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제일 많이 듣는 말

요즘 뭐해?

by 감우

"자네는 기획이 뭐라고 생각하나?"

퇴사 계획을 이야기했을 때, 상사가 내게 했던 말이다.

퇴사를 만류하려고 했던 말이었으나,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걸 배우기 위해서 나갑니다.


브랜드 에디터로 4년 5개월을, 운영 부서에서 기획 일을 3개월 했다. 기획이 뭐냐고? 나도 제발 그게 좀 알고 싶었다. 정답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부서 이동 제안을 수락했지만 더 큰 혼란에 허덕이던 중이었다.


기획이 뭐라고 생각하냐 묻던 상사조차 기획자로의 경력이 전무했다. 영업맨이었던 상사와 브랜드 에디터였던 나를 포함해 조악하게 조합된 팀원들이 거친 파도 속에서 종이배 위에 몸을 맡긴 채 정처 없이 떠밀려 다니는 중이었다.


퇴사한 지 벌써 네 달째, 내가 디데이로 정해뒀던 퇴사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 회사를 다녔더라면 어땠을까. 신설 부서에서 말 그대로 우당탕탕 적응기를 거치던 전(前) 팀은 나의 퇴사 후로 많이 안정을 찾았다고 했다. 때때로 생각한다. 내가 계획대로 내년 말, 아니 내년 4월, 아니 올해 말까지만이라도 버텼다면 조금 더 나았을까? 하지만 늘 나의 대답은 같다. '아니야, 그때 퇴사하길 잘했어.'


퇴사한 직후의 기분이 하늘을 날아갈 것 같다면, 한 달 정도는 출근하지 않는 아침이 어색하면서도 '그래, 이게 바로 행복이지'를 연발하며 마음껏 여유를 즐기는 기간이다. 두 달째가 되면 '이대로 괜찮나?' 약간의 불안이 비집고 들어오지만, '그동안 고생한 나를 생각하면 아직은 즐겨도 돼!' 당당하게 나를 다독일 수 있다. 그러나 세 달이 넘어가는 순간 불안은 급속도로 성장해 나를 잠식하기 시작한다. '너 이대로면 경력 단절되고 나중에는 이직하고 싶어도 못할 거야. 지금이야 퇴직금도 있고 살만 하다지만 퇴직금 다 떨어지면 손가락 빨고 살래? 노는 것도 일하면서 놀아야 꿀맛이지,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래? 이제 정신 차려야 될 시간이야. 정신 차려!!!' 마음속에서 이성 세포가 날뛰면서 나를 들들 볶는 것이다.


퇴사를 하고 나면 누구를 만나든 "요즘 뭐해?"가 자동으로 나온다. 회사를 나온 순간 "어디 다녀요"라는 말을 할 수 없어진 나는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든 놀고먹는 사람으로 치부되고 만다. 퇴사 후 이력서는 한 장도 쓰지 않았다. 나는 현재 무직이다. 그러나 회사 다닐 때보다 훨씬 치열하게 일하고 있다. 요즘 뭐해?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열심히 산다. 여전히 시시때때로 나를 들볶는 이성 세포를 달래며, 조금만 더 나를 믿어 달라고 설득하고 있다. 이 여정이 어디로 이어질지 나도 잘 모르겠다. 기획이 뭔지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래서 써야겠다. 이제 다시 글을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