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털갈이를 하는 기간, 이클립스
많은 직장인들이 그렇듯, 나 역시 언젠가부터 가슴속에 사직서를 품고 회사를 다녔던 것 같다. 몇 번의 번아웃과 우울증을 겪으며 ‘지금이 적기인가?’ 고민했던 적이 여러 번. 그러다가, 작년 5월에 퇴사 의사를 밝혔고, 8월에 퇴사를 했다. 퇴사에 대한 충동은 예전에도 여러 번 있었지만 그동안은 퇴사를 안 하다가 지금 와서 퇴사를 한 이유는, 과거의 퇴사 충동은 그저 ‘힘들다, 지친다, 쉬고 싶다’는 일시적인 마음이었지만 이번에는 진짜 ‘생존에 대한 불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번아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내가 원하는 일이 뭔지도 이젠 모르겠고, 그런 상태로 한 곳에 계속 고여있으며 필요한 일들을 기계적으로 쳐내는 날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나날이 반복되면, 나는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점점 커졌다. 지금 잠시 멈춰 숨을 가다듬고 방향을 조정하지 않으면, 내 삶의 운전대를 내가 온전히 가져가지 못할 것 같고, 나도 모르는 새 나도 모르는 곳으로 내 삶이 흘러갈 것 같았다.
나는 회사에서 ‘하고 싶은 일이 뭐예요? 무엇을 원해요?’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할 말이 없었다. 다들 원하는 바가 있고, 원하는 바를 회사와 커뮤니케이션하며 회사와 협상을 하고, 뭔가 성취하면서 몸값도 높여가는데, 나는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다. 뭐든 그냥 회사에 필요한 거, 회사에서 나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거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사고방식은 나에겐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내가 원하는 일, 원하는 삶의 방식에 대해 스스로 기준이 서 있지 않다면 내 삶에 대해 남에게 선택권을 넘겨버리게 될 것이고, 그러면 어딜 가서 무얼 하든 불안하고, 쉽게 을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상태가 단지 에너지가 없어서 하고 싶은 일이 없고 그저 쉬고 싶은 건지, 그러니 에너지를 회복하면 하고 싶은 일이 생길 수 있을는지, 아니면 자아성찰의 시간이 더 필요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에너지 회복이든 자아성찰의 시간이든 결국 나에게 필요한 건 온전히 나 자신을 보살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한 시간을 가지려면, 그리고 내 삶의 방향키를 다시 온전히 내 것으로 가져오려면, 회사에 적을 두고 있는 상태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2주든 한 달이든 안식휴가를 받는다 해도, 돌아갈 회사가 정해져 있는 한 나는 쉬는 기간에도 내내 업무 생각을 하고, 회사 메신저를 들락거리고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돈?
다행히 퇴직금이라는 예정된 목돈이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일 안 하고도 몇 년은 버틸 수 있는 충분한 돈을 모아두었다. 한동안 큰 돈 나갈 일도 없고, 내가 갚아야 할 대출도 없고, 부모님은 노후준비가 잘 되어 계시기에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너무너무 감사하게도, 일을 좀 쉬어도 내가 나 한 사람 먹여살리는 데는 문제 없는 상황이었다. 유일한 걱정이라 하면 안식년 이후의 재취업에 대한 불확실성인데, 그 불안감은 내가 안식년을 갖기로 선택한 이상 안고 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불안을 친구로 삼고 살아가는 법’을 앞으로 배워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자녀?
지금이 안식년을 갖기에 최적의 시기라고 생각했던 또 다른 이유는, 자녀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만약 내가 10년 후에 또 한 번 안식년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그리고 그때 만약 자녀가 있다면 지금처럼 100% 나를 위한 안식년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자녀를 책임져야 하니까. 자녀든 누구든 내가 책임지고 키워야 할 존재가 생기면 안식년을 온전히 누리기 힘들 것 같아서,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은 마음도 꾹 참고 있다. 이렇게 온전히 나를 위해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 어쩌면 흔치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지금 꼭 안식년을 갖고 싶었다.
1) 건강을 되찾고 싶다.
2) 회사 다닐 땐 하지 못했던 것들(ex. 외국어 공부, 밤새 드라마 보기, 밤새 웹툰 보기, 2주간 명상센터 가기, 한 달 살기)을 하나씩 해 보고 싶다.
3) 아예 제로베이스에서 삶의 방식, 앞으로의 방향을 재정립해보고 싶다.
4) 더 나아가 회사에 기대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실험해보고 싶다. 어딘가에 속해 있지 않아도 독립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다.
원래는 몇 년 전부터 노래를 부르던 워킹홀리데이를 올해 초에 갈 계획이었으나, 코로나로 인해 계획이 틀어지면서 지금은 1번과 2번에 집중하고 있다. 처음에는 경제활동을 안 하고 있다는 것이 불안해서 3달만 쉴까, 6달만 쉴까, 한참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아싸리 내년까지 쭉 쉬어보기로 다짐했다. 예전부타 가고 싶었던 워킹홀리데이를 잠깐이라도 꼭 다녀와야 직성이 풀릴 것 같기 때문이다.
안식년을 시작할 때의 나는 약해져 있었다. 에너지가 방전돼서 늘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늘 피곤했고, 아침이 오는 게 싫었고, 마사지를 받으러 가면 살짝만 눌러도 안 아픈 데가 없었다. 누가 툭 하고 건드리면 울 것 같은 상태였고, ‘과연 인간이라는 존재가 진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존재인 걸까? 다들 왜 저렇게 열심히 사는 거지?’ 하는 냉소적인 마음까지 스멀스멀 올라오는 상태였다.
게다가 안식년을 시작하니 회사라는 타이틀도 없어졌고,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도 사라졌다. 아마 이제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 해도 예전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직업시장에서 벗어나 있고 싶어서 안식년을 택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식년이 끝나고 내가 다시 돌아갈 곳이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Next Step이 불투명하다는 게 사람에게 주는 불안감이 참 크더라. 이렇게 한껏 약해지고, 불안한 상태에서 안식년을 시작했다.
이 안식년을 통해서 내가 궁극적으로 얻고 싶은 것은 ‘강해지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건강해지고, 활력 넘치며, 넘치는 에너지로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싶다. 회사 밖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앞으로의 내 삶의 선택지를 넓혀나가고 싶다.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한 템포 쉬어가는 게 필요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해야 할까? 충분히 몸을 웅크려, 뛰어오르기 위한 에너지를 한껏 응축시키는 시간을 갖고 싶다.
재생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 안에서 무언가가 소멸하도록 놔둘 줄 알아야 한다. 털갈이처럼 과거의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우리는 발전할 수 없다. 또한 털갈이의 시간은 나약함의 시간이다. 새들은 털갈이를 하느라 때로는 날아오르는 능력조차 잃어버린다. 오리가 그렇다. 우리는 이를 털갈이 이클립스라고 부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빈 시간을 가리키는 멋진 표현이다. 새들은 소중한 깃털이 새로 자라나기를 기다릴 뿐이다. 신중한 태도로, 자신의 나약함을 인식하며, 고요를 흐트러뜨릴 수 있는 움직임은 자제하며, 그렇게 새는 기다린다. 인내한다. 재생이 일어나고 마침내 힘과 아름다움을 되찾을 때까지.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능률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 사는 우리는 스스로 이클립스를, 빈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가 나약해졌을 때, 바로 이때가 근원의 힘을 되찾을 기회이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공백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걸 모른다.
-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 중
이 시간은 나에게 일종의 ‘털갈이를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털갈이를 하느라 잠시 날아오르는 능력을 잃어버리더라도, 새로운 털이 자라날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리며 근원의 힘을 회복하는 시간. 이 시간이 끝나고 나면, 분명 어딘가 업그레이드된 내가 되어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