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상품을 하나의 문장으로 설명하기
편집숍의 미학은 다양한 상품을 적절한 기준에 의거하여 편집 구성하는 데서 나온다. 편집숍은 다양한 상품을 한데 모아 놓아야 할 의무가 있다. 한데 모인 다양한 상품들을 하나의 콘셉트로 아우르는 일이 편집숍의 주요 과제가 된다. 서점이 아닌 편집숍의 이름으로 플로팅을 오픈한 뒤에, 나는 이 과제 앞에서 자주 흔들렸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가는 상품들을 끌어안고, 대체 어디에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 건지, 어떤 문장으로 이 상품들을 아울러야 하는 건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이제껏 읽어치웠던 마케팅 관련 책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던 말, "하나의 점으로 모아라."와 정확히 반대로 가는 듯한 플로팅의 행보가 나를 불안하게 했다. 편집숍을 하는 게 아니었어, 후회했던 적도 수차례다. 명확한 주제를 가지고, 상품을 직접 제작하여, 종류는 적지만 뾰족하고 알차게 꾸려나가는 가게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할 수만 있다면 전부 뒤집어엎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블로그 게시물을 전부 비공개로 돌린다거나, 인스타 계정을 돌연 삭제하는 식의 일탈을 사업에 적용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조금 마음에 안 들고, 때때로 석연치 않고, 매일 흔들리더라도, 일단 밀고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사업의 장점이자 단점이라 할 수 있겠다.
사장이 된 후로 나는 플로팅 안에서만큼은 절대자가 되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광활한 자유는 때론 축복이었고 때론 저주였다. 편집숍이라는 정체성도 마찬가지였다. 편집숍이라는 이름 아래 무엇이든 팔 수 있다는 광활한 자유는 나를 자꾸만 허무주의로 몰아갔다. 서점이라기엔 책도 얼마 없고, 문구점이라고 하기엔 문구만 있는 것도 아닌 플로팅. 리빙 편집숍이라고 할 만한 스케일은 아니지만, 리빙 제품이 없지는 않은 플로팅. 물론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이라는 타이틀을 붙여두기는 했지만, 요즘은 너도나도 라이프스타일을 표방하니 결코 뾰족하다고는 볼 수 없는 제목이었다. 자꾸만 플로팅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플로팅이 꼭 나처럼 느껴졌다. 평생을 어중띠게 살아온 인생. 어느 집단에도 온전히 소속되어 본 적 없는, 그래서 언제나 구구한 설명을 필요로 하는 지긋지긋한 내 팔자를 플로팅도 어쩔 수 없이 닮아가는구나 생각하다 보면 어쩐지 쓸쓸해지기까지 했다.
그래도 한 가지, 나도 잘하는 것이 있었다. 불완전한 결과물일지라도 아무튼 밀고 나아가는 것. 밀어붙인다고 할 만큼의 파워는 없지만, 어떻게든 멈추지 않고 나아가게는 할 수 있다. 그렇게 아주 더딘 속도로, 아주 조금씩, 플로팅을 밀고 여기까지 왔다. 그러는 사이 플로팅의 정체성도 아주 더딘 속도로, 아주 조금씩, 좁혀져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플로팅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던 여러 문장들을 이곳에 기록해 본다.
- 읽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탐구하는 편집숍 플로팅
- 읽는 사람들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플로팅
- 나만의 플롯을 완성해 줄 플로팅
-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읽는 사람들의 작은 상점 플로팅
- 읽고, 쓰고, 사유하는 사람들의 진행형 일상 플롯_플로팅
- 당신의 취향이 정답이 되는 곳, 플로팅
- Read More, Life Better
- Ploting Your Life, Ploting Life
- UNHIP but not UNCOOL
플로팅의 초기 기획은 '읽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이었으므로, 사실 플로팅의 방향성과 정체성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같은 말을 여러 단어로 변주해 온 것뿐이다. 같은 말을 표현할 다른 단어를 찾아 골몰하는 과정 안에서 나 혼자 흔들리고, 나 혼자 불안해하고, 나 혼자 정리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이제 플로팅이 확실한 정체정을 가지게 되었냐고? 나는 여전히 과정 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플로팅 이전에 정했던 이름은 '플롯'이었다. 나는 플롯으로 사업자 등록까지 했다가 가게를 오픈하기 직전에 플로팅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플롯보다는 플로팅의 어감이 좀 더 부드러웠고, 발음이 좀 더 편하다는 현실적인 이유들이 있었지만, 현재진행형을 뜻하는 -ing의 의미가 좋았던 탓이 크다. 그러니까 여기서부터 잘못됐던 것일 수도 있다. 플로팅은 영원히 시원한 마침표를 찍지 못할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 운명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내 인생을 꼬아왔듯 나의 플로팅도 기어이 내 손으로 직접 운명을 꼬아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겸허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나는 나대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플로팅의 정체성을 찾아나가겠지만, 당신은 그저 당신이 보고 싶은 대로 플로팅을 보아도 좋다는 말을 하고 싶다. 플로팅 안에서만큼은 누구나 정답을 말하는 사람이 된다. 우리의 답이 서로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 무엇도 정답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플로팅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것뿐이다. 당신이 정답이라고. 꼭 그만큼 나 스스로도 나를 정답이라 생각하며 살겠다고. 우리 함께 저마다의 서로 다른 정답을 찾아가 보자고. 영원히 마침표를 찍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어딘가 조금 이상한 답을 도출해 내더라도, 그게 나의 정답이라 믿고 내 멋대로 살아가기로 하자.
정체성이 없으면 없는 대로, 뭉툭하면 뭉툭한 대로,
그것이 현재의 내가 도출해 낸 최선의 정답이라 믿기로 하자.
그 믿음이 없으면 나아갈 수 없으니까, 그러나 멈추어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UNHIP but not UNCOOL이라는 슬로건은 이러한 사유의 과정 끝에 탄생했다.
나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나를 토닥이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
제법 효과가 있는 주문이었으니 당신에게도 이 문장을 선물하고 싶다.
부족하고, 어긋나고, 흔들리고, 넘어지더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멋진 인생 아닌가.
남들과 조금 많이 다르더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멋진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