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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서_모르는 건 사실 권력이에요.

2025.02.19. 수

by 감우

이틀의 휴무를 마치고 돌아온 수요일! 새 상품들이 입고되기도 했고, 교환을 요청하신 고객님이 방문한다고 하셔서 어제는 겸사겸사 출근을 했다. 근데 생각지도 못하게 물건도 팔았고요??(개이득?)


요즘 뭔가 생각이 많고, 머리가 복잡하고, 짜증이 늘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요즘 너무 과도한 정보에 노출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는 이상하게 인풋이 많아질수록 아웃풋이 안 나온다. 내가 좀 꼬인 인간이어서일 수도 있는데, 그냥 내깔리는 대로 살 때는 온갖 아이디어가 샘솟다가도 타인의 결과물을 살피다 보면 모든 게 다 마음에 안 들어지는 병이 있음. 남편은 나와 딱 정반대의 인간으로, 내 기준에서는 거의 자료조사에 미친 인간인데, 누가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얼마 전 인스타 피드를 내리다가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모르는 건 사실 권력이에요."

한혜진이 어떤 프로그램에서 했던 말인 것 같은데 앞뒤 맥락은 나도 잘 모르겠고, 해당 게시물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우리가 자료를 찾아보고, 여러 조사들을 하는 것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모를까 봐 불안해서인데, 사실은 그냥 "난 그런 거 몰라."라고 당당히 말하는 쪽이 권력을 가진다는 내용이었다.(정확하지는 않음 주의) 나의 성향을 고려하였을 때 저 말은 꽤나 공감이 되었다. 나는 차라리 모를 때 훨씬 자신감이 넘치고, 밝은 에너지가 나오는 것 같다. 왜 이러는지는 정말이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살면서 누군가를 딱히 부러워해 본 적도 없고, 특정 인물을 롤모델로 세워 닮으려고 노력해 본 적도 없는데, 그 이유를 내가 단단하고 성숙한 인간이어서라고 말하고 싶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자의적으로 정보를 제한하며 살아왔기 때문인 것 같다. 어쩌면 나는 누구보다도 쉽게 흔들리는 인간인지도 모른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되도록 적은 것들을 보며 "난 그런 거 모르는데?"를 권력으로 사용하고 있었던지도.


애초에 맞고 틀리고의 문제도 아니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냥 살던 대로 살아야겠다.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은 내가 약해지는 일이다. 정보가 나를 심리적으로 약하게 만든다면, 나는 계속해서 모르는 채로 살기로 한다. 좋은 것을 보면 따라 하고 싶어지고, 잘 나가는 사람을 보면 괜스레 부럽고, 그러다 결국엔 현재의 나를 미워하게 되는 이 일련의 과정이 끔찍하게 싫으니까.


남편은 여전히 잘 나가는 상점을 발견하면 링크를 보내고, 어디서 잘 나간다는 상품을 귀신같이 발견해서 또 링크를 보내고, 온갖 것들을 보내고 또 보내는데,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하자면 솔직히 난 대부분의 것들을 확인도 안 하고 넘겨 버린다. 솔직히 걔들이 잘 나가는데 저보고 어쩌라는 거죠..? 어제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이 말했다. "많은 것들을 보고, 네가 한 것들이 전부 쓰레기 같아 보이는 과정을 반복해서 겪어야 더 좋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야." 남편도 아무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니 마냥 무시할 수는 없어 그런가? 잠시 고개를 주억거리긴 했지만 나는 역시나, 진짜 그래? 하고 되묻고 싶어진다.


나는 초반 3개월 이후로 플로팅 상품을 구성하고 판매가를 매기는 과정에서 어떤 정보도 찾아보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한다. 인터넷 최저가를 보면 내가 무슨 사기꾼이라도 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도저히 그 가격에는 팔 수 없으므로 안 보는 것을 택한다. 최저가가 중요한 고객님들은 과감히 포기한다. 플로팅이 프리 포토존을 고수하는 이유다. 가끔은 특정 상품을 탁탁 골라 찍어가는 손님들도 있는데, 난 딱히 괘씸한 마음도 없이 그러려니 한다. 여기서 사놓고 집에 가서 사기당했다는 마음에 불쾌해질 바에는 마음 편히 원하는 방식으로 소비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다. 어차피 사진을 못 찍게 한다고 못 찾을 세상도 아닌데 그런 쓸데없는 기싸움을 할 마음도 없다. 남들은 뭘 파나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흉내를 내고 싶어 지므로 유사 업종의 브랜드나 매장의 정보는 특히 피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어쩌면 고리타분할 수 있는 나의 성향이 플로팅의 색깔을 선명하게 만들었다고도 생각한다. 물론 나의 정신승리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플로팅에 오시는 손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여긴 다른 소품샵이랑 좀 다르다."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까! 이런 나라도 조금은 자신감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내가 파는 상품은 최저가도 아니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물건도 아니지만, 세계 각국의 다양한 상품들이 플로팅의 색깔로 모여 있는 곳은 플로팅밖에 없으니까. 이게 고유성이 아니라면 대체 뭘까.


UNHIP but NOT UNCOOL

생각할수록 찰떡같이 마음에 드는 문장으로, 플로팅의 슬로건뿐 아니라 나의 좌우명으로 삼기에도 충분할 것 같다. 나는 누구도 흉내 내지 않고,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조금 부족하더라도 온전한 나를 그 자체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그야말로 내 멋대로 살고 싶다. 그러니까 다른 건 몰라도 멋은 절대 포기 못한다는 말!


왠지 가라앉았던 마음을 이제 그만 일으켜 세우고, 발길 닿는 대로 다시 힘차게 걷기로 하자. 솔직히 나 정도면 꽤 괜찮은 인간이라고!

패키지.png 오늘 온라인에 올린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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