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지 5개월이 되었다. 지금 당장 내가 다시 월급을 받게 된다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부자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월급을 받던 5개월 전에도 부자는 아니었는데,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런데 또 퇴사를 하고 엄청 빈곤해졌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퇴사하고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불안해야 될 상황에서 생각보다 불안하지 않은 것이 불안해진다는 것.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는 5년 전 이맘때 찾아왔다.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빈털터리로 돌아와 남편과 내가 둘 다 백수인 채로 서울 한복판에 둘만 남게 되었을 때. 그때는 대출에 집세에 나갈 돈이 많아 고정 지출은 지금보다 훨씬 많을 때였다. 다음 달 집세뿐 아니라 다음 끼니가 걱정되는 정도여서 앞이 캄캄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상황이 너무 불안해서 오히려 불안하지 않은 경험을 했다.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일만으로 스스로가 기특했다.
해가 바뀌면서 그때를 자주 생각한다. 그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생각하고, 지금보다 더 힘들었던 그때의 감정을 복기한다. 오늘 남편이 똑같은 소리를 하는 걸 보며 우리가 부부는 부부구나 새삼 느끼기도 했다. 내가 나의 불안을 알아채기도 전에 남편은 나에게 동요되어 함께 불안해진다. 그러니 지금 남편도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소리다. 그때의 나는 어떻게든 취직을 하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지금은 어떻게든 취직을 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한다는 게 가장 큰 변화이다.
회사를 다닐 때는 회사도, 이직도, 삶을 반전시킬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퇴사를 하고 보니 퇴사 역시 대안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답을 찾아야 한다. 흔들리며 서서 불안해하기보다는 돌풍에 맞서서 한 발짝이라도 앞을 향해 떼야하는 상황이다.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고 걱정하는 일조차 사치였다는 것을 느낀다. 오늘,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며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내가 쓰는 글이 본격 퇴사 만류 에세이가 되어가는 것 같아 아쉽다. 퇴사를 권장하는 쪽이 되고 싶었는데 말이지. 그래도 뭐, 퇴사한다고 죽지 않는다는 말 정도는 해 줄 수 있겠다. 오늘 마음먹은 일을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아무것도 아니어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근거 없는 희망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들어오던 월급은 잊고, 불안의 파도를 허우적댈 준비가 되어 있다면, 남 탓할 여지없는 판에서 작심 삼초를 수없이 반복할 수 있다면, 퇴사도 제법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