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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Mar 30. 2022

피구 잡설

앞선 글 '체육의 추억'을 쓰면서 하나 안 쓴 이야기가 있다.

내가 구기 종목 중 가장 싫어하는 경기가 있으니 그건 바로 피구다.


나는 어릴 적부터 피구가 너무 싫었다.

너무 싫어해서 몇 번 해본 적도 없고, 꼭 해야 하는 상황이면 살살 오는 공에 일부러 공을 맞고 나갔다. 피구를 싫어하는 솔직한 이유는 공을 맞을까 봐 공포스러워서지만, 나는 어른이 되어서까지 피구라는 경기가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공으로 사람을 맞혀서 죽이다니 너무 비인간적이지 않아?"

내가 남편에게 말했더니 공감을 하나도 못하는 남편이 반박한다.

"피구가 왜 죽이는 경기야? '피'가 '피할 피'잖아. 공을 피하는 경기지."

"아니, 규칙이 공으로 상대편 사람 맞혀서 내보내는 경기잖아!!!"

"뭐 딴 공놀이는 안 그러냐? 야구는 사람 향해 공 더 빨리 던지는데."

"목표가 다르잖아. 피구는 사람을 맞히는 게 목표고, 야구는 그게 아니잖아."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니 피구의 정의는 이렇다.


피구(避球)

일정한 구역 안에서  편으로 갈라서  개의 공으로 상대편을 맞히는 공놀이. 

(이거 봐! 사전에도 공으로 상대편을 맞히는 공놀이라고 돼있잖아!!!)


피구는 영국의 Dodge ball (요리조리 피하는 공)에서 유래되었으며 Dead ball (죽은 공)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이거 봐~ 'Dead'가 들어가잖아!)


농구든, 축구든, 하키든 웬만한 공놀이는 골에 공을 넣는 게 목표다. 탁구나 배구, 테니스는 네트를 넘겨서 상대에게 공을 못 치게 하는 게 목표고. 야구는 공을 던지고 받고 한 바퀴 뛰어 오는 게 목표고.


그런데 피구는 왜 그 좁은 칸에 사람들을 욱여놓고 공 맞는 대상으로 삼느냐는 말이다. 안에 있는 사람 죽이려고 공 던지는 사람들의 눈빛에서 얼마나 살기가 느껴지는데!


("그럼 넌 피구 하지 마."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피구는 안 할 거지만 피구에 대한 글은 계속 쓴다.)

피구왕 통키 만화 & 원본 만화책 (출처: IT조선, 위키피디아)


초등학교 때 '피구왕 통키'라는 만화가 SBS에서 방영되어 인기였다. 그러나 난 어릴 때 SBS가 안 나오는 지방에 살아서 '피구왕 통키'를 볼 수 없었다. 피구에는 요만큼도 관심이 없었지만 '피구왕 통키'는 잠잠해져 가던 나의 서울병을 다시 부채질하기에 충분했다. 아빠의 직장 때문에 내려가 살게 된 지방이었지만 나는 서울에 살고 싶었다. 명절에 서울 할머니네에 와서 본 '피구왕 통키'의 다음 편을 볼 수 없단 사실에 'SBS는 왜 전국에 방송되지 않는가!' 울분을 토했다. 그러나 '피구왕 통키'가 방영되지 않는 지역이라 피구의 열풍 또한 불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이제 와서 든다.

싱크로율이 높은 SNL 권혁수 통키 (출처: iMBC)


짝피구를 알게 된 건 대학교 4학년 교생 실습을 나갔을 때였다. 교생 실습을 나간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짝피구는 남자가 앞에 있고 여자가 뒤에 서서 2인 1조로 하는 경기다. 여자가 공을 맞으면 두 명 다 아웃되기 때문에 뒤에 있는 여자가 공을 맞지 않게 앞에 있는 남자가 보호해야 한다. 안 그래도 피구도 비인간적인데 거기에다 남자가 여자를 보호해 주는 짝피구라니!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그러나 나는 교생 선생님. 온화한 표정으로 학생들이 짝피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실 내가 직접 하는 게 아니면 어떻게 하는 경기든 아무 상관이 없다.) 남녀공학 학생들이라 그런지 이성 친구를 대하는 게 스스럼없다. 짝피구할 때도 쑥스러움 없이 자연스럽다. '얘네들은 남자 학교, 여자 학교만 다니다가 나중에 이성 만나서 찌질이처럼 눈도 못 마주치고 할 일은 없겠구나.'란 생각을 하는데 담임 선생님이 나와 내 옆에 서 있는 다른 교생에게 말한다.

"선생님들도 피구 하실래요? 일루 오세요."

아니! 그게 무슨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십니까? 저희는 괜, 괜, 괜찮습니다.

학창 시절이라면 "저 그냥 기본 점수받을게요."라도 할 수 있었지. 나는 지금 저분의 평가로 한 달 실습이 좌지우지되는 교생 신분인데 피구라니, 피구라니.........

   

이런 짝피구라면 적극 권장? (출처: SBS 그해 우리는 1화)



나의 아이들은 태권도장에서 피구를 한다. 아직까지는 피구를 즐겁게 하는데 언젠가 나처럼 피구를 왜 해야 하냐고 물을까 봐 걱정이 된다. (작은 아이는 그럴 기미가 좀 보인다..ㅎㄷㄷ) 나 때는 배구공으로 피구를 해서 너무 아팠는데, 다행히 요즘은 피구 할 때 스펀지로 된 피구공을 이용하는 듯하다. 이 공은 아무리 세게 맞아도 안 아프단다. (왜 안 아프겠어?) 

피구공 (이미지 출처: 롯데 ON)



건강을 위해서 운동은 필요하다. 학창 시절 체육에서 다양한 것을 다루는 것도 모든 신체 영역을 골고루 발달시키기 위함이었겠지. 성인이 되어서는 각자 자기에게 맞는 운동을 찾아서 하면 될 것 같다. (나에게 맞는 운동은 대체 무엇인가?)

 

정리되지 않은 내용을 늘어놓아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글 두 편 연달아 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만 쏟아낸 듯하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이 후련하다.


마지막으로 새천년 국민건강체조 영상을 띄운다. (라떼는 국민체조였는데...) 아이 덕분에 알게 된 체조인데, 음악도 좋고 동작을 해보니 운동이 꽤 된다. 운동하는 느낌으로 이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쓴다.


https://youtu.be/oq0eugtu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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