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까지 외모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나는 대학에 가서야 외모의 중요함에 대해 알게 되었다. '사람의 됨됨이가 중요하지 외모가 뭐 중요한가?'라는 나의 순진한 믿음은 이 세상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 게다가 대학 새내기 때 나랑 같이 다니던 친구가 '사람들 말에 의하면' 예뻤다. 굳이 '사람들 말에 의하면'을 붙이는 이유는 내가 보기엔 그렇게 예쁜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어쨌든 새로운 타인들에게 내가 나 자신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예쁜 애 옆에 있는 1인'으로 취급되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서야 나는 내 외모를 객관화할 수 있었다. '아, 나는 예쁘지 않구나.'
예쁘지 않았던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닐진대, 그전까지는 아무렇지 않았던 내 얼굴이 콤플렉스가 되면서 사람이 위축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대학 새내기는 놀아야 했다.) 그 당시 내가 선택한 콤플렉스 극복법은 '모자 쓰기'였다. 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 빵모자나 니트 모자를 쓰고 나갔다. 나는 얼굴 형태가 갸름한 편이라 모자가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모자는 나의 자신감이었다. 눈치 없는 남자애들은 "머리 안 감고 왔냐?"라며 놀렸지만 그건 내 모자 사랑을 과소평가한 발언이었다. 나는 머리를 감고 잘 말리고 모자를 썼다. 앞머리는 모자 반에 가려 살짝 보일 듯 말 듯 가다듬었고. 실상 모자를 쓰면 더 튀어 보이므로 안 쓰는 편이 낫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지만 그때는 그랬다. 다른 쇼핑은 안 해도 모자 쇼핑엔 적극적이던 시절이었다.
언제부터 모자를 벗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갑자기 찾아왔던 외모 콤플렉스는 몇 년간 지속되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한창 눈에 심한 콩깍지가 씌워 있던 남자친구(현 남편)와 연애하면서 사라진 건지, 혹은 이 세상이 외모만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으면서 사라진 건지 모르겠다.
2008년, 라디오에서 "예뻐져라. 예뻐져."로 시작하는 어떤 노래가 흘러나왔다. 저렇게 대놓고 예뻐지라고 세뇌를 하니 이건 뭐 안 예뻐질 수가 없겠는데? '홍대 여신'*이라 불린 '타루'의 'Love Today'였다. 나는 경쾌한 음악과 '타루'의 깨끗한 목소리에 반했다. 나는 방구석에서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며 열심히 연습한 후 노래방에 가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예쁜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불렀다.
나의 외모 콤플렉스는 유야무야 사라졌지만, 이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스스로에게 주술을 걸듯 정성껏 부른다. 예뻐져라 쫌!
예뻐져라 예뻐져 예뻐져라 예뻐져 거울 속에 속삭여 가장 환하게 웃어 이젠 새로워질 걸 나는 소중하니까 이제 눈을 뜨면 난 피어 날 테니까 봐 늦게 잠드는 거 오 그만 단 거 먹는 것도 오 그만 혼자 우는 것도 오 그만 쓰게 먹는 커피 오 그만 소용돌이치는 무지개 가슴 터질 듯 한 향기가 내 몸을 감싸고 모든 걸 바꾸네
(중략)
꿈꾸는 대로 원하는 대로 주문을 외워 믿는 그대로
타루(Taru), Love Today
* 홍대 여신이란 2000년대 후반에 홍대 인디 음악계에서 예쁘장하고 여리여리한 여자 보컬들한테 붙여준 칭호. 타루, 요조, 뎁(Debb), 연진, 한희정 등 (출처: 네이버 블로그 @habzz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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