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오는 길에 중학교를 지난다. 날씨가 좋으면 아침마다 중학생들이 줄넘기를 하고 있다.
"양발 모아 뛰기 다 했으면 이번엔 왼발로 뛰기!"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중학생들이 성실하게 줄넘기를 한다.
학생들이 줄넘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가 그 안에서 줄넘기하고 있는 상상을 하게 된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학생 때의 나였다면 '도대체 이런 거 왜 해야 하는 거야? 줄넘기가 인생에서 뭐가 중요한데?'라고 삐딱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남녀공학이었는데, 남녀가 분반되어 있는 '가짜 남녀공학'이었다. 주 3회 체육 시간 중 주 1~2회는 여학생들에 한해 무용 시간이 있었다. 나는 체육이든 무용이든 우열을 가릴 수 없이 싫었으나, 지금까지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무용이니 무용이 더 싫었나 보다.
무용 선생님은 호리호리한 아줌마 선생님이었는데 잘 다듬어진 방망이 같은 것을 두 개 들고 와 그것을 두드리며 리듬을 알려 주었다. 그 생소한 물건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면 빨래 방망이를 두드리는 생각이 나고 방망이 소리를 듣고 있자니 목탁 두드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무용 수업의 시작은 공포의 스트레칭 시간이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몸이 빳빳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체 왜 이걸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하려니, 안 그래도 안 되는 몸이 더욱 협조를 안 해준다.
"야! 거기 너! 너는 몸이 무슨 40대 아줌마 몸이야? 왜 이리 뻣뻣해?"
정확한 지적이다. 40대인 지금이나 10대 때나 몸의 뻣뻣한 정도는 같은 듯하다. 다른 과목에선 나름우등생이었던 내가 무용에서만은 열등생이었다.
스트레칭 다음엔 발레인지 현대무용인지 모를 동작들을 배웠는데 이놈의 몸뚱아리는 뇌에 접수된 정보를 구현해내지 못했다.
"홉! 홉!"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발동작을 하면서 무용실 이편에서 저편까지가야 하는데 나는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나만 웃음거리는 아니었다. 대체로 제대로 하는 애들이 없어서 모두가 서로의 웃음거리였고 무용 선생님은 늘 "야! 이것들아!!!"라고 외치며 화가 나 있었다.
고등학교 체육은 운동장 나무 밑에 앉아 있는 시간이었다. 배구든, 농구든 선생님의 설명을 일단 경청한 후 연습 시간이 되면 은근슬쩍 나무 아래로 가서 앉았다.
"야! 거기 앉아 있는 애들! 너넨 연습 안 해?"
"저희 연습하다 잠깐 쉬는 거예요."
그도 그럴 것이 체육은 이론과 실제가 너무 달랐다. 설명을 잘 듣고 막상 해보려고 하면 몹시 힘들었다. 배구 언더핸드는 두 손을 맞닿게 하여 팔을 쭉 뻗어 공을 엄지손 아래에서 손목 윗부분으로 치는 동작인데, 막상 해보니 공까지 손이 안 닿거나 공에 맞으면 너~~~무 아팠다.
농구는 자유투 연습을 하는데 나는 골에 넣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골대 근처에 공이 가는 게 목표였다. 내 몸은뇌가 명령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손은 내 눈이 보는 곳으로 공을 조준하지 않았다. 엉뚱한 곳으로 던져진 공을 주우러 쫓아갈 때면 나는 내가 공 물어오는 개가 된 기분이었다. 자유투 10개 중 골에 들어간 개수대로 평가를 했는데 그래도 웬일인지 7개인가를 넣어 내 인생 최고 기록을 세우고 기본점수를 면할 수 있었다.
구르기 수업은 체육관에서 매트를 깔고 했다. 평가는 정해진 시간 내에 앞구르기 3번, 뒷구르기 3번을 연달아하는 것이었다. 나는 앞구르기 3번만 하면 다음 동작을 이어서 할 수가 없었다. 앞구르기 3번도 내겐 버거웠지만 뒷구르기는 차원이 달랐다. 아니, 애초에 뒷구르기가 사람이 할 수 있는 동작인가? 나는 인체의 신비에 감탄하며, 그러나 그 인체의 신비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음을 절절히 느꼈다.
그다음부터는 또 체육관 구석에 앉아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체육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체육 선생님이 날 불렀다.
"야, 부반장. 너 왜 연습 안 해?"
"저는 해도 안 돼요. 그냥 기본점수 받을게요."
(체육 시간 나의 단골 멘트였다. 선생님 입장에서 이런 학생 있으면 콱! 암튼 그땐 그랬다.)
"연습을 제대로 해봐야 될 거 아냐. 해보지도 않고 되는지 안 되는지 어떻게 알아? 빨리 해."
선생님의 관심 덕에 나는 자유시간을 뺏기고, 구르고 또 굴렀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뒷구르기가 됐다. 아기 시절에나 가능했던 뒷구르기를 이 뻣뻣한 몸뚱아리로 해내다니! 이 느낌대로 연습하다 보면 뒷구르기 3회 연속도 가능할 것 같단 생각이 들 무렵 체육 시간이 끝났다. 다음 체육 시간은 구르기 평가 시간이었다. 남은 이틀 동안 나는 집에서 요를 깔고 구르기 연습을 했다. '이게 되네? 이게 되네?' 스스로에 감탄하며 뒷구르기를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드디어 평가 날, 나는 정해진 시간 내에 앞구르기 3회, 뒷구르기 3회를 연달아 성공하여 구르기 만점을 받았다. 친구들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야, 너 하나도 못하더니 어떻게 된 거야?"
"그러게? 하니까 되네?"
구르기는 연습하면 된다는 귀중한 깨달음을 주었으나, 체육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주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