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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Mar 16. 2022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고

아이들이 요즘 꽂힌 노래가 있다. 안예은의 '문어의 꿈'이란 노래다.


https://youtu.be/IaqFMgVHBGQ



나는 문어 꿈을 꾸는 문어
꿈속에서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어
나는 문어 잠을 자는 문어
잠에 드는 순간 여행이 시작되는 거야

높은 산에 올라가면 나는 초록색 문어
장미 꽃밭 숨어들면 나는 빨간색 문어
횡단보도 건너가면 나는 줄무늬 문어
밤하늘을 날아가면 나는 오색찬란한 문어가 되는 거
야 아아아 아아 야 아아아 아아

깊은 바닷속은 너무 외로워
춥고 어둡고 차갑고 때로는 무섭기도
해 애애애 애애 야 아아아 아아
그래서 나는 매일 꿈을 꿔 이곳은 참 우울해
(후략)

노래가 은근히 좋으면서도 창 같은 느낌이 나서 오묘한 느낌이다. 애들이 수십 번 반복해서 듣는데 옆에서 같이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야 아아아~" 부분을 따라 하게 된다. 작년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곡이다.


그런데 가사를 듣고 많이 의아했다.  

'에이~ 무슨 문어가 변색을 해? 카멜레온도 아니고. 그리고 문어 자기네 집이 바다인데 바다가 뭐가 외로워? 집이 편안하고 좋지. 밖에 나오면 고생인데.'

문어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기에 들었던 생각이다.



어젯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My Octopus Teacher)>를 보게 된 것은 순전히 멍 때리고 싶어서였다. 나는 5시 반에 이른 저녁을 먹어서 아이들을 재우며 허기가 졌다. 애들을 재우고 밥솥에 남은 밥을 먹고 나니 12시였다. 바로 잘 수 없어서 넷플릭스를 켰다. 봤던 드라마나 영화는 또 보기가 싫고 그렇다고 새로운 드라마나 영화를 시작하기도 부담스러웠던 와중에 <나의 문어 선생님>이 눈에 들어왔다.


난 다큐를 별로 안 좋아한다. (싫어하는 것도 참 많아.) <나의 문어 선생님>도 <그해 우리는>의 김다미 배우가 추천하지 않았다면 볼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동글동글 귀염둥이 김다미 배우가 추천한 것이니 '한번 볼까?'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약간 내 취향과는 다른 것도 시도해 봐야 할 것 같은 도전 정신이 생긴 면도 있다.


시작 버튼을 누르면서 '예술하는 배우들이나 이런 프로를 좋아하겠지. 나처럼 동물도 싫어하고 메마른 인간이 이런 프로를 보는 게 어울리나?'라는 불신 가득한 시선으로 감시하듯 화면을 주시했다. 어차피 재미없으면 끄면 그만. 소화시킬 겸 푸른 대서양 바다를 멍하니 지켜봤다. 해파리, 다시마 숲 등 신비로운 생물이 많았다. 그러나 생물에 대한 관심은 일지 않았다. 그냥 나에겐 아름다운 바닷속 풍경일 뿐이었다.  


드디어 주인공 문어 선생님이 등장했다. 어랏, 근데 문어가 진짜 변색 동물이었네? 문어는 주변 환경에 맞춰 색깔뿐 아니라 질감까지도 바꾼다. 게딱지처럼 변하기도 하고, 모랫바닥처럼 변하기도 한다. '문어의 꿈' 가사에 나온 대로 문어를 산이나 장미꽃밭에 갖다 놓으면 그 색깔로 변신할 판이다.


그리고 문어는 가족이 없이 홀로 살아간다. 엄마 문어는 알이 부화하면서 죽기 때문에 문어는 평생 동안 혼자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 사방에 천적이 많은데 누가 생존 방법을 가르쳐 주거나 문어를 도와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문어의 꿈' 가사에 나온 "깊은 바닷속은 너무 외로워. 춥고 어둡고 차갑고 때로는 무섭기도 해."가 전혀 신빙성 없는 말은 아니다. 고증이 참 잘 되어 있네. 이분도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셨나?


가장 재미있었던 장면은 문어가 두 발로 걷는 모습, 긴 치마를 입은 할머니처럼 기우뚱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살다 살다 징그러운 문어가 귀엽게 보이는 날이 올 줄이야!

문어가 두 발로 걷는 신기방기한 모습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은 문어가 경계를 풀고 감독에게 다가와 손가락으로 교감하는 모습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독이 자신이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는 믿음을 주는 게 필요했다. 감독이 매일매일 바다의 같은 자리를 찾았기 때문에 문어와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그다음엔 믿기지 않지만 이따금씩 상호 교류를 한다. (진짜다!)


첫 악수(=교감)


문어는 지능과 감정이 있는 동물이라고 한다. 이 다큐를 보니 문어는 정말로 똑똑하고 웃기는 녀석이다. 먹고 싸고 자기만 하는 게 아니라 놀 줄 안다. 친해진 감독이랑도 놀고, 평소엔 문어의 먹잇감이었던 물고기 떼와도 논다. 외롭고 처절한 생존의 현장에서도 위트를 잃지 않은 문어이다.

 

메마르기 그지없는 나도 문어가 알을 부화시킨 다음 힘없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에 눈물이 났다. 한 시간을 본 나도 이렇게 문어에 정이 들었는데, 1년 동안 매일 문어를 봤던 감독은 오죽했을까? 감독의 눈시울이 붉어진 모습을 보니 나도 폭풍 눈물이 흘렀다.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다큐 속 문어는 때로는 코미디의 주인공이 되어, 때로는 스릴러의 주인공이 되어 고군분투하며 살다가 짝을 찾아 후손을 남기고 떠나갔다. (맨날 혼자 살았는데 짝을 갑자기 어디서 찾았는지 신기함)


수십만의 알을 낳아도 어른까지 살아남는 문어는 소수라고 한다. 부디 이 위트 있는 엄마 문어의 피를 이어받은 아기 문어들이 잘 살아남아 어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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