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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Nov 07. 2021

엄마 잘못이 아니야

내가 가끔 몸이 아프면 엄마는 "네가 몸이 약해서 그런다."라고 하신다.

두통이나 소화 불량, 목과 허리 통증 정도야 현대 직장인인의 흔한 질병 아니던가? 내가 특별히 몸이 약한 게 아닌데 엄마는 딸이 걱정되어 "먹는 걸 잘 챙겨 먹어야 한다. 과일도 먹어야 한다."라고 잔소리를, 아니 당부의 말씀을 하신다.  


친정에 가서 밥을 깨작깨작 먹는다 싶으면 (사실 깨작깨작 먹지도 않았는데!) 영락없이 "너는 너무 조금씩 먹는다. 잘 먹어야 건강하다."란 말이 돌아온다. 그러다가 엄마와 아빠가 삘 받으시면 옛날옛적 얘기까지 등장한다.

"엄마가 너 가졌을 때 돈이 너무 없어서 별로 못 먹었어. 그래서 네가 약하게 태어난 거야."


옛날엔 다들 어렵게 살기도 했지만, 우리 집도 돈이 없어서 쪼개고 쪼개 살았다고 한다. 부모님이 결혼하시자마자 아빠 직장 때문에 지방에 내려가서 살았기 때문에 외가나 친가의 도움도 받지 못 했다고. 엄마는 돈이 너무 없어서 그 당시 가장 저렴하고 흔한 라면과 사과만 드셨다는데 그래도 나는 3.2KG로 건강하게 태어났다.


이 대화에 아빠까지 가세하신다.

"네가 약하게 태어나서 우유도 소화 못 시키고 자꾸 토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어. 그때 인터넷이 있어, 뭐가 있어? 어디 찾아볼 데도 없었지."

"그러게. 그렇게 못 먹으면 미음이라도 쒀서 먹였어야 하는데 못 먹는다고 그냥 어떡하나 하고 못먹였네."

두 분은 후회와 한탄이 섞인 목소리로 옛 이야기 삼매경에 빠지셨다.

"아니, 지금 몇 년 전 얘길 하는 거야? 나 건강하다고."




나도 자식을 낳아보니 우리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은 알겠는 게, 큰 아이가 또래보다 아주 작은 아이로 태어나서 또래들에 비해 많이 작은 것이 다 내 잘못 같을 때가 있었다.

계획임신으로 원하던 아이를 가져서 기뻤음에도 난 임신 기간 내내 왠지 모르게 화가 나 있었다.

'맘 편하게 태교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난 회사에서 스트레스 태교를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몸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지 않았는데 마음이 힘들었다. 누가 애를 가지라고 한 것도 아니고, 누가 회사를 다니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냥 화가 났다.


임신 중기가 넘어가고서부터 의사가 말했다.

"아기가 같은 주수 평균보다 작네요. 아직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 계속 지켜보면 됩니다."

하지만 한 달 후, 두 달 후엔

"아기가 저번보다 크긴 컸는데 평균보다 많이 작아요."라고 했고

막달엔 2KG만 넘게 해서 낳는 것이 목표가 됐다.

원래 임신 막달엔 2주에 한 번씩 검진 오면 되는데 난 매주 한 번 와서 보자고 했다. 그리고 혹시나 태동이 줄어든 것 같으면 병원에 바로 오라고 하였다.


어쨌거나 우리 아이는 40주를 거의 다 채우고도 2KG를 겨우 넘긴 2.17KG로 태어났다. 천만다행으로 어디 아픈 데는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1주일간 인큐베이터에서 지내다가 우렁찬 울음소리를 뽐내며 퇴원하였다.


워낙 작은 몸으로 세상에 맞닥뜨려 그랬는지 퇴원하고 집에 온 아이는 예민 대장이었다. 빛과 소리에 어마어마하게 예민했다. 그리고 수시로 울었다. 기저기에 쉬 하고서도 찝찝하다고 울고, 목욕시키려고 옷 벗기면 춥다고 울고 목욕하고 물에서 꺼낸다고 울고 옷 입힌다고 울고. 매일 자기 전엔 2시간씩 울었다. 그렇게 힘들게 재운다고 쭉 자지도 않았다. 위가 작아서 우유도 적게 먹었으므로 밤에도 배고파서 두세 시간 간격으로 꼭꼭 깼다.

아이가 작게 태어난 것과 아이의 예민한 상태가 다 나의 잘못 같아서 속상했다. 내가 아이를 가졌을 때 회사를 다니지 않았다면 나았을까, 란 생각을 많이 했다.


내 죄책감이 깨진 건 둘째가 태어나고서다. 첫째 아이 출산 때 못 썼던 육아휴직을 나중에 냈는데 그 때 둘째를 가졌으므로 나는 '스트레스 태교'를 하지 않아도 됐다. 회사에 있지 않으니 마음이 평온했다. 온갖 시끄러움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느낌이었다. 이번 아이만은 3KG대로 낳겠다는 일념하에 최대한 열심히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역시나 임신 막달이 되도록 뱃속 아기는 2KG 도달이 힘들었다.

그래도 동생이 형보단 크리라 예상했었는데, 결국 태어난 아이 몸무게는 2.06KG. 큰 아이보다 무려 0.11KG이 적었다!

그래도 우리에겐 선례가 있었다. 작게 태어났지만 건강하게 잘 자라는 큰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의사도 "얘 형도 작게 태어났다고 했죠? 잘 자라고 있죠?"라고 말했고 혹시 몰라 인큐베이터에 아기를 입원시키긴 했지만 3일 만에 일반 신생아실로 옮길 수 있었다.


누구나 쉽게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아이를 출산까지 품는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다. 사람마다 체질도 다르고 언제 어떻게 튈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자궁동맥 저항지수'가 높아서 아이가 작은 것으로 추정이 된다고 했다. 생전 처음 들은 그 용어를 겨우 외워 남편에게,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에게 말했지만 모두가 그 생소한 용어에 "그게 대체 뭐냐?"라는 반응이었다.

어쨌거나 아이가 작은 것이 내가 임신 중에 덜 먹어서, 혹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가 아님이 둘째를 통해 밝혀지자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둘째 임신했을 땐 임신 기간 내내 편안하게 보냈는데 오히려 둘째가 더 작게 태어나다니! 내 노력 여부와 상관 없었다는 사실에 나는 죄책감을 없앨 수 있었다.




"엄마 잘못이 아니야. 엄마가 나 가졌을 때 라면과 사과만 먹었어도 나 태어나고 잘 자랐어요. 잘 키워주셔서 고마워요. 내가 몸이 아픈 건 그냥 운동을 안 해서 그런 거예요."

다음에 부모님을 만나면 얘기해 드려야겠다. 그럼 이제 화제가 내 운동 부족 문제로 전환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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