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앞으로 돌아가지 마오

by JOO

요가 끝나고 집에 오니 힘이 없다. 아침에 쌓아놓은 설거지, 빨래 개기 다 하기 싫다. 글도 쓰기 싫고 책 읽기도 귀찮다. 누워서 유튜브나 볼까 하다가 길을 나선다.


분명히 "파란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와 딱 맞는 날씨였는데 나갈 때가 되니 어두컴컴하고 음산하다. 날씨를 찾아보니 낮 12시경에 돌풍이 불고 비가 내릴 것이라고 한다.


우산을 챙겨서 길을 나섰다. 점심으로 짬뽕이 당긴다. 아니다, 떡볶이와 꼬치 어묵도 괜찮겠다.

아! 오늘 같은 날씨엔 쌀국수가 딱이겠다.


점심을 외식하기로 했으니 만보기로 돈이라도 벌어야 한다. 만보기에는 돈 버는 미션이 있다. 근처 지정 장소에 가면 미션을 수행한 것으로 보고 돈을 넣어 준다. 집 앞 공원, 집 앞 아이스크림 가게, 또 지하철역 앞 공원에 가서 각각 20원씩을 벌었다. 결코 쉽지 않은 돈벌이였다. 돌풍이 불더니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기 때문이다. 우산이 뒤집히고 난리도 아니었다.

오늘 날씨가 왜 이래? (feat. 뒤집힌 우산)


나의 목적지는 마트 푸드코트다. 신발 뒤꿈치 때문에 발이 아파서 일단 양말을 샀다. 푸드코트로 올라가 보니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다. 두 대의 키오스크(무인 기계) 계산대가 있는데 한 줄 서기가 아니라 각 기계 뒤에 줄이 늘어서 있었다.


사람은 줄을 잘 서야 한다. 그리고 보통 나는 줄을 잘 못 선다. 오늘도 그랬다. 옆줄은 빨리 줄어드는데 내가 선 줄은 오래 걸렸다. 아이 학교 끝날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아 서둘러 먹고 가야 하는데... 나는 몹시 초조했다.


식당 이름을 고르고, 메뉴를 고르고 포인트를 적립하고 주차 정산을 하고 결제를 하면 되건만, 내 앞의 앞의 앞사람도, 앞의 앞사람도 주문이 매끄럽지 않고 행동에 버퍼링이 있다. 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앞사람이 주문하는 것을 봤음 직도 한데 막상 하려면 어려운가 보다. 포인트 적립한댔다가 안 하는 사람, 자기 차 번호가 헷갈려서 차량 번호를 한참 걸려 누르는 사람 등 가관이다. 마트 푸드코트는 급한 사람들이 와서 먹는 곳 아닌가? 왜 이리 다들 여유로워?


드디어 나의 바로 앞사람 차례다. 몸집이 퉁퉁한 아저씨는 간장 불백을 선택했다.

'점심으로 나쁘지 않은 메뉴지. 자, 빨리 결제하시죠.'

아저씨는 바로 결제하지 않고 다른 식당을 선택한다.

'아니 아니, 간장 불백 괜찮은데 왜요? 딴 메뉴 보지 말고 그냥 결제하세요.'

아저씨는 떡볶이 세트를 추가한다.

'아, 일행이 있으셨구나. 떡볶이 세트 좋죠. 빨리 결제하세요.'

아저씨는 포인트 없음을 누르고 주차 정산을 위해 차량 번호를 눌렀다. 드디어 결제 단계였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이전 단계로 돌아간다.


님아, 앞으로 돌아가지 마오!


타들어 가는 내 속도 모르고 아저씨는 떡볶이집에서 메뉴를 다시 신중하게 살펴보더니 다른 떡볶이 세트를 고른다. 나는 '떡볶이가 거기서 거기지, 메뉴를 왜 바꾸냐? 그냥 쳐묵....'이란 생각을 하고야 말았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슉슉슉슉 막힘 없이 주문을 하고 자리를 잡았다.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데 과연 음식은 빨리 나올 것인가? 나의 앞사람들이 모두 쌀국수 식당이 아닌 다른 식당에서 주문했으니 쌀국수가 금방 나올 거라 믿으면서도 긴장됐다. 그리고 심장을 졸이는 순간 내 번호 434번이 번호판에 떴다.


역시는 역시다! 국물과 고기, 쌀국수가 이 음산한 날씨와 조화를 이룬다. 내 몸이 뜨끈해지는 느낌! 쌀국수를 다 먹고 긴장이 풀렸는지 식판을 퇴식구에 반납하면서 식판을 내 쪽으로 기울였다. 남은 국물이 내 가방과 티셔츠에 흘렀다. 아놔! 잘 먹어놓고 이게 뭔 짓이야?


아이 학교 앞으로 뛰어간다. 다행히 비는 그쳤다. 바람은 많이 불지만 하늘이라도 맑으니 좋다. 쌀국수 냄새가 진동을 한다. 내가 가는 길이 쌀국수 길이다.

'앗! 신호 켜졌네. 건너야지.'

급하게 뛰어 길을 건너는데 발가락에 뭔가 탁 걸린다. '아니, 길바닥에 뭔 벽돌이 있어?' 하고 보니 내 핸드폰이다. 아놔, 급하게 뛰느라 핸드폰을 떨어뜨렸구나. 무사하니, 내 핸드폰? 핸드폰을 주워 무사히 길을 건넜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예측 안 되는 오늘 날씨처럼 상당히 스펙터클한 하루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 내 머리와 몸에서 진동하는 쌀국수 냄새만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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