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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Mar 23. 2022

처음 컨닝하던 날

요즘은 초등학교에 시험이 없지만 예전에는 초등학교에서도 시험을 봤다. 시험이 있는 어느 곳이나 그렇겠지만 학부모의 성적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고, 초등학생들도 시험이 중요하다는 것 정도는 다들 알았다.


초등학교 (나땐 국민학교) 1학년 때였나 2학년 때였나 시험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내 주변의 친구들이 시험 전에 컨닝 연합을 만들고 있었다.

"쪽지 보내면 답 알려줘!"

"알았어. 너도 알려줘."


저럼 안 되는데, 그럼 안 될 텐데. 마음속으로 생각했지만 저들이 그러겠다는데 막을 수는 없었다. 갑자기 가은이(가명)라는 친구가 내게도 컨닝 연합에 합류할 것을 권했다.


"야! 답 알려줄게. 너도 알려줘."

"싫어."

"그럼 너랑 이제 안 논다."

"아... 알았어."


나는 사실 남의 답이 필요 없었다. 나의 지적 능력이 내 인생 최고였던 시기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총기를 잃었지만 초등 시절엔 아무튼 그랬다. 어차피 다 맞거나, 한두 개 틀릴 거기 때문에 남의 답을 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가은이가 나랑 놀지 않겠다는 그 말에 나는 흔들리고 말았다.   

 

시험이 시작되었다. 나는 언제 신호가 올지 몰라 시험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일단 문제를 다 풀어야 답을 알려줄 텐데, 난생처음 하게 될 나쁜 짓에 진땀이 났다.


드디어 쪽지가 왔다. 답을 그대로 다 알려줄지, 어떤 문제는 다소 틀리게 알려줘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치사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컨닝한 사람이 나와 같이 1등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그건 거짓말에 또 다른 거짓말을 얹어야 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럼 그냥 정직하게 내가 쓴 답을 다 알려줄까? 그러나 억울하다. 나는 일방적으로 알려주는 입장인데.


나는 조용히 내적 갈등을 하다가 쪽지를 휙 넘겨주었다. 그러나 '조용히'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아마도 선생님은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불편하게 행동하는 내 모습을 모두 보고 있었을 것이다. 내 얼굴에 '나 지금 나쁜 짓하고 있어요.'라고 쓰여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험이 끝나자마자 나뿐 아니라 컨닝 연합의 컨닝이 걸렸다. 나는 "저는 안 봤고 보여주기만 했어요."라거나 "가은이가 답 알려달라고 했어요."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냥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바들바들 떨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시험이라 관용을 베풀었던 건지, 일방적으로 보여주기만 한 게 인정되었는지 몰라도 성적은 0점 처리되지 않고 내 점수 그대로 나왔다. 신기한 것은 내 시험지에 소나기가 쏟아졌다는 것이다. 생에 처음 만나는 소나기 폭격에 나도 당황했다. 친구에게 답을 알려줘야 하는 것을 걱정하느라 시험에 조금도 집중할 수가 없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지만, 그땐 내가 나름 내 것도 챙기면서 나쁜 짓을 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나는 우정을 위해, 그리고 가은이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컨닝에 가담했지만 그 이후 가은이와 놀지 않았다. 어차피 좋은 친구로 남을 운명은 아니었나 보다.


그 컨닝은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컨닝이 되었다. 나는 그 사건으로 내가 거절하고 싶을 때, 아니 거절해야 할 때는 반드시 거절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이제는 거절해야 할 때 칼같이 거절한다. 그것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지라도.

형편없는 도둑 (출처: 연합뉴스)

* '컨닝(cunning)'의 표중어는 '커닝'이라고 합니다만, '커닝'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그 느낌이 살지 않아서 '컨닝'으로 썼습니다. 컨닝은 컨닝이라 해야 제맛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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