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6. 목
6월은 뭐 이리 일이 많고 바쁜지, 모든 휴무일에 스케줄이 꽉꽉이라 쉽지 않은 한 달이었다. 7월은 얌전히 가게나 왔다 갔다 하며 충전의 시간을 가지자 생각했지만 이미 잡힌 약속만 세 개. 심신이 지쳐가는 게 체감되는 요즘이다.
6월은 불안도가 높아진 달이기도 했다. 끝이 없는 것 같은 막막함, 지속에 대한 불안감, 변화에 대한 필요성과 방법에 대한 막연함이 한데 겹치며 나를 예민하고 불안하게 했다. 한 템포 쉬어야 할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정말이지 지친다 지쳐.
화요일에 빨래방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캐나다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아주 오랜만의 연락이었다. 그 친구는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다. 우리는 몇 년간, 창문을 열고 큰 소리로 말하면 들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아파트를 마주 보고 살았다. 매일 함께 등교하고, 함께 하교했다. 하굣길에 만화방에 들르는 것은 우리의 루틴이었다. 엄마의 심부름을 함께 다녔고, 운동을 같이 했고, 학원도 같이 갔다. 고등학교가 달라졌고, 친구가 대학을 포항으로 갔고, 사는 동네가 달라졌고, 1년에 한 번이나 만날까 말까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랬던 친구는 급기야 캐나다 새댁이 되어 날아가 버렸다. 그 친구의 결혼식에서 우리의 시절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 많이 울었다. 우리의 한 시절이, 우리가 함께였던 한 시절이 완전히 막을 내렸다고 선포된 듯해서. 다른 시간선에서 다른 문화를 살아내야 하는 우리들은 1년에 한 번이나 연락할까 말까 한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만큼은 가장 가까운 친구 자리에 그 친구가 견고히 들어앉아 있다. 언제나 그랬고, 언제까지고 그럴 것이다. 친구가 힘들다고 했다. 마음이 힘들다고 했다. 우리들의 시절이 그립다고 했다. 나는 빨래방에서 조금 울었다. 나의 가장 오래된,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힘들어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아 줄 수 없는 우리 사이의 야속한 거리가, 그렇게나 가까웠던 우리가, 어느새 이렇게나 멀어져 버린 우리가, 짠하고, 아프고, 분해서, 조금 많이 울었다.
남편이 오늘 아침 파리로 떠났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은 요즘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진짜' 부부가 된 것 같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고, 함께일 때 완벽하게 안전하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고, 서로를 바꾸거나 고치려 애쓰지 않고, 그저 함께 웃고 우는 사이. 요즘 부쩍 남편이 좋아졌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가 함께 부모가 되어봐도 좋지 않을까 생각들만큼. 벌써부터 남편이 조금 그리워진다.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이야. 정말이지 살고 볼 일이다.
삶과 관계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삶이란 뭘까. 관계란 뭘까. 나는 누구일까. 타인이 타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견뎌야 할까. 불안도가 높아지면 생각이 많아진다. 불안한 시기는 생각하는 시기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불안한 시기에 많은 것들이 정리된다. 지금은 무얼 정리하려고 이렇게 불안한 걸까. 필요한 불안이라면 감당해야겠지. 불안을 불안으로 받아들이기. 발버둥 치기보다 빠져들어 보기. 어느새 지나가겠지. 이 지침도, 이 불안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