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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Oct 17. 2021

병에 걸렸다

직장인의 흔한 질병

"차장님, 우린 병에 걸렸잖아요. 말하고 싶은 거 못 참는 병."


한 팀원이 내게 말한다. 

그 말대로 그나, 나나 하고 싶은 말은 하고야 만다.


나는 사실 어릴 적엔 상당히 소심하여 하고 싶은 말을 잘 하지 못 했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했으면 그냥 넘어가면 되는데 '그 때 그 말을 했었어야 했는데.'라며 끙끙 앓곤 했다. 

말하지 못 해 병이 생기느니 하고 싶은 말을 하기로 결심했다.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 뿐 아니라 연습이 필요했다. 편지에 써서 하고픈 말을 전달하기도 했고, 중얼중얼 미리 연습한 다음 말하기도 했다.


결국 나는 하고 싶은 말은 웬만하면 하며 살게 됐다. 말을 못 해 분통 터지는 일도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동안 직장에서 만난 상사들은 당연히 좋아하지 않았다.

나를 진심으로 아꼈던 한 팀장님이 말했다.

"상무님이 ** 씨 하는 말에 불편했다고 하던데. ** 씨도하고 싶은 말 좀 참아 봐." 

"아니, 팀장님. 팀장님도 하고 싶은 말 다 하시면서 새삼 왜 그러세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서 불이익 받을 때도 많아요. 그래서 하는 말이야." 


요즘은 하고 싶은 말을 웬만하면 참으려고 하다 보니 또 병이 생겼다. 홧병?




병에 대해 쓰다 보니 다른 병도 있다.

포장 못 하기 병.

요새는 포장을 잘 해서 자기가 한 일보다 더 그럴 듯하게 내세우는 사람들 천지인데, 나는 내가 해놓은 일들도 별것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는 몹쓸 버릇이 있다. 내가 생각했을 때 썩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포장하기도 부끄럽고, 내가 생각했을 때 꽤 만족스러운 결과라 할지어도 생색 내기가 꼴사납다.


가장 심각한 병은 일하기 싫은 병이다.

이 병은 경증이냐 중증이냐만 다를 뿐이지, 나한테 아주 딱 달라붙어 있는 오랜 불치병이다.

어떤 날은 죽을 것처럼 일하기 싫고, 어떤 날은 그냥저냥 그런 대로 일하기 싫다.

신기한 것은, 하기 싫은데 해야 하니 하긴 한다. 그것도 병이다.


주말이 끝나 간다.

이제 월요병이 찾아올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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