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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Sep 12. 2022

이 파의 끝을 잡고

"정녕 이것이 끝이란 말이오? 그럴 리가 없소. 잘 찾아보시오."

"샅샅이 뒤져봤지만 끝이 맞사옵니다. 신에게 남은 파는 이것뿐이옵니다."


냉동실에 보관해놓은 파의 끝이 보인다. 나는 야무진 살림꾼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다. 그러나 썰어놓은 파의 유용함은 알기에 파를 한 번 사면 다 썰어 냉동실에 보관해둔다.


파는 귀찮은 존재다. 일단 사는 것부터 귀찮다. 기다란 파를 온전히 장바구니에 넣는 게 힘들다. 구겨 넣기 싫어서 반듯하게 넣으면 삐져나온 파 끝에 살이 닿아 영 거슬리기 일쑤다. 냄새도 강하다. 버스에 타자마자 파 냄새가 나서 주변을 둘러보면 누군가의 짐에 파가 빼꼼히 보인다. 그 주인공이 되기 싫어서 파는 가까운 마트에서 사서 들고 간다. 파를 빼낸 후에도 장바구니에 파 향이 오래 남는다. 귀찮음을 이겨내고 사 왔더라도 손질이 귀찮다. 손질이 영 귀찮아서 일단 냉장고에 넣어둔 채 작별을 맞이한 파도 많다. 파는 금방 무르고 상한다. 참으로 번거로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파는, 한 번만 고생하면 몇 달간 잘 써먹는다. 눈 매운 걸 참고 쫑쫑쫑쫑 썰어 몇 봉지에 나눠 넣은 후 냉동실에 넣어두면 나중에 필요할 때 반찬에도 톡톡, 국에도 톡톡 자신 있게 넣어줄 수 있다.

    

편한 걸 알면 뭐 하나? 여전히 귀찮은 건 귀찮은데.

파를 살 시점이지만 아직 결심이 서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파의 끝을 잡고 말한다.

내 곁에, 좀 더, 남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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