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팅 일기_우리들은 움직였다!

2024.09.27. 금

by 감우

독립운동가의 피비린내 나는 투쟁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나는 어쩐지 더욱 씁쓸해졌다. 죽음도 불사하며 지키려 애썼던 나라는 미국의 핵이 일본 땅을 파괴한 다음에야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해방되었고, 독립의 기쁨을 온전히 만끽할 새도 없이 골육상쟁의 아픔과 두 동강 난 한반도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뮤지컬 영웅의 명대사 "우리들은 움직였다"가 그다지 공감되지 않았다. '그래봤자'라는 말이 입 속을 굴러다녔을 뿐.


꼬꼬무를 보면 갑작스러운 비극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가 1인 투쟁을 불사하는 서사를 자주 접하게 된다. 그때도 나는 생각했다. 힘없는 개인이 과연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일에 인생을 건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런 이야기들을 접할 때마다 자연스레 떠오르는 문장.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는 역시 자신이 없다고 도리질을 치기 일쑤였다.


"그들은 자기 손으로 독립을 이루려던 게 아닙니다. 우리가 단 한순간도 일제에 순응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 흔적을 남기기 위해 싸운 것입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비로소 움직였다는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부모들의 1인 투쟁은 자식을 살아 돌아오게 하지도 못했고, 가해자에게 합당한 처벌조차 내리지 못한 경우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움직였기 때문에 방송의 소재가 되어 한번 더 사건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당장에 유의미한 결과가 따라오지 않더라도 움직여야만 하는 이유는 움직였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일기에 사설을 이렇게나 길게 쓰게 된 이유는? 우리들의 움직임이 바로 오늘 미약한 효력을 이끌어냈으므로! 내일모레 플리마켓을 위해 우리 골목을 꼬리길과 플리마켓 포스터도 도배해 두었는데, 옆동네 세모길 기획자님이 그걸 보시더니 다 같이 힘을 합쳐 연남동 상인회를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 주신 것이다. 덩치를 키워 구청 측에 지원도 받고 상권을 살려보자는 취지였는데, 오늘은 그냥 인사만 나눈 정도였지만 그분과 대화를 나누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남긴 흔적이 생각지 못한 기회를 만들 수도 있겠구나. 우리들은 움직였다!"


그런 의미에서, 플로팅의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나의 흔적으로 만들기 위해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이겠다고 다짐해 본다. 즉각적인 결과를 회수하지 못하더라도 흔적을 남기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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