로 담뱃값 인상을 들 수 있겠다. 담뱃값을 두 배 가량 올린다는 뉴스가 처음 터졌을 때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말했다. "더럽고 치사해서 끊는다, 끊어." 그 말을 한 사람들 중 실제로 담배를 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체 불가가 된다는 건 무언가에 중독되게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그것이 유해하든 무해하든 상관없이, 일단 중독이 되게만 할 수 있다면 게임은 거기서 끝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쿠팡 없이는 살 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확실하게 쿠며들어 버린 쿠팡의 충성 고객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는 회원 가입만 해도 받을 수 있었던 혜택들을 은근슬쩍 유료 회원만 받을 수 있는 혜택으로 전환해 버린 쿠팡의 꼼수는 다소 양아치스러울 수 있으나, 이미 그 혜택들이 삶 전반에 녹아들어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렸으니, 쿠팡 없이 사는 것보다야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쿠팡의 편리함을 누리는 쪽을 택하게 된다. 이것이 중독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모든 사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업체의 이익이다. 요즘의 소비자들은 남의 배만 불려 주는 듯한 소비를 결코 허용하지 않는 반면, 핏이 맞고 마음을 움직이는 곳이라면 기꺼이 달려가 호쾌하게 돈쭐내 줄 준비도 되어 있다. 그러니까 결국, 억울한 느낌 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지갑을 열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받기 전에 무엇이든 먼저 내어줘야 한다. 나는 쿠팡으로부터 이전에 없던 편리함을 제공받았고, 그 결과로 나는 최저가가 아닐지라도, 대단히 아름답지 않더라도,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쿠팡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것으로 보답한다.
쿠팡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은 완벽한 완급조절을 거친 점진적 전개 방식에 있다. 처음에는 아무 조건 없이, 그다음에는 조건 하나에 보상 하나를 얹어서(쿠팡 플레이 같은), 그다음에는 일종의 교훈을 선사하며(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거든. 이제 대가를 지불한 자에게만 호의를 보일 거야.), 점진적으로 스미듯 대국민의 일상에 쿠팡을 주입시켰다. 그 결과로 쿠팡은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대체 불가가 되었다.
자본주의는 결국 돈 놓고 돈 먹기로 굴러가는 구조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장사를 시작한 지 세 달 차에 투자가 없이는 수입도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내가 먼저 걸어야 딸 수 있다. 물론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따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팅을 하지 않는 자에게는 한 방의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법이다. 자본주의의 세계를 커다란 도박 판이라고 본다면, 이건 정말 일종의 중독 유발 게임이 아닐지!
나의 플로팅은 무엇을 제공하여 소비자들에게 대체불가로 각인될 수 있을까. 쿠팡 멤버십 회원료 인상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와 버렸다. 나는 또 정답이 없는 문제에 답을 찾기 위해 헤매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결국엔 답을 찾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