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퇴사하실래요?
SNS가 질투를 유발하기 위한 자기 과시적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글까지 쓴 적이 있던 나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SNS와는 친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인스타그램은 친해지려야 도저히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만큼 나에게는 어려운 문제다. 유아기의 욕구가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것인지, 나는 서른이 넘도록 '왜'를 입에 달고 사는 인간이 되었는데, 인스타그램을 하는 일 또한 '왜?'의 지옥에 빠지고 말았다.
왜 인스타그램을 하는가. 왜 그곳에 사진을 올리는가. 왜 자발적으로 나의 사생활을 공개하는가. 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아무개에게 하트를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왜 왜 왜?! 결국 답을 찾지 못한 나는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명언을 다시금 아로새기며 만족감을 느꼈다. 퇴사를 하기 전까지는.
퇴사와 SNS가 대체 무슨 연결 고리가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이직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나의 선택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퇴사를 했고, 이직을 하지 않기로 했다. 30대 초반에 은퇴를 할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니 이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내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는 뜻이 되겠다. 그리고 그 말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비대면으로 영업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는 소리다. 그러니 이제, 나에게 SNS는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주여, 왜 제게 이리도 큰 시련을 주시나이까!
퇴사를 한 후에도 나는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는 중이라는 자기 암시를 한다. 특히,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하는 순간에는 더욱 그렇다. '나는 회사원이다, 나는 월급쟁이다, 나는 상사에게 미션을 부여받았다', 혼잣말을 되뇌며 울며 겨자 먹기로 인스타 계정을 하나 만드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인스타는 꾸준히만 하면 알아서 팔로워가 늘고 좋아요 수가 높아지는 단순한 채널이 아니었다.
인스타그램에서 파생된 신조어 "있어빌리티"를 아시는지..! 직역하면 있어 보이는 능력이라는 이 표현이 SNS의 원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팔로워를 늘리고 좋아요를 얻으려면 있어빌리티는 기본 스펙으로 깔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있어빌리티 학위를 수료하지 못했다. 아니, 그 이전에 또다시 유년기의 결핍이 나를 괴롭힌다. "왜?" '있는 그대로의 나는 그럼 없어 보인다는 말이야?' 이쯤 되면 내가 꼬인 인간인 걸까 자아 성찰까지 하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인스타그램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게 되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만 할 것 같다. 내가 꼬였든 안 꼬였든 그건 아무 짝에도 상관이 없다. 있어빌리티를 이해하지 못한대도 상관없다. 그냥 해야 하니까 해야 한다. 까라면 까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던 회사원의 마인드를 장착해야 한다. 퇴사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길.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은 똑같으나 조언을 구할 상사도, 짐을 나누어 질 동료도, 애써 일하고 받는 달콤한 월급도 없는 것이 퇴사 이후의 차가운 현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