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물었더니 큰아이는 "유부초밥!"이라고 대답했고 작은아이는 "난 만화에 나오는 거."라고 대답했다. (만화에 나오는 게 뭐야? 그냥 싸주는 대로 먹엇...ㅠㅠ)
"만화에 나오는 게 뭔데?"
"응. 도시락 이쁘게 싸는 거 있잖아. 만화 보면 그런 거 나오던데?"
"음.. 엄만 그런 거 못하겠어. 그냥 유부초밥과 주먹밥 중에 골라."
"난 그럼, 김밥."
"김밥 못 싸! 엄마가 김밥 두 번 싸 봤는데 다 이상하게 싸졌어. 엄마는 김밥 못 싸니까 유부초밥으로 해."
"김밥! 김밥! 김밥 싸줘~ 김밥!!!"
"그럼 이렇게 하자. 엄마가 소풍날 아침에 김밥을 싸면 도시락을 못 보낼 수 있으니까 미리 연습을 한번 해볼게. 해보고 싸갈 만한지 보자."
"좋아!"
나의 주부 인생 중 김밥 제작 경험은 딱 두 번. 한 번은 어른용 김밥으로, 망했다. 다른 한 번은 꼬마 김밥으로, 또 망했다. 내가 쌍욕을 하지 않는 고상한 사람이기에 망정이지, 김밥 말다 쌍욕 나올 뻔했다. 그렇게 김밥과 안녕을 고했다.
아이들이 김밥을 먹고 싶어 하면 동네에 기가 막힌 김밥집에서 사다 준다. 이름이 '이모네 김밥'인데 할머니들이 싸주신다. (할머니들, 건강하셔야 해요!!!) 애들 말에 의하면 딴 집 꼬마 김밥은 김 비린내가 나거나 맛이 없는데 이모네 꼬마 김밥은 확연히 맛있단다. (그냥 아무거나 먹엇...) 이모네 김밥에서 사다 주면 딱 좋겠구만 아침부턴 가게 문을 안 연다고 하셔서 시련에 부딪혔다.
오늘은 4학년 큰아이가 소풍 가는 날이었다. 도시락을 싸기 위해 평소보다 한 시간 반 일찍 일어나려니 긴장됐다. 6시 반에 일어나 능숙하게 유부초밥을 만들고 도시락 한 칸에는 유부초밥, 다른 칸에는 샤인 머스캣을 넣어줬다. 엄마가 익숙한 메뉴로 주문하면 얼마나 좋아? 나도 좋고 애도 좋고 에블 바디 해피잖아!
그러나, 김밥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작은아이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어서 오늘 저녁은 꼬마김밥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김밥이 안 되는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서랄까?
아이들이 학원에 간 사이 심호흡을 하고 김밥 재료를 마련했다. 계란 지단과 햄을 부치고 잘랐다. 나머지 재료는 풀무원에서 마련해줬다. 여기까진 수월하다. 문제는 김밥 말기다. 나의 요리 실력이 몇 년보다 늘었기 때문에 김밥을 의외로 잘 쌀지도 모른다는 허무맹랑한 기대를 해본다.
손쉽게 완성...되지 않음
오픈 마인드 김밥
'오픈 마인드 김밥'이 생성된다. 아니아니, 옳지 않아. 나 그렇게 열려 있는 사람 아니야! 그나마 몇 줄 말짱한 것도 있었지만 반 이상이 열린 김밥 혹은 터진 김밥이다. 아놔! 혹시 김말이 발이 문제인가 싶어서 (너무 오래되어 이빨이 다 빠져 있음) 작은아이를 데리고 오면서 새 김발을 사 왔다. 새 김발로 이어서 김밥을 싸 봐도 열리거나 터지기는 마찬가지.
작은아이를 불러서 김밥 꼴을 보여주며 "이거 봐. 소풍 도시락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어. 그치?"라며 아이의 호응을 기대했더니 작은아이가 말한다.
"모양이 무슨 상관이야? 친구가 외국인이든 장애인이든 다 똑같이 대해줘야 하잖아."
아니, 그게 왜 그렇게 연결돼?
학원 끝난 큰아이가 전화했다.
"엄마, 오늘 저녁 메뉴 뭐예요?"
"꼬마김밥 쌌어."
"(깜놀하며) 엄마가요?"
"응. 엄마가 쌌는데 지금 다 터지고 난리 났어. 와서 좀 봐."
큰아이가 집에 와서 꼬마김밥을 스윽 보더니 담담하게 "아, 이렇게 됐구나."라고 말한다.
그나마 나은 것들을 선별함
자르며 심하게 뭉개진 김밥은 죄다 내가 먹어 치우고 그나마 괜찮은 것들을 모아 아이들에게 주었다.
"이거 봐. 소풍 도시락으로 김밥은 안 되겠지? 유부초밥 싸줄게."
"지금처럼 잘 된 모양만 싸주면 되지."
"잘 된 모양이 몇 개 안 나올 거 같아서 그래."
"그럼 이렇게 하자. 김밥을 반 싸주고 유부초밥을 반 싸주면 되겠네."
"아, 그럴까? 그래, 그렇게 하자."
딜!
...이 아니고 이거 망했잖아? 메뉴 두 개를 준비하라고? 혹 떼려다 혹 붙였네. 소풍 도시락으로 김밥은 암만 해도 옳지 아니하오!!!